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는 못살겠어

강릉 이주의 첫 발을 내딛다

by 숨쉬는솜사탕


하라는 대로 착실히 안정된 길 만을 걸어오던 두 범생이가, 간절히 꿈을 꾸었다. 안락한 거주지를 버리고 이주하는 꿈. 마음으로는 이미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살고 있을 판인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려고 하니, 몸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두 쫄보의 궁둥이를 걷어 차 준 결정적인 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층간 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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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 어느 날 아침,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어제 이사 온 아랫집 아주머니였다. 너무 시끄럽다고. 심하다고. 우리 중학생 아이가 집이 울려서 밤에 잠 한숨 못 잤다고 성토하셨다.

(우리 애는 10시 되면 자는데;;;)


그때 처음 층간 소음의 스트레스를 겪어보았다. 외동인 아이가 7살이 될 때까지 4번 정도 아랫집 이웃이 바뀌었지만, 한 번도 컴플레인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아랫집에서 불편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집이 작아서 뛸 데도 없고, 거실에는 두꺼운 매트가 깔려 있었으니까... 참고 넘어가 주신 고마운 이웃들 덕에 소음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그날 이후, 집 복도와 주방까지 이동이 가능한 모든 공간에 매트를 촘촘히 깔았다. 조금이라도 바닥이 울리지 않도록 조심하고 아이를 단속하며 생활하였다. 그 후로는 아랫집에서도 시끄럽지 않다고 하시고, 음식도 주고받으면서 1년간 잘 지냈다. 오히려 아랫집 가족은 우리 가족이 이곳으로 오게 해 주신 고마운 분들이다.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그 집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처음 항의를 들었던 당시엔 집 안에서 걸어 다니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혹시나 발소리가 나지 않을까 온 신경이 곤두섰다. 말로만 듣던 극심한 '층간소음 스트레스'를 처음 겪어보았다.


'이렇게 신경이 쓰여서야 사람이 어떻게 살지??'


이 집에서 더 이상 못 살겠다는 마음까지 들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남편과 대화 끝에 '우리 이사 갈까?'로 얘기가 흘렀다. 바닥을 사이에 두고 아랫집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야 하는 이 상황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로 가지?




그때 동해안이 생각났다. 2년 전 양양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어디에도 가리지 않은 채 펼쳐진 파란 하늘과, 햇살에 물빛이 반짝이던 바다. 그 광경을 보며 '아... 여기서 한번 살아보고 싶다.'라고 내뱉었었던 것을. 그때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라고 생각했었기에 그 후로는 까맣게 있고 있었다. 그때는 우리가 강원도에서 산다는 것은, 사자가 채식을 한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행동에 옮겨보고 싶었다. 실제로 이주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도시가 아닌 지방의 소도시에서 살아보는 것이 어떤 것일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영영 후회가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강원도 지도를 켜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만약 진짜 터를 잡고 산다면, 너무 작은 도시는 생활에 불편함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는 양양보다는 강릉이 더 적당해 보였다. 수도권처럼 인구가 많지 않으면서 산과 바다를 끼고 있는 곳.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 도시의 규모를 갖추고 있는 곳.


사실 우리는 강릉이 바다를 낀 도시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20년 전 남편과 연애할 때 해수욕하러 경포대에 갔었다는 사실만 기억날 뿐, 그곳에 대한 어떤 인상도 남아있지 않았다. 진짜 강릉이 우리가 살기에 적당한 곳인지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하여 급조된 한 달 살이가 시작되었다. 아들과 둘이서 강릉에서 살아보기로 한 것이다.(남편은 출근을 해야 하니 주말에만 오고 갔다.) 여행이 아닌 생활을, 여행자가 아니라 현지인 콘셉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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