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가서 어떻게 먹고살지?

이주를 위한 경제 구조 만들기

by 숨쉬는솜사탕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강릉으로 넘어갈 것처럼 집을 매수하였다. 그런데 막상 집을 사고 나니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았다. 남편은 얼마 전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였고, 아이 어린이집은 이제 1년 남은 상황이었다. (얘기하자면 길지만... 발을 빼기 힘든 곳이었다.) 필자도 그 당시만 해도 치과의사를 그만두겠다는 확신은 없었기에 강릉으로 가서 개업을 할 수도 있으니 수도권에서 공부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 이주하는 건 무리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1년 정도 준비를 해서 넘어가자.'


생각 끝에 남편과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집을 무턱대고 사긴 했는데 막상 짐을 싸서 옮겨 가려고 하니 슬쩍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 갈 수 없는 이유를 계속 생각해 내면서 그 뒤에 숨었다. 아직은 이곳을 떠나기에는 적당한 때가 아니라며.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강릉에 세컨드 하우스가 생긴 꼴이 되어버렸고, 우리 가족은 '주말 강릉러'가 되었다. 주말마다 강릉에 마음 편하게 오갈 수 있는 내 집이 생긴 것이다. 그 해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던 시기였기에 여행 또한 맘 편히 가기 어렵던 시기였다. 이주를 미룬 덕에 1년간 세컨드 하우스 덕을 톡톡히 보았다. (물론 대출이자와 아파트 관리비가 꼬박꼬박 나갔다... 그건 일단 모르는 척 접어두자.)



어느 주말, 강릉 하늘


사실 이주 전에 대략적인 윤곽을 잡아야 할 중요한 문제들이 있었지만, 집을 살 당시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저 오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집을 먼저 질러버렸던 것이다. 특히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서 그랬다. '수도권만큼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 둘이 뭐 어떻게든 벌어서 우리 세 식구 먹고살 수 있지 않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그나마 1년의 유예기간을 가지면서 강릉에서의 현실적인 면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그 시간에 성공적인 정착을 뒷받침해줄 금전적, 인적 준비를 촥촥 해 나갔으면 좋았겠으나...



그 1년의 시간 동안 오히려 더욱 확고하게 치과의사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남편은 그런 나의 의사를 존중해 주었다. 필자가 몇 년간 좀비와 같이 살았으니... 그러면서 본인도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하면서 살 수 있나 궁리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온갖 조기 은퇴,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은퇴 카페에 가입해서 선배님들의 경험담을 들었다. 가열하게 재테크를 공부하며 우리에게 있는 자본금을 굴려 월 수입을 만들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포트폴리오를 짜고 또 짰다.




결론적으로는 남편은 자신이 일을 하지 않아도 가능하겠다는 결론을 냈다. 이것은 세 가지 요인이 있기에 가능했다.


첫째, 우리 가족은 생활비가 적게 드는 편이라는 것. 주위에 비슷한 구성의 가족과 비교해 보면 그 씀씀이가 꽤 적은 편이다. 수입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지출을 줄임으로서 지속 가능한 가정경제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리 부부의 지향점이었다. 둘 다 과시성 소비가 적고,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 습관을 갖고 있다. 이것이 둘 다 노는 것을 구체적으로 계획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을 요즘 더욱 느끼고 있다.


두 번째, 아이에게 재산을 물려줄 생각이 별로 없다. '그냥 있는 거 우리가 다 쓰고 죽자' 주의다. 아이에게 집이나 돈보다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단단한 내면, 그 언제라도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부모의 지지를 물려주는 것이 최고의 유산이 아닐까 한다. 사교육을 쏟아부어서 아이를 키울 생각도 별로 없고, 아이를 위해 최고의 서포트를 해 줄 생각도 없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게 빠른 은퇴를 결정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이것은 아직 충족이 되지 않았다. 바로 세계 경제. 남편의 포트폴리오에 따르면 경제에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세계 경제가 매우 호황이어야 문제없이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지금은... 눈물 좀 닦고) 이런 방식은 투자가 아니라 투기인 것 같긴 하지만, 일단 우리 가족은 생활비가 적게 드는 편이긴 하니까... 나는 계속 놀고 싶으니깐... 믿어 볼 수밖에 없었다.(먼 산)



물론 당장은 안된다. 둘 다 놀 수 없다. 세계 경제가 호황으로 돌아서서 그 과실이 우리에게로 떨어지지 않는 한 남편은 일을 더 해야 한다. 그래서 일단은 강릉으로 이주를 하되, 남편은 일을 줄이기로 했다. 서울에 잠만 잘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고, 사무실에 3일만 출근하고 나머지 요일은 재택근무를 하기로 양해를 구했다. 우리의 편의에 맞추는 만큼 급여도 많이 줄였다. (작은 사무실이라 가능했다.)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 오히려 기러기 아빠를 만드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되었기에 최대한 가족의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 일단은 강릉으로 넘어갈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을 세팅했다. '부부 둘 다 놀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해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발 한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조건에서 이주를 할 수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런 때가 있을까. 사람마다 감수해야 할 상황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새로운 길을 가고자 한다면 불확실성 속에서 발을 옮겨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혹시, 고민하고 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주저하고 있다면, 한번 그 불확실성을 안고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그 한 발짝을 옮기는 과정에서 분명히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 있을 것이기에, 그 이후의 나는 분명 그 불안정함을 조금 더 다룰 줄 아는 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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