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가 중반을 넘어설 무렵부터 나는 긴장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아이의 여름 방학. 그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마치 멀리서부터 내 앞으로 커다란 산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 같았다.
아이가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학교에 가지 않고 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거짓말과 우스개를 조금 보태서 심장이 오그라드는 일이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상황이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는, 나에게 씌워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의 틀처럼 느껴졌다.
너무 거창하게 표현한 듯 하지만, 처음으로 방학을 맞는 두려움은 그만큼 무겁게 내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웃집 마당에 주황빛 석류가 익어가는 계절
그 방학이 끝났다. '눈 깜짝할 새'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4주가 흘렀다.아들과 함께한 그 시간은 걱정했던 것 보다 괜찮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어제저녁부터 공기가 꽤 서늘해졌다. 창 밖으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은 이미 여름의 것이 아니다.
성질 급한 알밤들이 벌써 떨어진다.
이번 여름은 무더운 날보다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조금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기 때문일까. 여름이 뒷모습을 보이는 것이 못내 아쉽다.
아직 나무들은 초록 잎이 무성한 듯 보이지만, 성질 급한 잎들은 벌써 노랗게 색을 바꾸었다. 밤나무 가득히 연두색 앙증맞은 밤송이들이 조금씩 눈덩이처럼 커져가고 있는데, 그 와중에는 벌써 입을 쩍 벌리고 토실토실한 알밤을 내보이는 밤송이도 있다. 정말 가을이 시작되었나 보다.
벌써 가을이라니.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일까, 이곳 강릉에서 첫여름을 맞았기 때문일까. 못내 가는 계절이 아쉽다.
이 계절이 지나면 올해도 다 가버릴 것 같아서. 불이 난 듯 온통 울긋불긋한 산자락을 입을 벌리고 감탄하며 바라볼 때 즈음엔 곧 한 살 더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도 함께 떠오를 것 같아서.
너무 서두른 것은 아니니?
방학은 보내고, 여름은 붙잡을 수는 없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겨울방학은 두 달인데… 이건 또 어떻게 하나. 벌써부터 슬쩍 걱정이 된다.
내가 생각해도 참 어이가 없는 잡념들이 머릿속을 채우지만, 곧 털어낸다. 오늘은 개학식이라 아들이 곧 돌아올 테니까. 다시 글쟁이의 갬성은 차곡차곡 접어두고 엄마 모드로 돌입. 주말엔 아들과 여름을 붙잡으러 바다에라도 나가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