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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Aug 16. 2022

나의 삶이 연결되는 곳

우리가 나아갈 수 있는 이유

나는 친구 A를 보면서 글쓰기를 시작했다.


대학 동기인 A는 나와 MBTI가 맨 앞자리만 다르다. 학교 다닐 때도 여럿이서 친하긴 했지만 유독 이 친구와는 관심사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해서 얘기를 나누면  짝짜꿍이 잘 맞았다. 그런데 A가 언제부터인가 글쓰기에 열정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글쓰기 모임을 한다고 하더니, 곧 얼마 되지 않아 책을 쓴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나는 그때까지 책은 작가들만 쓰는 것인 줄 알았다. 문학을 전공하거나, 그 비슷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특별한 사람만 책을 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시시한 말장난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나이 먹어온 20년 지기가 출간을 한 것이다. 그리고 A는 치과의원 안에 갇혀 있는 거의 모든 대학 동기들과는 다르게, 날개를 단 듯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계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다. 치과의사로서 본격적인 글을 쓴 것은 그 친구가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다.



나도 평소에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글을 쓰며 다른 사람들에게 내보일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글을 쓰는 것을 보면서 ‘그렇다면… 나도? 글을 써볼까? 블로그를 열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일을 그만두고 강릉으로 이사를 오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마 A가 아니었더라면 작가의 꿈을, 출간의 꿈을 꿔 볼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모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그 누구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생각이 있다 하더라도, 용기가 안 나서 혹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묻히는 아이디어들도 많이 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면, 당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실행에 옮기기가 훨씬 수월하다. 처음 시작하기도 쉽고, 내 방식에 맞게 변형하여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기도 훨씬 쉽다.



거창하게 말해서 모델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자주 타인의 삶으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무언가를 시도해보지 않았던가. 예를 들면, 옆집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 것을 보면서 우리 아들도 피아노 학원에 보낸다던지, 음식점에 가서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메뉴를 보고 똑같은 것을 주문한다던지. 이렇게 사소한 것들조차도 우리는 다른 사람을 곁눈질해가며 결정하고 실행한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마음먹은 것도 온전히 나의 독자적인 욕망과 판단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분명히 누군가를 보고 생각의 물꼬가 새로운 방향으로 트인 것이다. 내 삶이라는 옷감은 나도 모르는 사이,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선택을 빌어 짜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의 생활을 보고 누군가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하다못해 별 생각이 없다가도 누군가가 그 드라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번 보게 되지 않는가. 나의 선택이 나로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의 선택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신기하고 재미있다. 그것이 드라마처럼 사소한 것일 수도 있고, 직업처럼 삶을 바꿀 만큼 중대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 내가 누군가에게 사소한 영향을 미친 일이 있었다. 평소에 책을 즐겨 읽는 친구 B가 글쓰기 책을 사 온 것을 것이다. <퇴근하며 한 줄씩 씁니다>라는 책이었다. 경제, 경영분야의 책을 많이 읽는 그 친구가 글쓰기 책을 산 것은 조금 의외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자주 들여다보고 피드백을 해주었던 터라, 아마도 내가 글을 쓰는 것을 보면서 그도 글을 한번 써보려는 마음을 내었던 듯했다. 내가 그랬듯이.



내가 배우고 닮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평소에는 거의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런 수많은 가깝고 먼 사람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의 영향을 누군가에게 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삶에 조금씩 얽혀있다. 그런데 그것이 꽤 근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 혼자만의 삶이었다면 나는 결코 글을 쓸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들이 우리를 조금씩 나아가게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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