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7개월 전

수술실

by 자몽까는언니

눈을 떴을 때 흐릿한 장면이 보이다가 점점 선명하게 사람들이 보인다.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 가장 먼저든 생각은 ‘나를 왜 살려놓았지?’였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이산화탄소를 과다주입해서 어깨가 칼로 베는 듯이 아팠다. 24시간 넘게 물도 못 마신 금식 상태여서 갈증이 몹시 심했다. 나는 극심한 갈증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한 고문이 될 수 있는지 태어나서 처음 알았다. 목만 적시고 바로 뱉을 테니 한 방울만 달라고 애원했다. 위험해서 그것도 안 된다고 했다.


입원일로부터 약 3주 전 갑작스럽게 수술이 결정됐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무엇보다 무려 2개월 동안 일을 쉬어야 한다는 말에 망연자실했다. 자영업자로서 공백기간을 갖으려고 하니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필라테스 센터를 운영하는 원장이다. 매달 나가는 고정지출과 선생님들 월급 그리고 생활비를 생각하면 막막했다. 센터를 확장 이전하고 여러 진통을 겪은 후 이제 막 자리를 잡아 조금 숨통이 트인다 싶었던 터였다. 돌이켜보니 스물네 살부터 13년 동안 일을 한 번도 쉬어 본 적이 없었다. 그간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이제 막 빛을 보려고 하는데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큰 고난을 또 한 번 마주하니 하늘이 야속했다.


수술을 앞두고 ‘나 어떡하지’보다 우리 ‘회원님들 어떡하지’부터 생각났다. 그런 나 자신이 가여워서 퇴근 후 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펑펑 울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의 진정한 무게감을 처음 느껴본 순간이었다. 마냥 슬픔에 빠져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기엔 현실의 책임이 무거워 수습을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눈물을 닦고 애써 정신줄을 다잡고 가장 먼저 담당 회원님들과 일정을 조율했다. 센터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에게 업무를 인수인계 하고 단 하루도 쉴 틈도 없이 끝까지 최선을 다 해 수업을 마무리 한 뒤 병원에 입원했다. 마지막까지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내가 하는 수술에 대해 제대로 검색도 해보지 못하고 병원에 들어왔다. 워낙 간단한 수술이라고 들어서 노트북을 챙겨 병원에 들어갔지만 노트북은 병원에서 단 한 번도 열어볼 수 없었다.


진통주사는 1시간 뒤에 놓아준다고 했다. 1분 1초도 못 참겠는데 1시간이나 참아야 한다니 눈앞이 새까맣고 막막했다. 분명히 가벼운 수술이라고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인가 싶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뒤통수를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내 몸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곳은 오른손뿐이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내 가슴을 때리기 시작했다. 쇄골도 잡아 뜯고 명치를 마구 때렸다. 간호사가 놀래서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양손으로 잡고 말렸다.

‘내가 그동안 정말 잘못 살았구나.’ 갑자기 후회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간 열심히만 살아왔던 게 몹시 후회됐다. 나중을 위해서 현재를 참은 모든 행동들이 뼈에 사무치게 후회됐다. 돈을 아끼겠다고 여행을 많이 안 다닌 것도 후회됐고 나한테 좋은 물건을 사주지 못한 것도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가장 후회되는 것은 서른여덟이 될 때까지 깊은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것이었다. 주변인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내가 나를 속이는 삶을 살아왔고 결국 그런 스트레스가 나를 해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남은 생은 나쁜 X로 살겠다

그 순간 결심했다. 회복해서 다시 예전처럼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오로지 나만을 '1번'으로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 남자 저 남자 만나가면서 나쁜 X처럼 연애도 해보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갖고 싶은 거 다 갖고 이루고 싶은 거 다 이루면서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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