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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열린책들

by 자몽커피

생전에 그가 마련해 놓은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거룩한 인간>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카잔차키스를 이렇게 추억한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처럼 나에게 감동을 준 이는 없다. 그의 작품은 깊고, 지니는 가치는 이중적이다. 이 세상에서 그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알고, 많을 것을 생산하고 갔다.> p.468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는 실존 인물 게오르게 조르바를 회고하는 글이 나온다. 자신의 영혼에 가장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으로 호메로스, 부처, 니체,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는다고. 힌두교에서 '구루'라고 하는 삶의 길잡이인 아버지에 조르바를 대입하기도 한다.

실제 작가는 삼촌에게 받은 돈으로 탄광사업을 했다. 육 개월 동안 조르바와 함께 지내며 밥을 먹고 산투르를 들으며 이야기를 들었던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었다고 한다.

결국 사업은 망했지만 정신의 갱도에서 삶의 지혜라는 값진 광석을 채취했으니 또이또이라고 해야 하나. 몇 년 뒤 조르바의 부고 소식을 듣고 부활시킬 것을 결심한다. 작가스럽게. 그렇게 탄생한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다.


나는 이 책을 총 세 번 읽었다. 물론 출판사는 모두 달랐다. 고려원과 열린책들은 옮긴이가 이윤기 님으로 같은데 80년에 옮긴 책을 20년이 흐른 후 개역판으로 다시 냈다.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이라는 타이틀에 혹해 문학과 지성사책도 읽었다. 작가소개부터, 작품의 배경, 조르바와 카잔자키스, 니체, 옮긴이의 후기는 이 책이 최고인 듯하다.

문지사를 읽고 작가 이름이 카잔차키스가 아니라 카잔자키스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 누군가가 잘못 표기한 것이 굳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꼭 누군가를 저격한 글인 것 같기도 하다.

크레타어는 그리스 본토 사람들도 어려워한다고. 우리도 제주도 방언은 거의 외국어같이 들리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스 원전 번역이 나오기까지 오래 걸린 이유도 이해가 된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고려원이 매운맛, 문지사가 순한 맛, 열린책들이 중간맛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는 고려원이 가장 좋았다. 현실에선 맵찔이지만 책은 역시 매운맛이 최고다. 다른 출판사 책으로 한번 더 읽고 싶은 책이다. 크레타섬의 역사를 오롯이 보여주는 오르탕스 부인(오르탕스 부인도 실존인물이다.)이나 부패한 수도원과 파계승등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처음 읽는 분들은 최근 번역본인 중간맛이나 순한 맛으로 선택하시길...




인생책이다, 읽다 던졌다 등의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책. 페미니즘이 가장 싫어하는 소설 중 하나라는데(이상의 날개도 그중 하나. 나는 날개가 가장 재미있었다) 여성비하 부분은 사실 꽤나 불편하다. 그러나 지금의 시각으로 이 책을 판단하는 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1940년대 크레타섬의 문화와 사람들을 경험한다는 마음으로 읽었으면 좋겠다. 나뿐만이 아니라 재독을 하고 나서 다시 보였다는 소감이 대다수였다. 한 번 읽고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조르바식 '자유'에 대해 말한다. 생각으로만 가득한 룸펜들에게 조르바는 썩소를 날리며 '애송이들아, 인생은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소설.

현실에서 조르바를 만난다면 나는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들어가며

그리스 동포를 구하기 위해 혁명군으로 떠나는 친구와 이별하며 '나'는 피에레포스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 안에서 조르바를 만난다. 현실에서 상남자, 마초 같은 남자를 보면 남자도 피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인공 '나'는 친구의 '책벌레'라는 비난이 마음에 걸렸던 것일까? 보란 듯이 경계심을 풀고 조르바에게 선뜻 갈탄광 인부 감독이라는 사업파트너 자리를 제안한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신분으로 만났지만 우리의 조르바는 결코 쫄지 않는다. '너에게 나의 노동력을 팔지언정 나를 팔지는 않겠어'라고 당당히 말하는 장면에서 오늘날 직장인들의 꿈의 대화가 아닐는지.


그래, 알겠다.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나는 곡괭이와 산투르를 함께 다룰 수 있는 그의 손을 보았다. p.22




마음이 내키면 말이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 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마음이 내켜야 해요.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p.24




조르바는 말한다. 인간은 자유라고.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먹물인 주인공 '나'는 책 속 철학자들과 싯다르타에게서 정답을 찾는다면 조르바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변하는 게 인간의 마음인 것을 '나'는 싯다르타의 말씀을 필사하며 욕망을 다스리려고 하는 반면 조르바는 욕망에 충실해도 너무 충실하다.

조르바를 보면 니체가 예찬한 '어린이'의 모습과 흡사하다. 나이가 65세인데 조르바는 예사로 보아 넘기는 일, 무심코 지나가는 일이 없다. 대체 저 신비의 정체가 무어냐며 묻고 또 묻는다. 어린이들과 유일하게 티키타카가 되는 시절이 이때이지 않을까 싶다. '왜?'라는 무한 반복 속에 나도 갇히고 싶다.

상남자고 마초인데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지겨운 일상사가 우리가 하느님의 손길을 떠나던 최초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었다. 물, 여자, 별, 빵이 신비스러운 원시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태초의 회오리바람이 다시 한 번 대기를 휘젓는 것이었다. p.78



'나'는 갈탄광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른 양식의 인생을 살아보려고 시도한다. 인부들과 함께 섞여, 이것저것 대화도 해보고 사업이 성공한 뒤를 상상하며 공동사회도 꿈꾼다. 또한 마을 사람들의 구시대적인 문화를 보며 개화의지도 일어난다. 그러나 조르바는 그런 '나'를 보며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라'고 말한다.

