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일 만에 결혼하기 프로젝트
신랑 양복 맞춤 및 턱시도 대여
남자친구는 5년 전 누나가 결혼할 때 맞춰준 비싼 양복이 있어서 웨딩 촬영과 본식 때 그걸 입으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에 그가 그 양복을 입은 모습을 뒤늦게 확인하는 실수를 저질러버렸다. 핏이 생각보다 예쁘지 않았고 무엇보다 원단이 울어서 본식은 물론이고 촬영용으로도 입을 수 없었다. 포토샵으로 살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웨딩촬영이 임박해서야 그가 가지고 있는 양복을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짜증이 밀려왔다. 촉박한 스케줄과 과도한 업무로 피로가 쌓여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안 그래도 정할 것들이 산더미라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계획에 없던 남성 예복까지 알아봐야 하니 멘붕이 왔다.
두 번째 갈등
결국 그가 양복을 맞췄다는 그 예복점에 함께 방문해 수선을 맡겼다. 일주일 후 수선을 마친 양복이 나왔다. 남자친구가 입은 모습을 보고 나는 수선사에게 무척 화가 났다. 재킷 등판은 여전히 울어있고 바지 기장은 어정쩡했으며 무엇보다 전문가 답지 못한 그의 에티튜드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나는 일에 있어서 프로답지 못한 사람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비싼 원단을 가지고 이런 결과물을 만든 것이 이해가지 않았다. (참고로 나의 전공은 패션 디자인이다.) 짜증스러운 말투로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이 것이 우리의 두 번째 갈등의 원인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남자친구는 누나가 신경 써줘서 맞춰준 예복에 내가 혹평을 해서 기분이 상했다는 것이다. 바빠 죽겠는데 내 머릿속에는 누나가 해준 양복이고 뭐고 그 양복점이 만들어 놓은 결과물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느라 미처 거기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바쁜 와중에 양복의 의미까지 생각해야 된다니 골치가 아팠다. 게다가 내가 감정적인 말투로 업체 사람을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는 그 수선사가 프로답지 못하게 일처리를 해서 우리의 스케줄에 차질이 생겼는데 나를 위로하기는커녕 되려 나를 책망해서 기분이 상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코앞에 두고서 남자 예복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어버려 마음이 급한데 갈등까지 생기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계속 불어나는 예산
플래너가 없었기에 웨딩드레스숍 원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원장님은 우리에게 남성 예복 테일러샵 대표님을 소개해주셨다. 우리는 소개받자마자 바로 그곳을 방문했다. 매장에 들어가 디스플레이가 된 정장을 둘러보니 소재도 좋고 디자인도 예뻐서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예복 대여비가 굉장히 높았다. 내가 고른 촬영용 드레스가 총 4벌이어서 거기에 어울리는 양복을 최소 2-3 착장만 대여해도 지출이 꽤 나가는 것이다.
그곳은 대여뿐만 아니라 맞춤 정장도 같이 하고 있었는데 만약 양복을 맞추면 무료로 예복 대여가 가능했다. 양복 개수 제한도 없고 셔츠, 구두, 보타이 등 액세서리까지 전부 무료로 대여가 가능했다. 맞춤 정장 비용이 다른 곳에 비해 2-3배가량 높았지만 그래도 예비 신랑에게 좋은 양복 한 벌은 꼭 해주고 싶어서 본식용 예복을 그곳에서 맞추기로 했다. 안 그래도 스튜디오 촬영이 며칠 남지 않아서 이것저것 챙길 여유가 없었는데 이곳에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한시름 놓았다. 결국 우리는 본식 2부 때 입을 예복을 고급 라인으로 하나 맞추고, 동시에 촬영용 정장과 본식 1부 턱시도를 개수 제한 없이 마음껏 대여하는 것으로 남성 예복은 아름답게 최종 마무리가 되었다.
턱시도, 예복이란 또 다른 세상
예비신랑의 키가 커서 양복을 입혀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남성 예복을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어서 놀라웠고, 특히 무제한으로 대여가 가능한 것이 정말 편리함의 끝판왕이었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착장은 검정 벨벳으로 만든 턱시도였는데 겨울이었으면 본식 때 이 착장을 꼭 넣었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각 드레스와 어울리는 착장을 만들어 무사히 예복 대여 예약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