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 사람 II

20대 후반부터 서른여덟

by 자몽까는언니
20대 후반

회사원 신분이 되니 확실히 학생 때보다는 소개팅이 간간이 들어왔다. 이별 이후에 하는 소개팅은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떤 이성을 만나도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고 다음 연애의 시작이 어려웠다. 퇴근하고 이성을 만나면 얼굴만 봐도 짜증이 밀려왔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지 이성에게 집중하기 어려웠다. 회사에서 1분 1초가 지옥 같았다. 회사에 적응이 워낙 어려웠고 일로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이성을 만나고 싶은 마음보다 커졌다. 이렇게 회사 생활을 지속했다가는 결혼으로 골인도 어려울 것 같았고 운이 좋아 결혼하더라도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았다. 결혼한 회사 선배들을 보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퇴근 시간과 낮은 연봉에 비해 높은 업무 강도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겨우 버티다 보니 어느덧 5년 차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필라테스를 접하게 되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뛰고 설레었다. 하루 종일 필라테스를 할 수만 있다면 그 보다 행복한 게 있을까 싶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막연한 설렘이었다. 퇴사를 하고 필라테스 강사가 되어 내 몸을 예쁘게 만들고 건강한 라이프를 영위하며 평생 용돈벌이를 한다면 괜찮은 신붓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는 예민한 여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은 남자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강사가 되면 근무 시간에 유연성이 있기 때문에 이성의 입장에서 회사원보다는 결혼에 적합한 여자가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왜 이때까지 이 생각을 못했지? 그래 필라테스 강사가 되는 거야!


당시에는 필라테스가 알려진 운동이 아니었기에 내 아이디어가 매우 신박하다고 생각 들었다. 대리 승진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표를 내고 필라테스 강사로 커리어를 새롭게 시작했다.



월 60만 원 받으며 풀타임근무 인턴으로 다시 시작했다. 인생이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듯 막상 도전해 본 필라테스 강사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인간의 체형이란 것이 일률적이지 않고 질병들도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내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지식과 경험을 요구했다. 이왕 시작한 일인 만큼 제대로 하고 싶었고 사람의 건강을 다루는 직업이라 책임감 있게 일하고 싶었다. 평일은 일하고 주말에는 워크숍을 다니며 공부했다. 일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이전 회사생활이 지옥 같았기 때문에 어떠한 악조건의 상황도 버틸 수 있었다. 운동업계는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저녁타임이 피크이기 때문에 주로 저녁에 일해야 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만남도 어려워지고 그야말로 일독에 빠져서 살게 됐다.


30대 - 첫 설렘

바쁜 와중에도 간간이 소개팅이나 선을 봤다. 신기하게도 서른이 넘어서야 이성에게서 설렘을 느꼈다. 나는 커리어가 있고 약간의 중후한 느낌이 나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설렘을 느끼는 이성과 순수한 사랑을 한번 해보고 싶었지만 내가 만나는 남성들은 순수한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부분에 비중을 두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은 내가 거꾸로 가고 있다고 했다.

필라테스 강사는 남자들에게 인기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내가 강사가 된 이후로 꽤 오랜 세월이 흘렀을 때 알게 되었다. 많이 순진했다. 내 브랜드를 만들어 센터를 차리고 자영업자라는 타이틀을 추가로 만들고 싶었다. 직업에 대한 편견에 맞서 싸우기 위해 틈틈이 공부하고 열심히 강사 생활을 하며 돈을 모았다. 우여곡절 끝에 목표한 대로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조그마한 필라테스 스튜디오를 차렸다. 센터를 차렸다고 끝이 아니었다. 이를 잘 운영하기 위해 악착같이 살았다.

물론 그 과정에서 중간중간 소개팅, 미팅, 선을 보며 이성을 만났다.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만남들 중에 그 어떤 만남도 연애로나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삼십 대는 엇박자의 짧은 만남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무려 10년 차 필라테스 강사이자 사장이 되었다. 내 나이는 무려 서른여덟이 되었다. 열심히 일도 하고 이성도 만나며 살았는데 어쩌다 보니 삼십 대 후반이 될 때까지 이성과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서른여덟

마흔 전에 결혼은 할는지. 하늘이 무심하게도 서른여덟 끝자락인 12월에는 건강이상으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열심히 산 대가가 고작 이거인가 싶었다. 깊은 절망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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