개화라는 말 자체도 누구의 입장인지부터 생각해 볼 만하다. 섣부른 개화가 재앙에 빠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명화된 세상이 반드시 좋은 것도 아니고 비문명화된 사회라고 해서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래, 눈을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p.93



조르바는 불가리아와의 전쟁에서 잔인한 불가리아 비정규군 신부를 죽인다. 그 후, 그 마을에서 우연히 그는 신부의 어린 자녀들이 길에서 구걸하는 것을 보고 가진 돈을 모두 주고 마을을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민족주의에서 벗어난다. 이제 그는 '민족'을 상관하지 않고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이것만이 문제일 뿐이고, "나이를 더 먹으면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거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주의' 하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나. 여전히 빨갱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라는 말이 붙으면 사람은 사라지고 이념으로 도배되어 버린다. 나는 이런 조르바식 사고가 깔끔하다고 생각한다.

집단적인 광기에 쓸려 마을 사람들이 과부를 죽이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나서서 도와준 인물이 바로 조르바다. 이럴 때 보면 조르바가 가장 이성적이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어른 같다.



조르바에게도 겁나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나이를 먹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데 늙는다는 건 창피하다고 한다.


두목 내 속에도 악마 같은 게 들어 있어요. 나는 그 악마를 조르바라고 부릅니다. 속에 있는 조르바는 나이 먹는 걸 싫어해요.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먹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지 않을 거예요. 속의 조르바는 사람 잡아먹는 도깨비예요. 머리털은 칠흑처럼 검고 이빨은 서른두 개, 귀 뒤에다 빨간 카네이션을 꽂고 다닙니다. 바깥 조르바는, 아이고 가엾어라, 장구통배에다 흰 머리카락도 좀 있습니다. 시들어 주름살이 생긴 데다 이는 빠져나가고 커다란 귀에는 늙으면 나오는 흰 털이 영락없이 길쭉한 당나귀 귀가 되어있지요. p.215




나이를 먹는다에 대한 해석을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체면치레를 한다거나 나이에 맞게 행동해야 하는 것 등의 의견이 나왔는데 나는 그냥 외양의 모습이 변하는 것으로 보였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주름살과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거부하는 젊은 악마를 품고 있는 조르바가 너무 귀엽지 않은가!

생각은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젊은데 외모가 받쳐주지 못할 때 오는 황망함이라고나 할까? 케이블을 사러 육지에 나가서 만난 어린 롤라와 지내다 결국 염색을 하는 모습을 보고 조르바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오르탕스 부인이 죽기도 전에 곡녀 둘이 미리 와 '얼른 죽지 않고 뭐 하우?'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마을에서 함께 살았지만 그녀를 위해 눈물을 흘린 사람은 오로지 조르바 한 명이었다. 그녀가 쓰던 모든 옷들과 가구, 창문과 문짝까지 벌떼처럼 몰려와 닥치는 대로 들고나가는 장면에서 인간무상을 느낀다. 이래서 가족이 있어야 하는 건가?

좀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하자면 실제 조르바는 크레타섬에 한 번도 간 적이 없다고 한다. 실제 이름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 (이것도 문지사를 참고했다) 카잔자키스와 탄광산업을 했던 곳은 펠로폰네소스 남부에 있는 마니 지역의 프라스토바라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카잔자키스가 크레타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은 이유는 자신의 고향땅이었기 때문이라고.

다시 오르탕스 부인 이야기로 넘어가자. 본명은 '아델리나 기타르'로 크레타 섬에서 모자 디자이너로 살면서 짧은 기간 크레타를 공동으로 다스렸던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의 제독들에게 모자를 팔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말년에는 크레타 남동부 해안에서 '갈리아'라는 호텔을 운영하다 1938년 75세로 죽었다.

작중 인물의 이름인 오르탕스는 그리스어로 하트 모양의 꽃 수국을 뜻하는 낱말 '오르탄시아'에서 따온 것이다. 오르탕스와 조르바는 연인으로 나오지만 이미 이야기 한대로 조르바는 생전에 크레타를 방문한 적이 없으므로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다.


<⸳⸳⸳⸳⸳⸳ 한 줌의 흙이로구나. 배고파할 줄도 알고, 웃기도 하고, 키스도 하는 한 줌의 흙. 한 덩어리 흙이면서도 사람을 울리던 것. 지금은⸳⸳⸳⸳⸳⸳ 우리를 이 땅에 데려다 놓은 악마는 어느 놈이고, 이 땅에서 데려가는 악마는 또 어느 놈인고?> p.382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잘해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p.394


조르바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과연 나는 이 순간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순간순간이 항상 새롭고 최선을 다해 산다는 조르바. 그래 밥 먹을 때는 밥만 먹자.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요.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p.4⸳⸳⸳⸳⸳⸳. p.432




매여 있는 긴 줄을 자르지 못한 주인공 '나'는 조르바가 녹암을 발견했다며 어서 오라는 말에 결국 가지 않는다. 간다, 가지 않는다가 반반으로 갈렸는데 나는 가지 않는다에 한표. 그냥 그럴 것 같다.

재산을 한번 몽땅 잃어봐야 진정한 자유를 느낀다는데 현실에선 그건 너무 극적인 상황 같고 그저 순간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며 사는 게 최고인 것 같다.



나는 생각했다. <자유라는 게 뭔지 알겠지요?> 금화를 약탈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그 정열에 손을 들고 애써 모은 금화를 공중으로 던져버리다니⸳⸳⸳⸳⸳⸳. p.39



마지막으로 김혜순 시인의 <김혜순 죽음 트릴로지> 시집을 읽다가 조르바가 생각나는 시가 있어 함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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