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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amun May 22. 2023

귀찮은 공주와 버섯 파스타

네덜란드 한 끼 (3) 

그런 날이 있다. 

뭔가 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그런 날. 

뭔가 엄청나게 맛있는 게 먹고 싶다는 뇌의 명령이 떨어지긴 하는데, 그 맛있는 게 당최 모르겠는 그런 날. 

이런 날이 내 입에 뭔가를 넣어주기 가장 까다로운 날이다. 이럴 때 내 뇌는 꼭 공주병에 걸린 환자 같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냐, 이 공주마마 같은 뇌야. 


배달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이지만, 이런 뇌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소비를 감행하고 싶진 않다. 

어쨌든 시끄러운 뇌의 칭얼거림을 잦아들게 하려면, 뭐든 입에 털어 넣어야 한다. 과자나 라면이 가장 빠른 해결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스친다. 하나, 어리석은 생각 말지어다. 

과자나 라면이 들어가는 순간, 내 뇌는 칭얼거림을 넘어 강압 수준으로 더 많은 음식의 섭취를 요구할 것이다. 이는 다년간의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신빙성 있는 결과일 것이니. 


가능한 한 최대한 가공이 덜 된 음식으로 빠른 시간 내에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 

냉장고를 살포시 열어보니, 며칠 전에 사놓은 양송이버섯 한 봉지가 눈에 띈다. 그래, 오늘은 버섯파스타다. 


때는 바야흐로, 프로젝트를 끝내고 나온 어느 겨울밤이었다. 

밤 10시를 앞두고 있었고, 우리 모두는 무척 배가 고팠다. 수중의 돈도 별로 없었다. 집에 갈 여력도 다 떨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학교 근처에 사는 친구의 부엌에서 다 같이 뭔가를 해 먹기로 했다. 

슈퍼마켓 마감 10분을 앞두고 친구들과 급하게 들어가 각자 알아서 건져온 재료가 달랑 파스타, 식용유, 치즈, 그리고 양송이버섯 한 봉지였다. 이걸로 뭘 해 먹나 서로 헛웃음만 짓고 있을 때, 시칠리아 출신의 친구 한 명이 이 재료들 가지고 할 수 있는 환상적인 파스타를 만들어주겠다 자신했고, 그녀는 해냈다. 

딱히 들어간 것도 없는 이 버섯 파스타 앞에서 우리 모두 한 마리의 짐승처럼 접시에 코를 박고 마구 먹어댔었다. 


달리 들어가는 것 없는 이 파스타는 최소한의 재료와 최소한의 요리실력으로도 최고의 맛을 낸다. 

(단, 버섯의 향을 싫어하는 분이 있다면 시도도 해 보지 말 것을 권한다. 그만큼 버섯의 향이 이 요리에서 99.99999%의 지분을 차지하므로. ) 


방법은 간단하지만, 냄비를 두 개나 꺼내야 한다는 점이 파스타 요리의 불유쾌한 점일 것이다. 

원팬 파스타라는 것도 있지만, 이 버섯 파스타를 먹을 때만큼은 약간의 불편함을 허용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 

볶는 용으로 사용할 팬과 면을 삶을 냄비를 꺼내자. 냄비에 물을 담고 소금도 넉넉하게 넣어서 끓여준다. 

이 소금물은 건조한 파스타에게 새 삶을 불어넣어 줄 면수가 될 것이니, 소중히 다뤄준다. 


파스타물이 끓는 동안 약불에 올리브유와 다진 마늘과 양파를 올린다. 팬 위에서 마늘과 양파가 익혀질 동안 양송이버섯을 먹기 좋게 손질해서 올려둔 양파등과 함께 올린다. 버섯손질에 시간이 조금 걸리므로, 그동안 마늘과 양파에서 맛있는 향이 잔뜩 뿜어 나오고 있을 것이다. 버섯에서 타지 않을 만큼 충분한 물이 나오므로 큰 맘먹고 볶을 필요도 없다. 그냥 셰프놀이 삼아, 두어 번 뒤적거리면 된다. 

여기에 간이 될만한 짭짭한 조미료를 한 소끔만 가미해 준다. 소금, 간장도 괜찮고. 참고로 나는 (무려) 새우젓을 한 티스푼이나 사용했다. 





물이 다 끓었다면 먹을 양만큼의 파스타를 투하한다. 난 늘 양 조절에 실패해 만백성이 먹을 만큼의 파스타를 만들어버리는데, 상관없다. 어차피 자취생이니, 먹고 남은 파스타는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나중에 프라이팬에 살짝 덥혀먹으면 된다. 나는 주로 푸실리를 사용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큰 냄비 꺼내기 귀찮아서! 


파스타면이 다 익었다면, 프라이팬에 있던 버섯을 포함한 야채들과 면을 함께 섞어준다. 이때, 파스타를 끓인 물도 한 국자정도 넣고 같이 볶아주면, 버섯의 향이 한층 더 파스타에 향긋하게 배어 든다. 이때가 요리를 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파스타의 탄수화물이 야채육수와 함께 어우러지면서 한층 향긋한 향이 부엌을 꽉 채우는 순간. 


자, 면과 야채들이 잘 어우러졌다면 이제 소스를 만들 차례다. 소스 만들기 귀찮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버터 한 조각, 그리고, 아니면 혹은 다량의 치즈가루만 투하하면 모든 요리가 완성이다. 

좀 더 부지런하고, 맛있게 한 끼를 하기 원한다면 덩어리 치즈를 구입해 즉석에서 치즈를 갈아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지만, '선천적 부지런 결핍증'으로 태어난 나에게는 불가능한 행위일 뿐이다. (농담이다)

시칠리아 친구는 치즈만을 사용했었다. 근데 정해진대로 따를 필요 없다. 집에 사용할 치즈가 없다면 버터를 크게 한 조각만 넣어줘도 그만이다. 내 맘대로 만드는 음식인데 뭐 어떠랴. 

난 둘 다 사용했다. 자, 대망의 완성이다. 



커다란 웍 한 개를 꽉 채울 만큼의 파스타를 보니, 마음이 뿌듯하다. 내 머릿속의 공주마마(호환마마 같기도 한)도 드디어 그 칭얼거림을 멈춘다. 

크림이나 우유대신 버터와 치즈만을 사용한 보통의 집밥 파스타지만,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맛이다. 배 터지게 먹어도, 크림버섯 어쩌고 파스타보다 칼로리도 낮을 것이니 이때만큼은 살찔 걱정을 잠시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열심히 요리한 나, 이제 그 즐거움을 만끽할 차례다.


잠시 후, 정신없이 먹고 만족감에 배를 두들길 때쯤 공주마마가 다시 조심스럽게, 하지만 끈질긴 기세로 말을 걸어온다. 


'입가심은? 디저트는?' 


하하하. 오늘도 다이어트는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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