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amun Jun 02. 2023

빈티지의 천국, 네덜란드

우당탕탕 네덜란드 생활 

딱히 빈티지를 좋아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굳이 남이 입던 옷을 돈 주고 사 입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쇼핑에 나서면, 다양한 가격대와 다양한 디자인의 SPA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내 지갑을 위협했었고, 간혹 엄마가 사다주시는 남대문, 동대문, 혹은 잡다한 시장표 옷들이 즐비했으니 따로 돈 주고 옷을 산다는 생각 자체를 못했던 황금 같은 시절이었다. 


빈티지에 관심이 있다면 네덜란드는 꽤나 좋은 나라다. 

저가부터 고가의 다양한 빈티지 마켓들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고, 다양하고 멋스러운 디자인의 의류와 소품들로 가득하니까. 그리고 마켓에 따라 새 제품처럼 상당히 상품관리를 잘하는 곳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으니 이곳이 바로 빈티지 천국이 아니겠는가. 


특히 네덜란드 생활 초기, 비행기 수화물 무게의 압박에 옷을 충분히 가져오지 못했다. 

옷을 한 장씩 사려니, 가격도 가격이지만, 갈아입을 옷이 마땅히 없으니 빨래도 자주 할 수 없어 날이 갈수록 꼬질 해지는 내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때 등장한 한 줄기 빛이 있었으니, 이름하야 '킬로 빈티지 마켓'. 

'킬로 빈티지 마켓'이 정식명칭인지는 알 수 없으나, 

주로 옷의 무게를 측정해서 무게만큼 돈을 지불하는 방식의 빈티지 마켓을 뜻한다. 

무게가 가벼운 여름옷이나 기본 아이템을 여러 개 구매할 때 실속 있게 이용하기 좋고, 

매년 다이어트의 성공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체형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다양한 옷으로 만회하게 해주는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운영하는 업체에 따라 상설매장이 있기도 하고, 입장권을 따로 구매해야 들어갈 수 있는 곳도 있다. 

나는 주로 시즌오프 때 입장권을 따로 구매하는 데,  

입장료를 감수하고서라도 갈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벤트성이니 갈 때마다 새로운 물건이 업데이트되니 디자인도 다양하고, 물건도 훨씬 깔끔하다.  

주의할 점이 있다면, 탈의실이 따로 없는 곳도 있으니 반드시 옷을 갈아입기 편한 복장으로 가야 한다는 것.  


나는 두터운 아우터에 운동용 레깅스, 그리고 몸에 달라붙는 얇은 셔츠를 안에 받쳐 입고 간다. 

그래야 옷을 쉽고 가볍게 이것저것 시착해볼 수 있기 때문. 

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은 옷을 훌훌 벗고 팬티차림으로 그 자리에서 옷을 시착하기도 하니, 그럴 땐 적당히 '아이고, 내 눈' 하면서 쿨한 표정으로 시선을 자연스럽게 돌릴 것을 권한다. (포인트는 쿨한 표정!) 


또한 이런 이벤트에 관심이 있고, 도전할 생각이 있다면 단연코 가장 이른 시간대의 티켓을 구매할 것을 권한다. 시간대별로 입장권의 가격이 다른 데, 보통 뒤늦은 시간일수록 가격이 저렴하다. 

혹여라도 싼 가격과 늦잠에 대한 욕심으로 뒤늦은 시간에 여유롭게 입장한다면, 이미 앞서 쇼핑을 한 사람들에 의해 괜찮은 물건은 다 빠져나가고 없을 것이니, 반드시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 입장할 것을 권한다. 


생각해 보면, 네덜란드는 빈티지 마켓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갖추고 있는 곳인 듯하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실속 있는 것을 추구하는 국민적인 성향도 있고, 변화무쌍한 기후 때문에라도 비싸고 고급스러운 의류보다는 튼튼하고 오래 입을 수 있거나, 혹여 의류가 상해도 마음이 덜 속상할 저렴한 물건을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https://brunch.co.kr/@zamunubida/23


또한 네덜란드의 지리적인 특성으로 인해, 환경문제에 대해 진지할 수밖에 없는 국민성도 여기에 한 몫할 듯하다. 


네덜란드는 국토면적이 남한보다도 작은 나라이다. 

그 작은 영토에서 국토의 1/3 , 즉 다수의 면적이 간척지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기후변화나 환경보호, 또는 쓰레기 처리에 따른 재생적인 방법 개발 등은 전 국민의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환경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해수면의 높이가 높아지면, 

국토의 대부분이 물에 잠겨들 수도 있다는 위협 아래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즉, 환경보호는 살고 있는 터전을 위협하는,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요소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최소한의 방식이다. 


이러한 이유로, 네덜란드 정부에서 주머니 가벼운 학생들에게도 예외 없이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세금이 있는데, 이름하여 '하수도 세'와 '쓰레기 세'다. 


네덜란드는 외국인에게도 수익이 적은 사람들을 위해 월세나 보험료 등을 지원해 주는 자비로운 정책이 있다. 하지만, 그 자비도 하수도 세와 쓰레기세에서만큼은 예외가 없다. 

그래서 매년 부과되는 해당세금에 대한 청구서가 나올 때마다 '억'소리가 나고, 손이 덜덜 떨린다.

 

보통 1년에 한 번 정도 지불하며 300유로 정도가 청구되는데, 내 한 달 생활비가 300유로 정도인 것을 감안했을 때, 갑자기 날아오는 청구서는 말 그대로 '공포'다. 


처음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는 학생신분에 면제신청도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지고는 했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나는 아직까지 이 면제신청에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 글을 보시는 네덜란드 거주 중이신 분, 면제성공하신 적이 있다면 팁 좀 부탁드립니다..(꾸벅)) 


갑자기 이 얘기가 왜 나왔냐면, 지금 그 고지서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환경은 중요하니까 내야지.. 하면서도, 300유로도 넘는 고지서를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슬며시 아득해지는 것이..

파트타임 일자리라도 알아봐야겠다. 


추신.

혹여라도 네덜란드를 걷다 동네 후미진 곳에 Kringloop라고 쓰여있는 곳을 발견한다면, 한 번쯤은 방문해 볼 것을 권한다. 이곳은 중고제품을 팔거나 공유하는 곳으로 의류뿐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종류의 물건을 다 취급하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할 것이다. 말 그대로 동네 주민들이 안 쓰는 물건을 다양하게 내놓는 곳인지라, 보물찾기 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강력추천이다. 


https://www.citymom.nl/kinderkledingwinkels/kringloopwinkel-kraainest-utrech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