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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Aug 11. 2022

그냥 나가서 돈 벌까?

행주질을 하다가 성질이 났다


방학을 맞으니 할 일이 참 많다. 아이가 학원을 다녀오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이와 계속 붙어있어야 하니 챙길 것은 많고 자유시간은 줄어들었다.


재료를 준비하고 김밥 말아서 놀러 온 이웃집 아이들과 함께 점심을 먹이고, 설거지를 끝내 놓고, 세탁기에 돌려놓았던 빨래를 널려고 보니 개어야 하는 빨래들이 대기 중이다.



청소기는 한번 밀었지만 아이들이 휩쓸고 간 거실은 청소 전과 동일한 상태다. 설거지를 마치고 행주로 물기가 흥건한 싱크대를 닦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뭐 하는 거지.

그냥 나가서 일을 하는 게 훨씬 빠르겠다.'


이 시간에 차라리 돈을 벌어서 집안일을 덜어줄 가전을 더 구비하든, 도와줄 전문가를 찾으면 이렇게 행주질을 하면서 끝없는 집안일에 대해 투덜거리지 않아도 될 텐데.




물론 직장을 다닌다면 그 고충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고, 다시 일을 할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매끼 나오는 그릇을 씻으며, 빨래를 개며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그냥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나가서 일을 해서 버는 수입으로 음식은 사 먹고, 가사일은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분명 시간으로나 결과물로는 훨씬 낫다. 정리정돈이나 청소, 요리 같은 가사일 중에 어떤 것도 그다지 잘하지 못하니까. 금전적으로도 훨씬 풍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직장일은 하지 않겠다며  이렇게 꾸역꾸역 육아와 가사를 직업 삼아하고 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일까?


잘하는 짓이다.

왜냐하면 내 맘이 편하니까.




어느 오후 남편과 소담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창 밖으로 하늘이 보였는데 유난히 파랗고 예뻤다. 그 순간 깨달았다. 진짜 행복하다는 것을.


소심 대마왕인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일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맛있는 것을 앞에 두고도, 잠을 자려고 누워도 일 생각이 났다. 집에 있어도 마음 한편이 무거운 날들이었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와서 카페에 앉아 있는 그 순간, 아름다운 것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고, 커피 한잔은 그 향기 그대로 향기로웠다. 모든 순간이 가벼웠다. 그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늘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았던 직장인 시절에는 알지 못했다.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 선택인가? 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나의 선택은 완전히 잘못되었다. 효율로 따지자면 이런 비효율이 없다. 공부하고, 수련하고, 직장 다니면서 경력을 쌓았던 시간과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한마디로 삽. 질.이다. 그러나 나의 행복, 아이와의 시간, 가정의 평화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참 잘한 결정이다.


어떤 선택을 내릴 때 오직 ‘돈’이 기준이 된다면 돈이 안 되는 것은 다 뒤로 밀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돈이 아닌 다른 기준들이 우리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은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선택의 기준들이 조금씩 더 다양해진다면 우리의 삶의 모습도 조금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모든 선택에는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듯이 직장인과, 전업주부의 삶 어느 쪽도 아쉬움이 없을 수 없다. 오늘처럼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짓인가.’ 싶을 때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이 공간을 무척 사랑하며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작은 투덜거림은 서투른 전업주부의 입버릇 같은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이 나가 노는 사이 냉장고에서 작은 맥주 캔 하나를 꺼내서 딴다. 후덥지근한 오후에 이만한 휴식이 없다. 요건 비직장인만이 누릴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호사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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