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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알랭 드 보통/은행나무

by 자몽커피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산업가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보헤미안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으며, 가족으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고 철학자로부터 인정받을 수도 있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이 아무리 불쾌하다 해도 그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좋은 인생은 상상하기는 어렵다. 실패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야심을 품고, 어떤 결과들을 선호하고, 자신 외에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는데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위에 대한 불안은 성공적인 삶과 성공적이지 못한 삶 사이의 공적인 차이를 인정할 경우 치를 수밖에 없는 대가다. p.355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때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인간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빨간색 표지가 인상적이다. 원제목은 <지위 불안>이다.

재독을 하고 나서 느낀 점은 그림, 사진, 도표등이 이렇게 많았었나 하는 점이다. 끝도 없이 나오는 인용문을 읽고 있노라면 지식자랑책인가 싶기도 하다. 얼핏 보면 미술 관련 책으로 오인할 수도. 불안과 관련된 백과사전 정도로 인식하면 좋을 듯하다. 예시가 너~무 많아서 선별하는 것도 버거운 책이었다. 해법이라고는 하지만 실패한 예시들도 들어 있어서 나름 흥미로웠다.

중세시대와 근세의 기독교 사상이 주류인 유럽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현재와 거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마디로 이 책을 읽고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어요는 아니었다. 다만 나만의 불안요소와 해법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싶은 분들, 휴대전화가 없으면 불안해지는 노모포비아 이야기는 지겨워 하는 분들, 불안이라는 개념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궁금한 분들에게는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정의

-좁은 의미에서 이 말은 한 집단 내의 법적 또는 직업적 신분을 가리킨다. 그러나 더 넓은 의미에서는 세상의 눈으로 본 사람의 가치나 중요성을 가리키며, 이 책에서는 이 의미가 더 중요하다. p.7


-더욱 안타까운 것은 높은 지위를 얻기가 어려우며, 그것을 평생에 걸쳐 유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는 점이다. 어디서 어떤 피를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 지위가 날 때부터 고정되는 사회가 아니라면, 지위는 우리의 성취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리석거나 자기 자신을 잘 몰라 실패할 수도 있고, 거시 경제나 다른 사람들의 적의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 p.9




지위 불안에 대한 원인 1. 사랑결핍, 2. 속물근성 3. 기대, 4. 능력주의 5. 불확실성

해법 1. 철학 2. 예술 3. 정치 4. 기독교 5. 보헤미아




원인

1. 사랑의 결핍


우리의 ‘에고’나 자아상은 바람이 새는 풍선과 같아, 늘 외부의 사랑이라는 헬륨을 집어넣어 주어야 하고, 무시라는 아주 작은 바늘에 취약하기 짝이 없다. 남의 관심 때문에 기운이 나고 무시 때문에 상처를 받는 자신을 보면,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어디 있나 싶어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 따라서 물질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정서적인 관점에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자리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 결정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지 아니면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는지 결정한다. p.22




2. 속물근성


눈에 두드러지는 집단의 속물근성은 모든 사람을 사회적 야심의 방향으로 유도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런 야심을 못마땅해하다가도, 어느새 그것이 사랑과 인정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하게 확실한 수단인 양 쫓아다니게 된다. p.36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p.38


3. 기대


서구의 보통시민에게 지위로 인한 불안의 수준이 높아졌다. 즉 자리, 성취, 수입을 놓고 걱정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실제적 궁핍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궁핍감과 궁핍에 대한 공포는 사라지지 않고 외려 늘어나기까지 했다. p.55


우리는 조상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 대가는 우리가 현재의 모습과 달라질 수 있는데도 실제로는 달라지지 못하는 데서 오는 끊임없는 불안이다. p.80




4. 능력주의


“오늘날 사람들은 아무리 비천하다 해도 자신에게 모든 기회가 열려 있음을 안다. 만일 되풀이하여 ‘바보’라는 낙인이 찍히면 허세를 부릴 수가 없다. 이제는 자신이 열등한 지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과거와는 달리 기회를 박탈당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열등하기 때문에 말이다.”


