김애란 소설/ 문학동네
'나는 저걸 대체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어야 하지? 나는 왜 계속 기다려야만 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단순한 낙숫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름 혹은 눈물처럼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에게 어떤 요구 혹은 회유를 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그냥 무시했는데 그 요구를 계속 듣다보니 설득당한 기분이었다.
툭-
해
투두둑 툭-
할 수 있어
툭툭-
그럼 끝나 p.280
표지그림은 Jess Allen의 <Do we read to feel we are not alone?> 2024년작이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기 위해 책을 읽는가? 독자의 입장에서 지은 제목 같기도. 성별을 알 수 없는 누군가 소파 위에 거의 누워 책을 읽고 있다. 원본을 찾아보니 중년 여성이다. 옆모습이 화가의 얼굴을 닮기도 했다.
소파, 그림자, 사람을 주로 그리고 소파에 있는 사람들은 누워있거나 책을 읽는다. 그림 속 인물은 흰머리에 주름진 얼굴로 보아 50대 정도로 보인다. 작품 속 인물들 대부분이 40~50대 중년들이어서 그런지 중첩되는 인물이 많았다. <홈파티>의 연극배우 이연, <레몬케이크>의 기진, <안녕이라 그랬어>의 은미, <빗방울처럼>의 지수가 바로 떠올랐다.
각자 가장 좋았던 작품을 뽑는 시간이 있었는데 말하고 보니 결론은 가장 기분이 나빴던 소설들이었다. 아마 그건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고 자신이 겪은 경험의 일부를 작품 속 인물들로 대면했기 때문일 것이다. 요는 지금 현실과 가장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작품이 대부분 선정되었다는 것. 하지만 <안녕이라 그랬어>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궁금했다. 수록작 중 하나인 <안녕이라 그랬어>가 왜 소설집 제목으로 선정됐을까?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오늘 독서토론 시간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7편의 소설은 '돈과 이웃'이라는 커다란 명제로 묶일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은 교양을 겸비한 40대. 인생의 초년을 지나 이제 안정기에 접어든 나이건만 여전히 불안한 직업과 집을 사지 못해 이사를 앞두고 있거나 전세사기를 당했거나 이혼을 했음에도 전처를 염탐하거나 부모 돌봄에 지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한편 한편 속도를 낼 수 없었다는 소감이 있었는데 읽을수록 목에 이물질이 들어간 것처럼 계속 불편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랬다. 읽는 내내 얹힌 것처럼 뭔가가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나에게 향하는 어떤 지점일 텐데 인간사가 모두 이렇지라고 위안을 삼으려 해도 계속 뭔가가 나를 찌르고 있었다.
*홈파티
그들과 다른 계층을 집에 초대해 살살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보여주는 <홈파티>. 이런 사례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가장 기분 나쁜 소설 1위에 뽑히기도 했다. 그 초대의 의미를 바로 간파한 이연은 맞춰주는 듯하면서도 할 말은 또 하는 당찬 캐릭터다. 최고 경영자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파티를 열었고 좋은 지인이 있으면 한 번씩 데리고 와야 하는 것이 이들 모임의 룰이었다. 성민은 연극배우인 이연에게 제안하고 그녀는 초대에 응한다. 오십 대 여성 임원역 오디션공지를 보자 그녀는 그 역을 꼭 따내고 싶었고 이 모임에서 기를 받고 싶었다.
이들은 배우치곤 소박하다, 연극하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던지며 이연의 반응을 살핀다. 그들의 속내를 눈치챈 이연은 질문을 역으로 던지며 그들이 짜놓은 연극판을 잘 끝마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다 오대표가 봉사활동을 나가는 고아원으로 이야기가 옮겨간다. 성인이 되면 시설에서 나갈 때 자립정착금을 받는데 아이들이 그 돈으로 명품을 산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을 차분히 곱씹던 이연은 분위기를 망칠 걸 알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게 꼭 그 아이들이 철없거나 허영심이 세거나 금융 문맹이어서가 아니라요. 제 생각에는...... 밥은 남이 안 보는 데서 혼자 먹거나 거를 수는 있지만 옷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그런 것 같아요. 가방으로. p.40
*숲속 작은 집
<숲속 작은 집>을 보면 살아온 환경에 의해 돈에 대한 개념이 아예 다른 지호와 은주가 나온다. 넉넉하게 살았던 지호의 입장에서는 작은 돈에 연연하는 은주가 답답하고 한 푼이라도 아껴 써야 했던 은주입장에서는 고민하지 않고 돈을 쓰는 지호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과연 유럽과 동남아시아를 여행 갔을 때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지호가 프랑크에게 영어도 아닌 프랑스어로 고맙다고 표현하는 부분부터가 그렇다.
메이드를 대하는 은주의 이중성을 다룬 작가의 디테일함에 다시 한번 놀랐다는...
정작 문제는 팁이 아니라 은주의 강박관념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똑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물건들을 배치하는 것부터가 권력이라는 것이다.
*좋은 이웃
제때 집을 사지 못해 전세로 살고 있던 주인공은 신혼부부가 윗집으로 이사오며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모습이 영 못마땅하다. 교통사고로 홈스쿨링을 하는 시우를 가르치던 그녀는 시우네가 오래된 아파트에서 새로 생긴 아파트로 이사를 간다는 소식을 듣자마다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는 과연 좋은 이웃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역으로 던지고 있다. 난 전세, 넌 매매? 여기서부터 차이가 생기고 낡은 아파트에서 새 아파트? 그냥 배가 아프다.
시우가 책에 나오는 공동체, 이웃, 연대 등을 모두 믿느냐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물음에 주인공은 끝내 대답을 하지 못한다.
