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코너의 첫 책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다. 여러 가지 삶의 형태가 있겠지만 매일 반복되는 일상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설정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 나는 책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다. 첫 문장부터 마침표가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뒤의 설명을 읽은 후에야 이해가 되었다. 재독을 하고 16섯개의 마침표를 찾아냈다.
개인적으로 긴 호흡의 책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 역시 호흡이 길다. 긴 대신에 문장의 길이는 짧아서인지 잘 읽힌다. 마침표 없이 쉼표로 연결되는 문장은 산문시처럼 느껴진다. 노벨문학상 작품에 대한 선입견이 작년부터 바뀌었는데 아니 에르노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부터다. 일단 책의 두께가 얇고 가독성이 좋다. 한 작가의 전작을 모두 읽는 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허들이 높지 않은 작가였다.
예전에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고 던져버린 기억이 이제는 덮일 만큼 노벨상 수상작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해소되었다고 해야 하나.
표지를 보면 바닷가 마을에 집 한 채와 작은 배 하나가 있다. 바다 뒤편엔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피오르드 협곡이 펼쳐져 있다. 이 집의 주인공은 어부 올라이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되어 있는데 1부에서는 올라이 부부의 아들 요한네스의 탄생을, 2부에서는 요한네스의 죽음을 그리고 있다. 러시아 문학을 읽을 때 어려웠던 점은 한 인물에 3개의 이름이 나온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때의 당혹감이라면 남미문학 <백 년 동안의 고독> 같은 경우 하나의 이름에 할아버지, 아들, 손자가 공통으로 쓰인다는 점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요한네스는 할아버지의 이름이었고 요한네스의 7명의 자녀 중 한 명은 아버지의 이름인 올라이를, 요한네스의 막내딸 싱네 또한 그녀의 아이에게 고모 이름을 준다. 대를 이어서 가족의 이름이 계속 불린다는 것. 개인은 죽었지만 이름은 계속된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하지만 대체 무슨 일일까? 어쩐지 모든 것이 다르면서
여느 때와 같고, 모든 것이 여느 때와 같으면서 동시에 다르다, 요한네스는 생각한다. p.58
아침에 일어났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너무나 가볍다. 몸의 통증도 없고 일어서는 것이 아무 일도 아닌 듯 수월하다. 집안은 여름날의 아침처럼 기분 좋게 따뜻하다. 담배를 한대 피우고 커피를 끓인다. 예고도 없이 죽은 아내 에르나와 친구 페테르를 생각하다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창고를 들여다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영혼이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 영혼은 무엇을 할까? 요한네스가 매일 반복했던 일과를 따라가다 보면 너무도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어서 더 뭉클함이 느껴지는 것 같다. 가까이 사는 막내딸 싱네의 집에 가는 것, 40년 가까이 서로 머리를 잘라주었던 친구 페테르를 만나는 것, 해변을 따라 산책하는 것, 페테르의 게망을 끌어올리고 시내로 가서 파는 것, 젊었을 때 첫사랑이었던 안나 페테르센을 만난 것, 그러다 지금의 부인이 된 에르나와 사랑에 빠진 것 등등 우리가 흔히 주마등처럼 지나갔어라는 표현에 적절한 장면들이 그려진다.
나는 지금 <그리고>의 인생을 사는 중이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매일 되풀이해왔던 일상을 다시 한번 산다면 어떤 하루를 살고 싶은지 계속 생각 중이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해야만 훌륭한 것은 아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기적이라는 타이틀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7명의 아이를 키우고 예고 없이 아내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친구도 죽고 홀로 쓸쓸히 집에 남겨졌을 때를 가만히 생각해 본다. 빈 집에 아무도 없이 홀로 죽고 싶지는 않다. 그래도 요한네스에게는 페테르가 있다. 오늘 아침 일찍 숨을 거뒀다고, 제일 친한 친구여서 내가 온 거라고 말한다.
보통 아내가 오는 게 맞지 않나 싶었지만 친한 친구가 오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누가 와야 하나???
요한네스는 그곳이 어디인지, 위험한지, 아픈지 꼭 살아있는 사람처럼 질문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고 있는 싱네와 다른 자식들, 손자들, 이웃들, 지인, 목사의 모습을 보면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1부인 아침에서는 '자애로운 신 못지않게 사탄 역시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이원론적 사고가 올라이의 입을 통해 드러낸다면 2부 저녁에서는 “그곳에는 너도 나도 없다네, (중략)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어(p.132)”,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p.134)라는 일원론적 사고를 페테르의 입을 통해 대변한다. 서양철학의 변화 같기도 동양사상이 들어간 것 같아서 이 부분이 흥미로웠다.
그러면 게망은 뭐하러 걷어올렸나, 요한네스가 묻는다
자네 삶과의 연결을 끊어야 하니 뭔가는 해야 했지, 페테르가
말한다 p.130
어부인 요한네스에게 '게망'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읽고 있던 책'을 마저 읽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만인의 신은 없다. 그러나 자기의 신은 있다." 이상의 첫 소설 12월 12일에 나오는 문장이다. 나의 신이 오늘도 열일하기를 바라며 마침표 없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