능력주의 체제에서는 가난이라는 고통에 수치라는 모욕까지 더해지게 된다. p.114




5. 불확실성


경제의 특성 때문에 지위를 얻으려는 노력은 그 결과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동료나 경쟁자 때문에 좌절할 수도 있고, 자신에게 선택한 목표를 이룰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도 있고, 굽이치는 시장의 파도 속에서 흐름에 말려들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의 실패는 동료의 성공 가능성 때문에 더 심각해 보일 수도 있다. p.117



해법

1. 철학


이성의 규칙에 따르면 주어진 결론은 타당성 있는 최초의 전제에서 출발하여 일련의 논리적 사고를 거쳐 도출되었을 경우에만, 오직 그런 경우에만 참으로 간주된다. 철학자들은 수학이 훌륭한 사고의 모범이라고 생각하여 윤리적인 생활에서도 수학의 객관적 확실성에 준하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철학자들은 우리의 지위가 정터의 감정이나 변덕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지적인 양심에 의지하여 안정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것은 이성 덕분이라고 보았다. p.147


2. 예술


다수의 눈으로 볼 때 예술은 "인간의 곤궁에 바르는 향기 나는 고약이며, 세련된 무위의 정신을 숨 쉬는 종교로, 이 종교의 신자들은 악의 뿌리를 뽑는 일을 거들기를 거부한다. 예술은 종종 실용적이지 못하다거나, 일부 비평가들의 좀 더 친숙한 표현을 빌리자면, 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예술이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p. 163



3. 정치


자신이 사는 사회의 이상 때문에 불안이나 실망을 느낀 사람이라면 이렇게 대충 살펴본 지위의 역사에서도 기본적으로 중요한 사실을 간파할 것이다. 그런 이상이 돌로 만들어져 굳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상적인 지위는 오래전부터 계속 바뀌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바뀔 수밖에 없다. 이런 변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정치라는 말을 사용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p. 227


4. 기독교


기독교는 사람들 사이의 표면적 차이 너머를 보면서, 보편적인 진리에 초점을 맞추라고 한다. 이 진리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친족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잔인하거나 인내심이 없을 수도 있고, 어리석거나 우둔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공유하는 약점을 인정하면 우리는 서로 붙들고 묶일 수 있다. 우리의 약점에는 늘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공포와 사랑에 대한 욕망이다. p.305


5. 보헤미아


1845년 7월, 19세기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보헤미안 가운데 한 사람인 헬리 소로우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시 근처 월든 호수의 북쪽에 자신의 손으로 지은 통나무집으로 이사했다. 그의 목표는 외적으로는 평범하지만 내적으로는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이었으며, 이를 통해 부르주아지에게 물질적으로 빈약하더라도 심리적으로는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p.334



*나아가며

수많은 예시 중에 인디언들이 욕망에 눈을 뜨는 과정과,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에 대한 해석이 좋았다.

소유욕이 거의 없다고 알려진 인디언들도 교역으로 많은 물건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관점은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씁쓸한 예시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보이면 갖고 싶은 게 바로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는 점을 반증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 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어서야 지위에 대한 덧없음을 느낀다는 것도 어쩌면 살아있는 생의 한가운데는 그런 욕망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불안을 느끼는 당신은 살아있다는 말의 다른 해석이 아닐까?



