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이모저모 (1)
네덜란드에 온 지 어느덧 5년 차에 접어들었다. 생활반경에서 먼 곳으로 떠나온 만족감은 잠시, 익숙하지 않은 생활방식에서 오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린 것도 사실이다.
익숙해지면,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사실 굉장히 편안하기는 하다. 대표적인 이유로는,
‘예쁘고 비싼 거 다 필요 없어. 실용적인 게 최고야 ' 마인드 덕분이지 않을까.
의상을 예로 들자면, 네덜란드 사람들은 때와 장소에 맞춘 의상을 갖춰 입는 TPO에 굉장히 철저하지만, 입는 옷의 가격이나 브랜드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정확히 말해, 신경을 쓰는 포인트가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더치 사람들은 돈을 쓸 때, 명품브랜드보다는 기능성 브랜드 (예를 들자면 기능성 패딩 브랜드 같은)에 소비하기를 원하고, 이마저도 투자할 만큼의 기능적 혹은 실용적 가치가 없다면 쳐다도 보지 않는다. 실리를 엄청나게 따지는 태생적 성향에서 기인한 것도 있겠으나, 결정적인 이유는 날씨 때문이지 않을까.
네덜란드의 날씨는 1년 중 절반이상의 날씨가 흐린 날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비 그리고 돌풍까지 잦으니, 예쁘고 비싼 옷 공들여 차려입는 것이 참으로 의미가 없다. 전형적인 네덜란드 날씨에 입고 외출하는 즉시 옷이 젖는 것은 기본에 돌풍으로 인한 엄청난 구김으로 인해 새 옷에서 헌 옷으로 순식간이 변모하는 마법을 체험하게 될 터이니. 이러한 이유로, 예쁜 옷보다는 기능성 레인코트나 돌풍전용 우산 등의 기능성 용품들에 신경을 쓰는 편이 여러모로 정신건강에 좋기는 하다.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 때, 네덜란드의 비는 위에서 아래로 얌전하게 내리지 않는다.
바람의 강도에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혹은 오른쪽에서 왼쪽, 때로는 대각선으로, 정말 심할 때는 수평으로 내린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우산이 가장 필요할 것 같은 강수량에 비해 네덜란드 사람들은 정말(!) 우산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비가 내릴 때, 우산 사용 유무에 따라 외국인을 구분할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사방팔방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하기 위해서 가장 효과적인 물건은 단연코 우비다. 다만, 평균신장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축에 속하는 키다리들의 나라에서 나 같은 난쟁이를 위한 우비를 찾는 것은 참으로.. 참으로 어려울 뿐. 이왕 사는 거 오래 입을 수 있는 양질의 우비를 사겠노라 마음먹은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이들의 기능성 브랜드는 나에게 그저 '머나먼 당신'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를 있는 대로 다 맞는 내 모습이 처량했는지, 한 네덜란드 친구가 신상 아이템을 소개해주었으니 이름하여 storm umbrella, 바로 '태풍우산'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이 우산 쓴 사람을 처음 본 그날, 난 그 자리에서 이 우산의 구매를 바로 포기했다.
난 우산이 번개 맞은 줄 알았다. 시속 100km의 강풍도 버틴다는 우산이지만, 난 이 우산을 들고 다닐 용기가 좀, 아주 많이 부족했다.
그렇게 그때부터 4년 정도가 지난 지금, 친구에게 ‘내 인생에서 저걸 사용할 날은 없을 거야’라고 호언장담했던 나는 어디로 간 건지.. 가끔씩 정신 차려보면 인터넷 쇼핑몰 페이지에 'Storm umbrella'를 검색하는 내가 있다. 간혹 한 손엔 핸들을, 나머지 한 손에는 이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괜히 멋있어 보인다...
오우, 정신줄 단디 잡아야 한다.
https://www.newdaily.co.kr/site/data/html/2011/07/08/2011070800038.html
디테일한 정보 제공을 위해 기사를 하나 첨부하니, 관심 있는 분은 위 기사를 참고하시길.
근데 이 기사를 읽어보니, 한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