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강릉 한 달 살이

집을 충동구매하다

by 숨쉬는솜사탕

마침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했었기에 바로 한 달 살이를 실행에 옮겼다. 아이와 지낼 숙소를 급하게 구해서 강릉으로 달렸다. 시내 중심부로부터 멀지 않은 주거지역에 있는 오래된 주공 아파트를 우리의 거처로 삼았다. 우리의 콘셉트는 '현지인처럼!'이니까! 굳이 바다 쪽에 숙소를 잡을 필요는 없었다.



비장하게 한 달치의 짐을 꾸려 강릉으로 향했다.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강릉은... 경포대 바닷가가 전부였다. 그래서 처음 강릉 시내에 도착했을 때 들었던 느낌은...'생각보다 크네?'였다. 나는 도대체 어떤 곳을 상상하고 온 것일까. '지방 소도시'에 대해서 너무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보다.



도시의 중앙부에 걸어서도 쉽게 건널 수 있을 만큼의 넓이의 하천이 동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하천 주변으로는 연식이 있는 높지 않은 건물들이 둘러져 있었다. 덕분에 시야가 확 트여서 커다란 하늘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시내는 수도권처럼 세련된 맛은 없고, 노후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소박함마저 좋았다. 자본의 손이 덜 미친 느낌이었다.


강릉 겨울 바다


사실 나로서는 한 달 살이가 큰 결심이었다. 왜냐하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둘이 붙어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남편 없이. 강릉으로 이주를 실행에 옮기고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아니고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실은 짧게라도 숙소 근처에 있는 미술학원 같은 곳이라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없었다.


경기도 우리 집 앞에는 코앞에 스타벅스부터 각종 프랜차이즈가 다 모여 있는데. 여기서는 빵이라도 하나 사고 싶으면 집에서 15분 걸어가야 했다. (강릉도 밀집된 주거지역이 있는데, 그곳은 노후한 저층 아파트가 있는 오래된 동네라 주변 인프라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아들과 24시간 함께하는 한 달간의 끈적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현지인 흉내내기


강릉은 겨울도 참 좋다. 필자가 그곳에 갔던 2월 말의 강릉의 날씨는 공기가 청명하고 맑으면서도 추위가 매섭지 않았다. 수도권 우리 집에서 손바닥만큼 보이던 흐릿한 회색빛 하늘과는 차원이 다른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을 마주하니, 한 시간이라도 집 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햇볕 한 조각이라도 놓칠세라 바다로 산으로 아들을 끌고 다녔다.



그렇게 한주를 보내고 나니 체력이 바닥났다. 그다음 주부터는 아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도 힘이 들어 숙소 주변에서 주로 머물렀다. '살아보기' 콘셉트의 한달살이이니까, 현지인답게 집 뒤에 있는 미장원에 가서 오랫동안 고수하던 긴 머리도 싹둑 잘랐다.'헤어숍' 아니고, '미장원'.



연식 있으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옛날에 엄마가 파마하러 미장원에 가면 요즘에는 잘 안쓸 얇은 롤로 머리를 말고 그 위에 투명한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알록달록한 보자기 같은 걸 둘러서 집에 왔었다. 그랬다가 시간이 되면 다시 가서 풀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부끄러운 모습인데,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가 머리를 자른 곳은 놀랍게도 아직 그런 시스템이 남아있는 곳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그 오래된 느낌마저도 참 좋았다. (실제로 살아보니 강릉의 일반적인 모습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동네가 특이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진짜 사는 것에 대한 확신은 사실 들지 않았다. 현지인 흉내를 내 봤자,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아이 학교를 보내고 있는 생활인은 아니니까. 이곳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조금 긴 여행을 하고 있는 여행자 들일뿐이었다. 그저 내가 떠나온 곳이 얼마나 편안하고 안락한 곳이었는지를 돌아볼 수 있을 뿐이었다.



집을 매수하다.


그렇게 강릉 이주에 대한 어떤 확신도 못하고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한 달 살이의 후반부로 들어섰고 마음은 급해졌다.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쉽지 않은 기회로 현지조사를 나왔는데 뭐라도 수확을 거두고 싶었다.



이참에 어떤 동네가 우리 가족이 살기에 적당한지 둘러도 보고, 전세 물건이라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찾으면 이주할 마음을 굳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무렵부터 열심히 아들을 데리고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강릉은 전세물건이 진짜 귀했다. 전세가와 매매가가 크게 차이 나지 않았다. 물건이 없기도 한데, 상태가 괜찮은 집은 더더욱 없었다. 신축 고층 아파트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가 생각한 예산을 훌쩍 넘었다. 게다가 기왕 강릉으로 가는 것인데, 수도권의 신도시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대규모 주거지역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 자연을 더 가깝게 대할 수 있고, 강릉만의 정취가 느껴지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집을 보고, 또 보고.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집 보러 가?'라고 했다. 매일 두세 군데씩 집을 보러 다녔으니까. 전셋집은 적당한 물건이 없어서 매매 물건도 보기 시작했다. 아무리 다녀도 이거다 싶은 물건은 없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날짜는 가까워져 오니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다. 지금 여기 있으면서 계약서 한 장이라도 써 놓고 가야지, 그러지 않으면 강릉 이주의 꿈은 다시 영영 멀어질 것 같았다.


겨울 산 @대관령 자연 휴양림


돌아가기 직전 주말, 이번에 집을 구하는 것은 역시 무리인 것 같다고 마음을 접고 있을 무렵이었다. 부동산 사이트에 물건이 하나 올려진 것이 있어 문의를 했다. 30년 가까이 된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내부는 수리가 되어있다고 했다. 비어있는 집이라 당장 달려가 보니 우리 가족이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고, 바다와 솔밭을 낀 조용한 동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후다닥 가계약금을 넣었다.



무라도 썰고 싶은 나머지 칼을 마구 휘두른 끝에 숙제를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덕분에 후련한 마음으로 한 달 살이를 마치며 짐을 꾸려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실제로 이주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은 강릉에 굵직한 끈 하나를 매어 두고 돌아왔기에 마음만은 든든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했다. 집을 그렇게 충동적으로 매매하다니. (수도권에 비하면 집값이 훨씬 저렴했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다소 대책이 없긴 했지만 그때 충동구매하길 참 잘했던 것 같다. 그 끈을 붙잡고 지금 이곳에 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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