이런 새로운 열망이 생긴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유럽의 상인은 인디언의 내부에서 욕망을 길러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래야 그들이 유럽 시장에서 요구하는 동물 가죽을 얻으러 부지런히 사냥을 나갈 것이기 때문이었다. 1690년 잉글랜드의 박물학자 존 배니스터 목사는 허드슨 만 지역의 인디언이 상인의 유혹에 완전히 넘어가 “전에는 있지도 았았기 때문에 원하지도 않았으나 이제 교역에 의해 그들에게 필수적인 물건이 된 많은 것들”을 원하게 되었다고 전했다. 20년 뒤 여행자 로버트 베벌리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인이 인디언에게 사치품을 전해주는 바람에 그들의 요구가 늘어났으며, 전에는 꿈도 꾸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을 바라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깝게도 그 수많은 것들을 아무리 열심히 모아도 인디언이 더 행복해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들은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나 교역이 증가한다고 행복도 증가했던 것은 아니다. 자살과 알코올중독은 늘었으며, 공동체는 분열되었고, 유럽의 물자를 놓고 자기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인디언 역시 심리적 구조가 다른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근대 문명의 시시한 장신구들의 유혹에 굴복했으며, 공동체 생활의 소박한 즐거움과 어스름 녘 텅 빈 협곡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조용한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p.242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p.247




지위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서 다른 데로 방향을 트는 데 죽을병이 어떻게 도움을 줄까? 무엇보다도 사회가 우리를 존중하던 여러 가지 이유를 빼앗아 간다. 예를 들어 저녁 파티를 열고, 능률적으로 일을 하고, 후원을 할 능력이 우리에게서 사라진다. 이런 과정에서 죽음은 지위를 통해 우리가 얻으려고 하던 관심의 덧없음, 나아가 무가치함을 드러낸다. 우리의 건강이 좋고 권력도 막강할 때는 우리를 칭찬하는 사람이 진짜 애정 때문에 그러는지 아니면 어떤 이익을 노리고 그러는지 굳이 알고 싶지 않다. “나 때문인가 아니면 나의 사회적 지위 때문인가?”하고 물어볼 용기 또는 냉소적 태도는 보여주기 힘들다. 그러나 병은 세속적 사랑의 조건을 제거하여 그런 구별이 잔인할 정도로 분명하게 눈앞에 나타난다.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기다릴 때 우리는 우리의 지위를 조건으로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격분한다. 그들이 냉혹하게 유혹의 책략을 썼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유혹을 당할 만큼 허영심이 컸다는 사실에도 화가 난다. 죽음을 생각하면 사교 생활에 진정성이 찾아온다. 우리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 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p.274



각자 불안을 느끼는 원인과 그 해결책이 주요 논제였다. 나는 모든 요소가 골고루 있다고 대답했다.

특히 '자리'에 대한 불안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건이 있었다. 5주짜리 심리학 수업을 들었는데 4주 동안 매번 같은 자리에 앉았고, 같은 짝꿍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4주쯤 되고 보니 같이 수업을 듣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오고 매번 비슷한 자리에 앉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날 내 자리에 누군가 이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어어 하며 내 짝꿍자리에 앉고 말았다.

그 이후에 내 짝꿍도 들어오더니 어어 하면서 다른 자리에 앉게 되었고 5명 정도가 자리 이동을 하게 되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내 자리에 앉아 있던 분이 불편함을 느꼈는지 결국엔 자신이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나는 내 자리로 내 짝꿍도 그다음 사람도 모두 자신이 처음 앉았던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마자 요가, 헬스, 수영장 등등 특히 운동을 하는 곳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얘기가 터져 나왔다. 마지막 수업이었고 어떤 자리에 앉아도 상관이 없었는데 순간 '침범당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간이 이렇게 자리에 연연하는 동물이었나 싶다. 어쨌든 나는 자리불안이 있는 인간이었구나를 이번에 느끼게 된 사건이었다.

독서모임인 만큼 해결책으로는 예술 즉 책, 음악, 미술 등이 가장 많이 나왔다. 나의 해결책은 자연을 뽑았다. 광대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산과 바다를 여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이 때로는 불안의 치유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생각에만 머무는 건 너무 위험하다. 천체물리학자들의 자살률이 높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알고 있다. 우주로 여행을 떠날 만큼 인간은 위대하다는 생각과 함께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고무줄처럼 탄력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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