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I

10대부터 20대 중후반

by 자몽까는언니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10대 - 암흑기

1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나의 목표는 오로자 하나였다. 바로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행복한 결혼으로 골인하는 것’이었다. 유년시절 나에게 연애란 감히 학생 신분인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연애는 자고로 성인이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종의 ‘어른들만의 특권’이라 생각했다.

상위권 대학교에 진학하면 멋있는 이성들과 연애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에, 학창 시절 나의 주된 관심사는 오로지 대학 입시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또래 여학생들은 벌써부터 화장을 하고 렌즈를 끼고 교복치마를 짧게 수선하는 등 외모 가꾸기에 진심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한번 화장이란 걸 하고 꾸며보고 싶었지만 학업 성적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부모님 앞에서 감히 그런 모습을 보이기 두려웠다. 부모님은 학생은 학생답게 수더분하게 입고 공부에 집중해야 된다고 늘 말씀하셨다. 꾸미는 것은 대학교 가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이다.

현실 속 나는 귀밑 1cm 단발머리에 안경을 쓰고 긴 교복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상상 속 나는 몸매 늘씬한 긴 생머리의 샤방샤방한 대학생 언니였다. 목표한 대학교에만 진학한다면 상상 속에 그 세련되고 예쁜 대학생 언니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20대는 왠지 이전과는 180도 다른 유토피아가 펼쳐질 것만 같았고 남다른 특별함이 있을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그 속에서 신나게 연애하고 청춘을 마음껏 누리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멋질지 벌써 상상만으로 짜릿하고 몹시 기대됐다.


20대 초반 - 불안정한 청춘

인생이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깨달았다. 유년시절의 전부를 바쳐 대학입시에 올인했것만 결국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참담했다. 재수는 죽어도 하기 싫었기에 급하게 방향을 틀어 유학을 준비해서 뉴욕에 소재한 패션스쿨에 진학하게 되었다. 남들이 보았을 때는 부러워 보일지 몰라도 목표했던 대학입시 결과가 좋지 않아 유학길에 오른 것이라 나의 기분은 마치 패배자가 된 것 만 같았다.

생각했던 결과가 아니어서 씁쓸했지만 어쨌거나 대학교에는 진학한 것이니 자연스럽게 관심사가 연애로 넘어갔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듯 대학교에만 진학하면 갑자기 살도 빠지고 남자친구도 생기고 찬란한 인생이 펼쳐지는 줄 알았다. 뉴욕에 가면 ‘러브인 맨해튼’ 한편 찍고 오는 줄 알았다. 현실은 러브인 맨해튼은커녕 남자 사람 친구도 없었다. 내가 진학한 패션스쿨의 전체 학생의 90%가 여자였다. 그나마 10% 남짓 있는 남자들은 대부분 게이였다. 대학생활은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어른들의 말은 거짓이었다. 대학교를 가도 인생에서 특별한 일은 펼쳐지지 않았다. 저절로 살이 빠지지도 예뻐지지도 않았고 갑자기 멋있는 남자가 뿅~하고 나타나지도 않았다. 깊은 고민에 빠졌다.

대학교에 진학했음에도, 이 무료함과 재미없는 현실의 원인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혼자서 내리게 되었다. 바로 ‘내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지 못해서’라는 엉뚱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는 학벌 콤플렉스로 이어졌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느니 내가 앞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취업을 잘하면 멋진 남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커리어 우먼이 된다면 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멋있는 여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커리어 우먼이 된 미래의 상상 속의 나를 그려보았다. 생각만으로 짜릿했다. 다시 꿈꾸기 시작했다. 취업에 성공해서 멋있는 커리어 우먼이 된다면 그에 걸맞은 멋진 왕자님을 만나서 멋진 연애를 하는 등 이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신세계가 펼쳐질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피어났다.

그리하여 나는 대학생활을 ‘성공적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에 올인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방학 때마다 관심 있는 브랜드와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스펙을 쌓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재미는 하나도 없었다. 목표는 오로지 하나였다. 바로 대학교 졸업과 동시에 업계 최고로 좋은 직장에 입사하는 것이었다.

인턴을 하며 가뭄에 콩 나듯 이성을 알게 되는 일이 생겼고 가끔 길을 가다가 헌팅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중에 내 스타일의 이성은 없었다. 내향적인 성격에다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이라 소개도 별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있는 친구들도 디자인 전공자가 대부분이라 그녀들 주변에도 이성이 없었다. 당시에는 요즘처럼 각종 모임 어플이 활성화되어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에 지인 소개나 자연스러운 만남이 아닌 이상 이성을 만날 만한 루트가 다양하지 않았다.

호기심이 많은 성격 탓에 연애 자체가 몹시 궁금한 나머지 대학생 때 나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이성과 한 두 번 사귀어 본 경험은 있었다. 설레거나 기분 좋은 감정 같은 건 딱히 느껴보지 못했다. 되려 상대에게서 좋은 점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였고 내가 감사함과 만족을 모르는 부족 사람인 것 같이 느껴져서 죄책감이 들었다. 대체 무슨 마음으로 이성을 만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연애에서 행복감을 느껴보지 못했다. 20대 초중반의 나는 곁에 이성이 있거나 없어도 늘 ‘완벽한 연애’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20대 중후반 - 여전한 혼돈 속의 청춘

취업은 성공적이었다. 목표대로 스물다섯에 대기업에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인생 첫 성취였다. 기쁨도 잠시, 안타깝게도 상상과는 달리 입사 초반부터 야근도 많고 주말 근무도 잦았다. 업계 최고의 기업에 취업을 했음에도 멋있는 커리어우먼은커녕 맨날 선배들에게 돌아가며 욕먹는 동네 북이 된 기분이었다. 디자인실 막내는 선배들 시중을 드는 무수리나 마찬가지다. 집에 오면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퇴근 후에는 왕자님같이 멋있는 남자들과 교류하는 화려한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그런 남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나마 대학생 때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이어오던 연애도 다툼 끝에 결국 막을 내렸다. 인생 첫 이별이었다. 나는 일찍 결혼하는 게 꿈이었다. 20대 중반에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결혼은커녕 이별을 했다. 성에 안 차는 연애였음에도 처음 겪어보는 이별의 후유증은 꽤나 컸다. 20대 중반임에도 내 나이가 많다고 생각이 들어 몹시 불안했다. 애초에 완벽한 연애는 없는 걸까? 지난 연애가 보통의 연애였을까? 내가 분수에 비해 욕심이 많았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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