-저는 그게 잘 안 돼서요. 그런 걸 믿으려면 어떻게 하면 돼요? 선생님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저도 가르쳐주세요. p.126
*이물감
<이물감>의 주인공인 기태는 남자가 봐도 아닌가 보다. 남자회원분이 한 분 계셨는데 같은 남자로서 부끄럽다, 좀스럽다는 평을 주셨다. sns염탐까지야 뭐 그렇다 해도 전처와 썸을 타는 남자의 업장에 간 것은 스토킹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태는 못 견디게 싫었던 상사들의 행동을 그대로 재현한다. 상태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안하게 만드는 것. 반이나 남긴 접시 위에 광목천으로 된 냅킨을 무심히 던져놓은 행위를 한다. 다분히 의도한 것이다. 기태가 음식값을 치르고 나가려 하자 차셰프는 만족스러웠는지, 불편한 점이 있었는지 다급하게 묻는다.
이런 모습에 기태는 우쭐해졌지만 이내 불쾌해지고 만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먹은 음식을 다시 한번 게워내는 과정이 꼭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 같았다.
*레몬 케이크
<레몬 케이크>는 가장 많은 분들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다. 부모님 돌봄에 들어선 나이대가 가장 많아서일 것이다. 참여 인원은 총 7명인데 책을 사거나 빌리지 못한 분이 3명이었다. 그래도 독서토론을 하는데 무리는 없었다. 한 회원은 이번에 동생이 결혼하는데 선주가 하는 대사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엄마가 똑같이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딸이 있어서 좋다.', '자식 없는 사람들은 다 어떻게 사나 모르겠다'라는 말. 기진의 부모인 경수와 선주는 나이가 들수록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퇴화해 부모의 한국어 통역을 맡아왔다. 그런 기진을 주위 후배나 동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요즘에도, 아니 우리 세대 부모 중에도 그런 분들이 계시느냐'면서. 그때마다 기진은 자신에게 무척 가깝고 생생한 현재가 누군가에는 빛바랜 과거처럼 아득하고 낯선 일임을 실감했다. '같은 또래라지만 저 친구와 나는 정말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구나. 아마 앞으로도 쭉 다른 고민과 다른 돌봄. 다른 고독 속에서 살아가겠구나'하고. p.199
*안녕이라 그랬어
<안녕이라 그랬어>의 주인공 은미는 엄마의 간병이 길어지자 헌수와도 헤어지고 엄마장례 이후 발도 다쳐 일도 하지 못하는 상태다. 경력이 단절된 사십 대 중반의 여성이 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 나라를 떠나게 될 때를 대비해 외국어라도 배워놓자는 마음으로 영어사이트인 '에코스'에서 회화공부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영어선생으로 만난 60대 로버트에게 호감을 느낀다. 우리는 왜 부고하면 위로를 하려고 할까? 슬픔이 없는 부고도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로버트는 아버지, 은미는 어머니의 죽음이 큰 교훈 없는 상실이었다고 얘기를 나눈다.
-아무튼 별거 없었어. 우리 아버지 부고 안에는 그 사람이 그렇게 좋은 부모가 아니었다는 거. 전혀 몰랐던 사실도 아닌데, 이미 알고 있던 걸 한번 더 확인한 것뿐인데. 그런데도 이 허전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p.246
*빗방울처럼
전세사기를 당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대리기사를 하던 남편이 과로로 죽자 죽음을 결심하는 지수의 이야기다. 성실과 책임감을 가지고 꼼꼼하게 점검을 했는데도 사기를 당하려니 어쩔 수 없다. 경매로 넘어간 집을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을 주고 사야 했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수호는 대리기사로 일을 한다. 과로는 수호의 심장을 멈추게 했고 그 집을 고집했던 지수는 천장의 누수를 고친 후 자살하려고 한다. 그곳이 어디든 자신이 머물다 떠난 자리는 늘 단정하고 깨끗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외국인 여자 도배사가 방문하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란 말이 그녀가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툭-
안돼
투두둑-
하지 마
투둑 투둑-
안 돼
툭-
살아 p.293
계급놀이에 당당히 맞선 이연처럼, 자신의 이중성을 바라본 은주처럼, 시우네를 보며 우월감을 느꼈던 방문교사처럼, 남을 불안하게 하면 불쾌로 온다는 것을 안 기태처럼, 타인의 부고가 나의 생계를 위협할 때 오는 복잡한 마음의 기진처럼, 교훈 없는 상실을 깨달은 은미처럼, 결국엔 죽고 싶지 않았던 지수를 통해 나를 본다.
7편의 소설 배치도 참 절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안녕이라 그랬어>가 마지막이 아닌 이유를 <빗방울처럼>까지 모두 이야기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누군가의 평안을 바라는 안녕에서 끝나지 않고 그럼에도 살라는 메시지를 마지막에 하고 싶었구나라는 것을. 삶이 아무리 그대를 속일지라도 그건 그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소설. 로버트가 했던 꼭 뭘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좋았고 툭 던져지는 사고들은 그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그저 내 순서였을 뿐이라는 말도 그냥 위로가 됐다. 지수의 자살을 막은 건 이방인의 말 한마디였다. 그거면 족했던 것이다.
누수를 검색하면 완전히 통제가 불가능해진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나온다. 다시 표지 그림의 제목으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기 위해 책을 읽는다.
이제 와 헌수의 말을 빌리자면, 그런 일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저 내 차례가 된 것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그 앞에서 매번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을까? 마치 살면서 이별이라고는 전혀 겪어본 적 없는 사람들처럼. p.250
그제야 지수는 자신이 그동안 누군가로부터 그 말을 얼마나 듣고 싶어했는지 깨달았다. 더불어 그 답 또한 얼마나 기다렸는지도. 하지만 대답 따위 아무도 들려주지 않을 테지.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p.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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