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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칼 세이건/사이언스 북스

by 자몽커피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원자 자체의 진화를 꿰뚫어 생각할 줄 알게 됐다. 우주의 한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 있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갈 줄도 알게 됐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 p.682




인류의 종으로서 인류를 사랑하고 지구에 충성해야 한다는 칼세이건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700페이지 가까운 책을 독서토론에서 다루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완독이라는 숙제를 절반 이상은 해야 토론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암묵적인 합의에 모두가 동의를 해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한줄 평은 '아름다운 책'이였는데,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이 다음말에 더 공감할 것이다.

'아름다운 책'을 읽었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이런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 기뻤다가 이 책을 읽은 총평이었다.


코스모스는 총 13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 과학책을 읽으면서 목차에 감동하기는 처음인 것 같다. 7번째 장인 '밤하늘의 등뼈'를 먼저 읽기 시작했다. 중간부터 읽어도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왠지 이미 절반을 읽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벽돌책을 읽을 때 내가 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하루에 한 챕터씩 읽는 걸 목표로 한다고 하면 사실 2주면 읽을 수 있으나 현실은 2달이 소요되었다.


완독 후 코스모스와 연계된 책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목록은 다음과 같다.

앤 드루얀의 <코스모스>:가능한 세계들, 호르헤 챔의 <코스모스 오디세이>, 린 마굴리스의 <마이크로 코스모스>, <공생자 행성>, 코스모스를 옮긴 홍승수 교수의 <나의 코스모스>, 사샤 세이건의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 애드윈 애벗 애벗의 <플랫랜드>, 칼 세이건의 <지구의 속삭임>, <창백한 푸른 점>, <에덴의 용>, <브로카의 뇌>, 소설 <컨택트>까지 길고 긴 여정이었다.

물론 어떤 책은 꼭꼭 씹어먹을 수 있었던 반면 눈으로 쓱 대충 훑은 혀만 갖다 댄 책도 있었다. 역시 나의 소화기관은 튼튼하지 못했다. 그 빈틈을 사이언스 북스에서 하는 유튜브로 채웠으니 태어나서 이렇게 나를 괴롭힌 책은 처음이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멀미에 메슥거림을 동반한 경이로움이 총평이라면 너무 소박한가?



코스모스를 거대한 바다라고 생각한다면 지구의 표면은 곧 바닷가에 해당한다. '우주라는 바다'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거의 대부분 우리가 이 바닷가에 서서 스스로 보고 배워서 알아낸 것이다. 직접 바닷물 속으로 들어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은 겨우 발가락을 적시는 수준이었다. 아니, 기껏해야 발목을 물에 적셨다고나 할까. 그 물은 시원해서 좋다. 그리고 저 바다는 우리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p.37




그 어느 곳을 펼쳐도 모든 문장이 아름다워 맘에 드는 문장을 적다가 그냥 포기했다. 소제목도 음악적인 요소가 들어가서인지 한 편의 시를 보는 것 같았다. 세명의 지성인이 뭉치면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인가? <코스모스>는 칼세이건, 앤 드루얀, 스티븐 소터 세 사람의 합작이며 그가 참여한 대부분의 프로젝트들이 많은 사람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각 장의 인트로를 꾸미고 있는 문장들을 보면 칼 세이건의 독서력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한 분야의 최고가 되기도 힘든데 이렇게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다니 새삼 존경스럽다. 또한 책을 펼치면 나오는 누구를 위하여에서 가족의 이름이 계속 연결되는 점도 부러웠던 점 중의 하나다. <코스모스>는 앤 드루얀(칼세이건의 세 번째 부인)에게, <콘택트>는 딸 사샤에게,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는 사샤의 딸 헤레나 하야에게, <지구의 속삭임>에서는 칼세이건의 두 번째 부인 린다 살츠먼 세이건과 당시 친구였던 티머시 페리스와 약혼녀인 앤드루얀의 이름을 보고선 빵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첫 번째 부인인 린 마굴리스와 아들 도리언 세이건이 쓴 책을 보면서 글을 함께 쓸 수 있는 가족의 유대감이 이 가족의 전체적인 정서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앤 드루얀을 위하여

공간의 광막함과 시간의 영겁에서

행성 하나의 찰나의 순간을

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은 나에게는 하나의 기쁨이었다.




우주물질 중에 우리가 아는 건 고작 5%, 27%는 암흑물질, 67%는 알 수 없는 물질 즉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 모른다는 말 자체가 정말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신을 객관화하고 성찰하며 자기비판이 선행될 때 인류는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다. 더 이상 기후문제, 핵전쟁, 환경파괴 같은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다. 과학자들과 환경론자, 거기에 깨시민들이 계속 목소리를 내었기 때문일 것이다.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 개막식에서 아인슈타인이 한 연설이 <코스모스> 프로젝트의 변함없는 꿈이며 칼세이건과 그의 부인 앤드루얀이 40년 동안 해온 일을 한마디로 압축한 문장이라고 한다.


"과학이 예술처럼 그 사명을 진실하고 온전하게 수행하려면, 대중이 과학의 성취를 그 표면적 내용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까지도 이해해야 합니다."


천체우주학을 공부하기 위해 <코스모스>를 펼친 사람에게는 이게 과학책이라고?라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다. 신화, 전설, 종교, 문화유산, 문명찬양 등 인문학적인 요소들이 어우러져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누구에게는 생활지침서나 자기 계발서, 생존 가이드북, 힐링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각주가 없다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과학이 왜 필요한지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된 것 같다.

내가 느끼지 못해도 우주는 쭉쭉 팽창하고 있고 지구는 오늘도 자전과 공존을 할 것이며 내가 우주로 튕겨나가지 않는 건 중력이 있어서라는 소박한 진리를 다시 되새기며 인류의 미래를 고민하던 지성인이 보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과학이 우리에게 모호함을 참아내는 능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과학은 우리에게 자신의 무지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도록 요구하고 증거가 나타날 때까지 판단을 유보하도록 요구한다.

그렇더라고 우리는 변변찮으나마 이미 가진 지식을 활용해 현실의 새로운 언어들을 찾아보고 해독하는 일만은 문제없이 계속할 수 있다. 앤드루얀 <코스모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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