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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에릭 와이너/어크로스

by 자몽커피

어느 날 아침 시몬 드 보부아르는 매일 아침 그렇게 하듯 거울을 들여다보고 웬 낯선 사람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 사람은 누구지? 거울 속 여자는 "눈썹은 눈 위로 흘러내렸고, 눈 밑에 다크서클이 깔렸으며, 광대는 지나치게 툭 튀어나오고, 주름 때문에 입가에 슬픈 기운이 감돌았다." 저 여자는 자신일 수 없었다. 하지만 저 여자는 내가 맞았다. "내가 여전히 나이면서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보부아르는 궁금했다. p.435




오늘 소개할 책은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입니다.

2021년에 출간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철학 부분에서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핫하다면 핫한 책이랍니다. 시간도 다르고 장소도 다르고 참여한 사람들이 달라서인지 이번이 세 번째였음에도

이 책이 다가오는 느낌은 매번 새롭네요.

특히 이번에는 황혼편이 훅 마음에 와닿았어요. 물리적으로 나이 듦도 있겠지만 작년 계엄으로 정신적으로도

한 십 년은 늙은 느낌입니다. 아~ 왜 나만 늙은 걸까?


각각의 쳅터가 독립적이어서 기차 여행을 하듯이 한 칸 한 칸 읽어도 좋고 중간중간 건너뛰고 읽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새벽, 정오, 황혼으로 분류해 놓은 큰 쳅터에 마르쿠스, 소크라테스, 루소, 소로,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 시몬 베유, 간디, 공자, 세이 쇼나곤, 니체, 에픽테토스, 보부아르, 몽테뉴까지 저자라는 필터를 한번 거쳐서 나온 글이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자신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책상에서 연구해서 나온 철학서와 다른 점은 작가가 직접 여행을 통해 철학자를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아테네에서 유럽, 인도, 소로의 호수 월든, 일본 교토까지, 특히 딸 소냐와의 대화 내용은 가끔씩 펀치를 맞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악명 높은 인도의 요가기차를 검색하는 나 뭔가요? 니체가 좋아했다는 실스마리아도 가보고 싶네요.


철학하면 우선 머리 아프다, 어렵다, 뭔 소리인지~ 같은 반응을 보이는 분들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이 책에 나오는 철학자들은 대부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던 철학자이니까요. 위에 엄선된 14명의 철학자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흠도 많고 나약한 면도 많은 그냥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냄새가 폴폴 풍기는 인물들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은 짧은 삶을 사랑했고, 질문했고, 경험을 중요시했고, 실천했기에 철학자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어요.

그 대표적인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입니다. 그의 모든 질문은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외침이었고, '왜'라는 질문보다는 '어떻게'라는 질문에 더 관심이 있었어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알 수 있는지 말이지요.


이제 철학은 우주에 대해 불확실한 추측을 하는 학문이 아니다. 철학은 삶, 우리 자신의 삶에 관한 것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최대한 잘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철학은 실용적이다. 필수적이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철학자였던 키케로는 이렇게 말했다. "소크라테스는 처음으로 철학을 하늘에서 끌어내려 마을에 정착시켰고, 철학을 사람들의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p.50





요즘처럼 이불밖으로 나오기 힘든 날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떠올립니다. 로마의 황제도 '아침'이라는 적과 씨름을 했다는군요.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슴 통증과 복통으로 고생했으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저는 그냥 힘들거든요.

<명상록>에는 "침대에서 나오기가 힘들면......"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글이 많다고 하네요. 아직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요. 먼 나라 로마 황제도 별수 없구나! 갑자기 수험생들, 직장인들이 매일 저주하는 아침이 로마에서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마법의 주문을 알려드릴게요.



"새벽에 침대에서 나오기 힘들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한 인간으로서 반드시 일해야만 한다'"스토아학파나 황제,

심지어 로마인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p.36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나는 닭이 아니다. 나는 고양이가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니까 닥치고 일어나!


"호수의 찌꺼기"라는 별명을 가진 소로에 대해 알아볼까요. 예수님도 동네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듯이 소로도 동네에서 양아치 취급을 받는 청년이었습니다.

<월든>의 영웅이자 미국 설화의 사랑받는 아이콘, 환경주의의 주창자, 문학의 거성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월든에서 고립되어 살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요리를 먹으려고, 우체국과 카페에 들르려고 종종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은 마을로 향했습니다. 음식과 빨래는 여전히 엄마에게 의존하는 소로라니, 다시 <월든>을 읽는다면 이 미국아저씨가 더 친숙하게 다가올 것 같네요.

