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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Nov 14. 2022

아무튼 치과

연재를 시작합니다.

치과의사로 12년을 근무했다. 치과는 나의 일터이자 애증의 공간이었다. 페이닥터로 일하고 있을 무렵,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면 호구 조사하듯 물어댔다. “넌 언제 때려치울 거야?”.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데, 너네도 그렇지 않냐는 의미였다. '너희도 나랑 똑같은 마음이지? 그런데 먹고살아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는 거지?? 그렇지??'라고 확인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의외로, 그들은 자신들의 일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더 나아가서 꽤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 물론 치과의사라는 패키지가 포함하는 모든 구성품을 긍정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만한 물건도 흔치 않다는 평이었다. 멋들어지게 포장되어 있으니 남 보기에 그럴듯했고, 내부의 구성품들도 다른 곳에서는 쉽게 얻기 힘든 것들이었다. 물론 모든 직장인들이 꿈꾸는 것처럼, 일 안 하고 먹고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땡큐이겠지만, 그렇게 될 수는 없으니, 지금으로서는 이 패키지를 버릴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 귀한 직업을 버리려는 내가 이상한 건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나머지, 혼자 고급 초콜릿 상자에 들어앉은 인절미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나의 답답한 심정과는 상관없이 연차는 쌓여갔고, 동기들은 가열차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 자리가 편치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초콜릿 상자로부터 탈출할 날을 그렸다. '어딘가 나에게 꼭 맞는 상자가 있지 않을까?? 한 번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품고 있던 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장을 옮기기 전 잠시 쉬어가려고 했던 것이, 그 길로 잠정적인 은퇴가 되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일을 하지 않기 위해 강원도로의 이주도 결행했다.  



그런데 은퇴를 선언하고 자발적 백수가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치과의사였다. 치과의 그늘을 벗어났다고 하면서도,  언저리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치과의사인 친구들이 많으니, 그들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치과계의 일원으로 돌아갔다. 요즘은 치과의사 커뮤니티에서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 개원가에는 어떤 트렌드가 돌고 있는지를 접했다. 나는 변함없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정도의 연결고리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완전한 백수가 아니라는 것, 여차하면 다시 쓸모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 반백수(?) 정도의 포지션에 있다는 것에서 묘한 안정감을 맛보았다. 다시 일터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생각보다 나의 정체성은 치과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학시절부터, 치과와 관련된 삶을 살아왔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벗어나겠다고 발버둥을 치면서도, 동시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치과'에 대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의사이면서도 아닌, 경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테니까. 치과의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일을 하면서 들었던 소회, 그만두고 나와서 바라보는 치과계에 대해서 가벼이 풀어보고 싶었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들만의 공간이 궁금하지 않은가. 치과에도 ‘staff only’가 존재한다. 그 뒤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살짝 커튼을 들어 올려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다. 전적으로 치과의사의 입장이 될 수도 없고, 환자의 입장이 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너는 도대체 누구의 편이냐며 회색분자로 찍히기 딱 좋을 수도 있겠다. 치과라는 공간은,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높은 문턱을 넘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치과의사의 입장에서 글을 쓴다면, 일반인에게는 배부른 소리로 들릴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 입장에서 쓴다면 동료, 선후배들에게 빅 엿을 날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누군가의 화살을 받아낼 만큼 맷집이 있는 편은 아니다. 그저 소소하고 소심하게, 약간 다른 지점으로부터 치과를 바라보려 한다.



우리 모두는 입 안에 치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숙명적으로 치과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그 높은 문턱을 낮출 수 있는 계기가 되어드리고 싶다는 말 따위는 할 수 없다. 이 글들을 열심히 읽는다고 해도, 여전히 치과를 가는 일은 대장내시경만큼이나 거북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미루다 미루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와 어쩔 수 없이 치과를 방문했을 때, ‘아~ 그 백수가 한 소리가 이거구나~’라고 떠올릴 수 있다면 더 그 차가운 공간이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숨쉬는솜사탕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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