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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Dec 04. 2022

공부 좀 하셨겠어요?

치과대학에 들어간 이유

의학드라마나, 의사들이  책을 보면  의사가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나온다. 엄마가 오랫동안 병고에 시달리시는 것을 보면서,  치료해드리고 싶었다든가. 장애를 안고 태어난 동생이 안타까워, 다시는 이런 슬픔이 되풀이되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사정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간절히 의사의 꿈을 키웠다는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필자도 그와 비슷하....  않다. 그런 스토리가 있으면 어깨를 펴고  글을   있었겠지만, 애석하게도 나에게는 그런 멋진 스토리가 없다. 어려서부터 치아에 대한 깊은 조예가 있었으며, 인류의 치아건강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꿈을 ... 적은 없다. 전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나는 수능에서 대박을 맞았다.

그래서 치대에 들어갔다.

(전혀 자랑스러운 얘기는 아닌데, 이렇게 떠벌리고 있다.)



그래도 공부 좀 하셨겠어요?


맞다. 공부를 좀 했다. 전교에서 놀았다. 그런데 지방 변두리에 있는 공부 못하는 학교(?)였으니, 대단한 정도의 수재나 영재 축에는 들지도 못했다. 아마 요즘 아이들에 갖다 대면 그저 평범한 수준일 것이다. 그렇게 머리가 좋지도 않았다. 군소리 없이 시키는 것을 하고, 엉덩이가 무거운 아이일 뿐이었다.



이런 얘기하면, 재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국영수 위주로, 교과서를 바탕으로 공부했다...  아니다.^^ 그냥 혼자서 많이 공부했다. 평일에는 10시까지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주말에는 독서실에 다녔다.  과외는   적이 없었고, 필요하면 간간히 학원에 다녔다. 요즘 학원들처럼 다양한 종류의 심화학습 책임지는 곳은 아니었고, 그냥 평범한 단과 학원이었다. 인강, 일타 강사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저 문제집 여러 권과, 오답노트가 전부였다.

  


지망하는 학과도 치대는커녕 의대도 저어어언혀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서, 장래희망도 초등학생 때는 '생물학자', 중학교 때는 '물리학자'였다. 고등학교 때는 기초과학자로는 먹고살기가 힘들 거라는 계산이 들어서서, 공대에 가서 엔지니어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해도, '무조건 의대'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기 이전이었다.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같은 명문 공대에서 스마트한 공학도로 성장할 것을 꿈꿨다.



그런데, 3 수능에서 고배를 마셨다.   수능은 유래 없는 '물수능'으로 스무  넘는 만점자를 배출했다.  수능에서, 평소와 비슷한 점수를 받았다. 한마디로  망했다는 얘기였다.  문제만 틀려도 대학이 확확 바뀌는 상황이었기에, 목표했던 곳은 커녕, 쳐다보지도 않던 곳에야 겨우 원서를 내밀어볼  있었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고 있었던 3 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대충 출석 도장을 찍으러 나가는 3 교실에서 며칠 동안 펑펑 눈물을  쏟았다. 다음 해에 내가 가야  곳은 확실했다.



다음  3, 친구들은 새내기가 되어 캠퍼스를 볐지만, 나는 엄마가 싸주신 도시락  개를 들고 재수학원을 오갔다. 나는 실패자였다.  이상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는  10시까지 챗바퀴도는 수험생활을 이어갔다.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 주특기인 '독하게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있기' 기술을 발휘했다.



이렇게 말하니 정말 공부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아니다. 그렇게 어둡고, 찌질한 재수생  짓은  한다. 성별 구분 없이 애들을  반에 섞어두니 오히려 더했다. 5월부터 같은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몰래 연애를 했다.  와중에 설렐   설렜다. 그래도 입시에 방해가 되어서는  되었기에, 더욱 독하게 공부했다. 내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는 잊지 않았다..



그런데, 몰래 연애를  덕인지,  번째 수능에서 대박이 났다. 지난해 난이도 조정에 실패한 것을 만회하려는  난이도가  뛰었다. 그럼에도 평소 모의고사에서 받던 점수보다  좋은 점수를 거두었으니,  수능과 완전히 반대의 결과를 얻은 셈이었다. 평소 실력에 비해서 점수가 훨씬  나왔다. 열심히 공부한 덕도 있었지만, 운이 억세게 좋았다. 아니, 운이 억세게 나빴던 건가...?? 결국 치과 의사가 하기 싫다고 도망 나온 것을 보면...



평소에 듣도 보도 못한 점수를 받아놓고 보니, 공대에 가기가 아까웠다. 중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나는 연구하는 사람이 될거라 철석같이 믿었건만. 점수를  받고 보니 공학도의 꿈이고 뭐고 없었다. 이미 재수를 1 하는 동안 세상의 쓴맛을 보았고, 현실과 타협을   있을 만큼 충분히 닳아있었다. 최대한  점수로   있는 가장 좋은 대학의, 가장 높은 커트라인의 과를 들어가야 했다. 의대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부모님께서는 의사는 무조건 수련을 받아야 하니, 수련을 받지 않아도 되는 치대를 권유하셨다.(결국 수련도 받았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하게 대박을 맞으면서, 인생의 노선이 공학자에서 치과의사로  바뀌었다.




* 다음 글에서 치과대학 생활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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