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 부부, 이주를 꿈꾸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

by 숨쉬는솜사탕

"남편 직장을 옮겨 가세요?"

"그곳의 연고가 있으세요??"


강릉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이렇게 묻곤 했다.

전혀 없는데. 전혀 아닌데.


그렇게 수도권에서 지방 소도시로 이주한다는 것이 특이한 일인가 보다. 그것도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원래 우리 부부가 살고 있던 곳은 학군지로 이름난 경기도의 1기 신도시였다. 코앞에 환승 지하철역이 있고, 커다란 사거리에 온갖 상업시설, 음식점이 즐비하던 동네였다.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보이는 가게가 스타벅스였다. 물론 우리 집은 아니었다... 집주인아저씨 집.


그러나 그곳에서는 평일에는 남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는 날이 많았다. 아이는 쑥쑥 자라는데 아이가 크는 것을 볼 수 없는 것을 남편은 늘 안타까워했다. 일요일 저녁이 되면 월요일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남편은 늘 얼굴이 어두워지고 말 수가 줄었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 이 팍팍한 곳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고 살고 싶었다. 초등학생이 될 아이가, 이곳에서 빡빡한 스케줄로 학원을 오가며 친구들과 경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안 하면 되겠지만, 남들이 하는 걸 보면서 안 그럴 자신은 없었다.



그냥 덜 벌고, 덜 쓰자.


지방으로 가면 이곳 전세금으로 집을 사고도 남을 텐데... 가서 일을 줄이고, 우리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리자. 그렇게 해서 낯선 곳으로 이사를 준비하게 되었다.



'다른 곳'을 꿈꾸다.


우리 부부는 늘 '다른 삶, 다른 곳'에 관심이 많았다. 둘이 대화를 해도 늘 그런 쪽으로 흘러가곤 했다. 특히 남편이 적극적이었는데, 그의 생각대로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기도 했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일본... 나라마다 어떤 이민 제도가 있고, 어떤 길이 가장 현실적인 루트인지 정보를 팠다. 매번 진짜 옮겨 갈 것처럼 열심히 알아보았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생계. 이민의 문턱은 생각보다 높아서 꿈에 부풀었다가도, 현실적인 이유들로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렇다면 말도 통하고, 훨씬 난이도가 낮은 국내 이주는 어떨까? 강력하게 추진하던 곳 중 하나는 제주도였다. 하던 일을 거기서도 계속 하기는 싫었으니, 둘이 같이 공부방을 열면 먹고살 수는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제주도로 날아가 프랜차이즈 공부방 상담을 받기도 했었다. 그런데 여행할 때는 제주도가 너무 좋았지만 막상 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돌아보니, 그 느낌이 꽤 달랐다.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계획을 실행하기에는 주저되었다. 고려해야 할 것들도 참 많았다. 직장, 물가, 집값, 아이 교육, 인프라, 자연환경, 가족이나 지인이 거주하는지...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또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떠난다는 것은 우리가 누리던 이 모든 예측가능성과 편안함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책과 유튜브에는 직장을 팍 때려치우고, 훌쩍 떠나서, 훨훨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런 멋진 무용담이 많고 많던데... 결국 우리는 이 안락함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몽상가일 뿐이었던가... 다르게 살고 싶다고 입으로만 떠들어 왔나...


나도 남편도, 현실에서는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으면서 꿈만 뭉게뭉게 피우고 있었다. '다른 곳에서의 다른 삶'이라는 건 생각 속에서만 존재하는 신기루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우리가 정말 이주를 질러버렸다.


강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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