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둘 다 놀고 싶습니다.

치과의사를 그만두고 강릉 이주를 계획하다.

by 숨쉬는솜사탕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최근에 주목을 받은 에세이의 제목이다. 우리 부부도 아직은 한 명만 놀고 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둘 다 노는 것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다.


한 명이 먼저 놀게 된 이유


1년 전까지도 치과의원에 고용된 페이닥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개업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직장을 옮길 수 있었고, 파트타임으로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완전히 직장에 메일 필요는 없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주 2~3회 정도만 일을 하며 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아를 했다. 중간에 한 번씩 쉬어가기도 했다.


쉬다가 일을 다시 시작하면 처음에는 나의 사회적인 쓸모를 확인하며 즐겁게 일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밀려드는 스트레스로 늘 마음에 그늘이 생겼다. 연차가 쌓이고 경력이 늘어가도, 이 일을 평생 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병원이라는 좁은 세계에 갇혀 있고 싶지 않았다. 심한 불면증으로 밤을 거의 꼬박 지새우고 출근을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점점 굳어졌다.


다행히 그렇게 물욕이 없다. 돈을 쓰는 것에 일종의 '죄책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뭔가를 사도 항상 최고의 가성비를 추구하는 편이다. 한창 일을 많이 해서 벌이가 좋았을 때도 그걸 쓰지는 못했다. 카페에 갈 일이 있어도 항상 아메리카노만 먹을 정도다. (남의 돈도 잘 못쓴다. 어디 가서 총무를 하면 돈을 안 써서 그 그룹의 재정이 튼튼해진다.)


돈을 벌어도 어차피 쓰지도 못할 거... 굳이 벌 필요가 없었다. '이렇게 힘들어하면서 일을 할 이유가 있을까' 하던 차에 한창 직장에서 상사와 갈등이 생기면서 다니던 곳을 그만두고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일을 시작하지 않았고, 당분간, 혹은 계속 그 일을 할 생각은 없다.



놀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일을 그만두고 육아에만 전념하면서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동기들은 대부분 액티브하게 현업에서 뛰고 있었다. 이제 연차도 쌓였으니 한창 일 할 때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왜 이렇게 일하는 게 힘들까... 다들 잘하고 있는데...' 멀쩡한 직업을 걷어치운 제 자신이 못나 보였다.


가끔 사람들과 근황을 나누다 보면 대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 왜 일 안 해? 계속 안 할 거야??"

" 공부한 게 아깝잖아~~"

이런 얘기를 들으면 '내가 다이아몬드를 길바닥에 버린 어리석은 인간인가.' 하는 찜찜한 마음이 들곤 했다.


한편으로는 사회적으로 쓸모가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동안 돈을 벌면서 사회적인 나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제 돈을 안 버니 그것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남편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밖에서 힘들게 일하는데 그 경제적인 부담을 함께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늘 무겁게 마음을 눌렀다. 물론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평소 집안일이든, 바깥일이든 가능한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힘들다고 오히려 남편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운 것만 같았다.


이때의 일기를 보면 그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너무나 잔잔한 수면 아래에서도 끊임없이 파동은 일어난다. 지금의 상황을 '일을 안 하는 혹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일종의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나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참 좋으면서도 불안함이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누가 돈 벌러 나가라고 등 떠미는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


오늘 문득 내가 일을 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다운 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전환하면, 내 감정을 죽이고 그냥 내몰았던 때에 비하면 정말 온전하게 살고 있는 하루하루다. 일을 안 하고 살면 하루 종일 뭘 하면서 지낼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웬걸, 시간이 참 빨리 간다. 그냥 의무감, 책임감을 내려놓고 온전히 지금을 즐겨야겠다. 너무나 소중한 시간을.


물질주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돈을 못 벌기 때문에 뭔가 지금을 모자란 상태로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다. 아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러므로 더 지금을 자유롭게 즐겨야겠다. 그도 행복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다른 삶을 위한 발걸음을 떼다.


이런 시기를 지나,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부를 이루지 못하고, 사회적인 성공은 어렵겠지만, 그건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그렇게 살기 때문에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조금씩 나에게 맞는 방식대로 삶의 방향을 바꾸어 가고 있다. 이 사회의 흐름과는 반대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물론 누가 산 아파트가 올랐다는 얘기, 누가 사업을 해서 엄청 잘 된다는 얘기를 들으면 현타가 올 때도 있다.(귀가 팔랑~ 팔랑~) 때로 흔들리기도 하고, 뒤를 돌아보기도 하면서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다. 앞으로 그 느린 걸음들을 기록해 보려고 한다. 그 첫 발걸음은 강릉으로 이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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