저는 소로의 '보는 법'을 읽고 나서 현재 보이는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걸,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한 채 섣불리 판단하고 재단했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지 않고 일으키는 오류 속에 빠져 살았던 거죠. 아주 오랜 시간 무언가를 들여다본 적이 있었나 싶기도 합니다.



"관찰이 흥미로워지려면, 즉 중요한 의미를 가지려면, 반드시 주관적이어야 한다."p.121


세이 쇼나곤의 <베갯머리 서책>으로 넘어갈까요? 1000년 전 교토의 잘 알려지지 않은 궁녀가 쓴 기이한 책으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세이 쇼나곤은 중류 귀족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일본 고유의 노래인 와카와 한시문을 배워 교양을 쌓았습니다. 그 명성으로 993년 이치조 천황의 비 데이시 중궁을 보필하는 여방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이후 후궁 문화를 이끌어 가는 재원으로 활약했으며 궁중 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본 수필 문학의 효시가 된 <베갯머리 서책>을 썼습니다.

저의 첫인상은 '두껍다'였습니다. 850페이지가 넘는 책이니 벽돌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수전 손택이 독보적인 목록 제작자였다면 세이 쇼나곤도 결코 빠지지 않습니다. 302개의 차례를 만들었으니까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에서는 297개로 나와있습니다) 차례와 그 글을 해석하는 해제, 주석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중간중간 삽화도 들어가 있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쇼나곤은 '진정으로 기쁜 것'으로 해석되는 오카시를 397번이나 썼습니다.

<베갯머리 서책>을 읽고 나면 당장 일기를 쓰고 싶어 집니다. 1. 사계절의 멋, 19. 근사한 집, 25. 어쩌지는 못하고 정말 얄미워-밉살스러운 것, 67. 마음이 불안불안- 마음이 안 놓이는 것, 91. 짜증-화나는 것..... 294. 맥 빠지는 일, 301. 밀회에서 읊은 노래를 제목으로 저만의 글을 쓰고 싶어 지네요. 작고 소소한 글쓰기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자신의 늙음을 온몸으로 저항했던 보부아르도 결국에는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말 인간적으로 소개가 되어 있습니다. 딸 소냐에게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저자도 '나는 늙지 않았다'라고 자기 암시를 합니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기이할 만큼 노년에 침묵했다고 하네요. 외딴섬에 혼자 살고 있는 여성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십 년이 흐른 후 그녀는 늙은 걸까요? 우리가 늙었다고 하는 개념도 결국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 사회적 판결일 뿐입니다. 배심원이 없으면 판결도 없는 것이죠. 무인도의 여성은 생물학적 노쇠를 경험하겠지만 나이가 들지는 않는 것이죠.


"그래, 소냐야. 질문이 뭔데?"

"언제부터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했어"

"음, 스물네 살 때쯤인 것 같은데."

"왜 그냥 다 밀어버리지 않았어?"

"희망을 놓지 못한 것 같아."

"다 부질없다는 거 알잖아, 아빠."

"그래, 그렇지." p.444




보부아르가 쓴 <노년>이라는 책에는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을 소개합니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7. 아무것도 하지 말 것 8. 부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10. 다음 세대에 자리를 넘겨줄 것


여전히 권력을 놓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보면서 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렇게 추하게 늙지는 말아야겠다가 삶의 목표이기도 해요. 유시민 작가가 인간은 잠깐 쓰이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그 잠깐의 쓰임을 잊지 못해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물려주지 않으려는 모습만큼 안쓰러운 건 없다고요.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나는 이것이 노년의 최종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물길을 좁히는 것이 아니라 넓히는 것.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는 것. 카이로스의 지혜. 모든 것에는 알맞은 때가 있다. 심지어 물러나는 것에도. p. 474



나아가며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이 빠짐없이, 정확히 똑같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그토록 지우고 싶었던 부끄러운 순간도 영원히 반복된다면 어떨까요?. 만약 모든 것이 무한히 반복된다면, 인생에 가벼운 순간이나 사소한 순간은 없겠지요.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모든 순간이 동일한 무게와 질량을 갖기 때문입니다.

니체의 영원회기는 자기 삶을 무자비하게 검사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게 하죠. 영원히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가?



더 나은 것이 있다. 춤추는 것. 춤춰야 할 이유를 기다리지 말 것. 그냥 춤출 것. 마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내키는 대로 흥겹게 춤을 출 것.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삶이 괴로워도 춤을 출 것. 그리고 시간이 다 되어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 것. 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p.389


이번에 읽은 책은 가볍고, 재미있고, 그러면서 실용적인 책이었습니다. 철학은 저기 멀리 하늘,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그 옛날 소크라테스님의 말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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