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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Nov 21. 2022

치과 가기 무서워요.

치과의사인 저도 무서워요.

"사랑니 발치 예약해뒀어요. 뽑을 때 많이 아프죠??? 으~~~ 어떡해!!"

하원 길에 만난 아이 친구 엄마가 나를 보며 턱을 감싸 쥐었다.

"괜찮아~ 생각보다 금방 끝날 거예요."



 치과 진료를 앞둔 지인들은, 나를 보면 종종 '어떡해!'를 외친다. 수월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묘수를 알려주고 싶지만, 그런 건 없다. 그저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괜찮을 거라고 이야기해 준다. 조금도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감기에 걸려서 내과에 가는 것이라면, 혹은 발목을 삐끗해서 정형외과에 가는 것이라면 목을 감싸 쥐거나 발목을 쥐고, 어떡해!!! 를 외치지는 않을 텐데. 치과의 무게감은 이렇게 남다르다.





치과의사는 치과 진료를 받을 일도 없고, 부담도 없을까?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치과에 가는 것을 아주 무서워했다. 원체 겁이 많은 편이라 주사 맞는 것도 힘들어했었다. 그런데 치과는 예방주사 따위와 비교가 되지 않는 병원계의 끝판대장이었다. 무시무시하게 생긴 뺀치(?) 같은 기구와 바늘처럼 뾰족하게 생긴 도구들이 선반에 떡하니 놓여있지 않은가. 저걸 내 입에 넣는다는 이야기?!  그 움직이는 의자도 싫었다. 치과의사가 의자의 버튼을 누르면, 거부할 수 없는 운명 속으로 말려드는 것 같았다. 몸이 눕혀지는 5초 남짓의 시간 동안 지난날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미루지 말고 진작 올 걸. 옆에 꽂혀있는 드릴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내 입속으로 들어올 것이었다.



체면이고 뭐고 신경 쓰지 않던 초등학교 때는 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대기실로 도망을 가기도 했었다. 엄마와 의사, 간호사들은 '아프지 않다, 금방 끝난다'는 회유와,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왕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협박을 번갈아 하면서 나를 그 의자에 앉히고야 말았다. 치과는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싫은 곳이었다.



그런 내가 치과대학에 들어갔다. 치과대학에 다니고,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의사용 의자가 아닌, 환자용 의자에 앉는 것은 여전히 두렵고 싫은 일이었다. 치과 치료를 하는 것과 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썩은 치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뭉그적뭉그적 치료받기를 미뤘다. 버티면 어떻게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not today.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다음 주에 가자''다음 달에는 꼭 갈 거야'라며 상황을 회피했다



매일 치과로 출근하면서도, 내 입은 꾹 다물었다. 누군가가 내 입안의 사정을 알게 되는 것이 부끄럽고 싫었다. 특히 선배들한테는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모르는 치과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실컷 받으며 시간은 흘렀다. 버티는 사이 얼마나 일이 더 커졌을지 겁이 나서 또 미루었다. 환자들에게는 '이거 얼른 치료하셔야 해요!'라고 하면서, 정작 내 치아들은 방치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끔 시리기만 하던 치아가, 뜨거운 물이 닿을 때마다 불편하고, 가끔 아프기도 한 것 같았다. 더 이상 뭉갤 수가 없었다. 항복... '치과의사 입 안이 이게 뭐냐'는 치욕(?)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고, 선배에게 치료 좀 해달라고 말했다. 역시나 그때는 손대야 하는 치아가 한둘이 아니었다. 몇 개월에 걸쳐 여러 개의 치아를 손 보고 나서야, 입 안은 정리가 되었고, 오랫동안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골칫거리가 치워졌다. 휴우.




그렇게 두 계절이 흘러가는 동안 대 공사를 치르고 나니, 치료를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이 줄어들었다. 치료의 순서와 방법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기약도 없이 무방비상태로 입을 벌리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치과의사가 되고 나서는 '지금 충치를 걷어내고 있구나', '약품을 바르고 있구나', '말리는 중이구나', 이제 다듬는 중이니 거의 끝나가는구나' 하고 과정을 모두 따라갈 수 있었다. 훨씬 참을만했다. 그 전에는 언제 어느 때고 날카로운 통증이 덮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면, 이제는 진료 가운데에도 '아 이제 아플 건 다 끝났다'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마취를 하고 시작하는 치료는, 일단 마취를 하고 나면 거의 아플 일이 없다. 그것을 알고 있으니  턱이 조여드는 것 같은 기분 나쁜 통증만 잠시 참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괜찮았다. 지금은 치과 치료를 겁내지 않고 잘 받는 편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몇 번 막고 나서부터는 조금 수상하다 싶으면 방사선 사진을 찍어본다. 그러면 큰 치료로 가는 것은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긴 가야 하는데 아플 것이 겁이나 미루고 있는 저 같은 겁보들이 계시다면... 친절하고 믿을만한 의사와 스태프들이 있는 병원을 찾아보시면 좋겠다. 오늘 어떤 치료를 할 것이고, 지금 내가 어떤 치료 과정 중에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으면, 조금 안심이 될 것이다. 조금 부끄럽더라도, '제가 아주 겁이 많은 편이니, 아프지 않게 부탁드린다'라고 미리 말해 두는 것도 좋다.  그런 경우 치과에서도 기록을 해 두고 더 신경을 쓴다. 병원에 구비된 장비를 활용해서 통증을 경감시킬 수도 있다. 아이들의 경우 소아치과로 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모니터에 만화가 나오면, 입을 헤 벌리고, 순순히 진료에 응하는 경우가 많다.  




치과 치료는 무섭다. 그런데 무섭다고 안 가면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통증보다 더 무서운 진료비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일단 치아가 신호를 보내면 외면하지 마시기를. 그냥 보내버리기에 우리의 이는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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