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포털의 메인화면에서 한 연예인이 예쁜 웃음을 짓고 있는 사진을 보았다. 오래전에 그를 처음 티브이에서 보았을 때만 해도, 그렇게 호감 가는 이미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평범하지 않은 스타일의 옷도 남다른 패션감각과 자신감으로 잘 소화해 내었다. 어느새 그 연예인은 자기만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호감 가는 방송인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나는 그를 단편적으로 밖에 알지 못하지만, 오늘 문득 그 기사를 보며 그런 생각이 스쳤다. ‘나를 소중히 여기면 다른 이들도 나를 소중히 여긴다’ (여기서 '그'는 방송인 김나영이다. )
그렇다면 나를 소중히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것일까? 좋은 말이긴 하지만 상당히 막연했다. 내가 그다지 이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없다는 것 외에는...
나를 소중히 대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위한 소비를 아끼지 않는 것,
다른 이에게는 날마다 운동을 거르지 않고, 몸에 좋은 음식들을 챙겨서 먹는 것일 수도 있겠다.
매일 아침을 시작하며 향긋한 커피를 정성스레 내리는 것일 수도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럼 나에게 있어 나를 소중하게 대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며칠을 생각해 보아 어렴풋하게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세상의 기준, 고정관념으로 나를 가두지 않는 것.
나는 소위'하비'라고 일컫는, 상체에 비해서 하체에 지방이 몰려있는 체형을 가졌다. 다리가 굵으니까 짧은 옷을 입으면 뚱뚱해 보인다고 생각하여 되도록이면 다리가 드러나지 않는 긴치마를 주로 입었다. 그런데, 간혹 연예인들 중에 통통하면서도 자신 있게 짧은 스커트를 입고 나오는 이들도 있는데, 그런 자신 있는 태도가 더 좋아 보일 때가 있다.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와. 다리 굵다. 용감하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필요는 없다. 대부분은 내가 거리낌이 없으면, 보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바라본다. 나는 지금껏 내 다리를 ‘숨겨야 하는 것’으로 대해왔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다리’에서만 그치는 것일까? 또 나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부끄러운 것, 숨기고 싶은 것’으로 치부하면서 살아온 것일까.
세상의 잣대를 갖다 대며 나는 '이게 못났어, 저건 못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면을 긍정하는 것.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한 것. 그렇다고 교만하지는 않은 것. 그것이 나를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거창하게 쓰긴 했지만, 한마디로 '나를 까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나를 평가절하하는 것만큼은 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일상에서 스스로를 비하하며 하는 말이나 생각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는 손님을 초대해서 음식을 나름 실컷 준비해 놓고도, ‘제가 요리를 잘 못해서… 별로 드실 게 없어요’ 이따구의 말을 하곤 했었다. 요리, 그거 꼭 잘해야 할 필요는 뭐가 있나. 정성껏 준비했으면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런데 타인을 배려한다는 명분 아래 익숙하게 나 스스로를 까고 있었던 것이다. 수고했다며 치하하지는 못할망정.
책 <인생의 태도>에서 웨인 다이너는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은 내가 허락한 것이다"라고 한다. 나는 그동안 남의눈을 신경 쓰느라, 그들의 기준에 기대어 나를 평가해 왔고, 남들도 그렇게 판단하도록 앞장서 왔는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몸은 날씬해야 해''좋은 차를 타야 해''여자는 요리를 잘해야 해' 같은 고정관념에 맞추어 내가 나를 비하하기를 그만두련다. 그것이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고,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는 방법이 된다. 앞으로는 그냥 "열심히 준비했어요. 제가 먹어보니 맛있더라고요! 하하 핫" 하고 능청스러운 웃음을 날려봐야겠다. 나를 소중히 여기면, 남들도 나를 소중히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