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옆에서, 엄마도 울 뻔한 입학식

여기서 같이 울면 나도 동반 입학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by 잔디아이


아이의 1학년 입학식 때의 일이다. 1학년들은 강당 앞쪽으로 입장했다. 내 아이도 친구들과 함께 당당하게 앞으로 입장했으면 좋았겠지만, 울면서 내 손을 꼭 잡고 앞으로 나갔다. 딸려 나갔던 유일한 어른인 나도 강당 앞에 서서 관객석 쪽을 바라보았다. 우리에게 집중되는 호기심 어리고 반짝반짝한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나도 어찌할 줄 몰랐다. 그런데 낯을 가리고 예민한 초1 아이가 오죽 했으랴. 이해는 되었지만 방긋방긋 웃는 다른 아이도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엄마가 대동해야 할 지경은 아니었다. 얼른 이곳에서 나가자며 울먹이며 내 팔을 잡고 보채는 딸아이 모습에 나도 끝내 울컥하고 말았다. 하지만 여기서 같이 울면 엄마도 1학년 입학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입술을 깨물고 최대한 어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관객석 저 뒤편에선 시어머니께서 팔짱을 끼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계셨다. '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건가?'라는 생각도 스쳤다. 평소, 아이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기질을 인정하려고 부단한 노력을 했던 내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내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볼 아이를 위해 괜찮은 척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호명을 하시며 차례로 불러내셨다. 아이의 이름이 불리자 나도 함께 앞으로 나갔다. 아이가 손을 내밀어 선물과 입학장을 받을 수 있을지 조마조마했는데 역시 받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마이크를 잡고 관객석을 향해 아이에게 용기의 박수를 달라고 요청했다. 곧이어,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를 받았고, 나는 미소로 아이를 바라보며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아이는 얼굴이 조금씩 밝아지며 나를 올려다보았고 이내 곧 손을 내밀어 선물과 입학장을 받았다. 아이를 치켜세워주며 폭풍 칭찬을 해주었더니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용기있게 선물 잘…받았어?"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자신의 태도를 알고 있었고 그런 자신을 보는 엄마의 기분도 알고 있었다. 관객석에 요청했던 용기는 사실, 엄마인 내가 필요한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입학 후 3월 친구 관계 적응기


신분은 초등학생이지만 어린이집 생활 습관을 못 벗은 첫째 아이는 3월 적응기를 진하게 보냈다. 어린이집 시절부터 두 아이 모두 자연과 더불어 지낼 수 있는 대안교육을 하면서 초등학교도 역시 고불고불한 길을 타고올라가면 나오는 산자락에 위치한 자연친화 대안학교를 보내게 되었다. 태생부터 잠이 없어, 아무리 피곤해도 낮잠을 전혀 자지 않던 아이가 하교하는 자동차 안에서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푹 잠들곤 했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었겠지만, 막상 오늘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면 엄마도 동요되기 마련이다. 첫 아이라서 더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등교 중인 어느 날이었다. 아이는 친구 관계에서 있었던 어려움이 떠올랐는지 며칠 째 학교에 가기 싫다고 했다. 그동안 학교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왔었는데 이번에는 아이가 키우는 식물로 관심을 돌려 이렇게 말해보았다.


엄마: 학교 텃밭에 해님이가 심은 씨앗에서 새싹이 나왔잖아! 주말이 지나서 얼마나 자랐을까?

해님: 맞다!! 가서 새싹 봐야지. 후후~ 신난다!

아까 아침에 일어나라고 엄마가 나한테 뽀뽀하고 사랑 줬잖아. 나 그거 갖고 있어. 텃밭에 가서 식물한테 사랑 뿅~ 뿌려줄 거야.

엄마: 와, 정말? 그럼 식물들이 더 잘 자라겠다! 엄마도 해님이를 1년, 2년....7년 동안 지켜봐 주고 있잖아. 해님이도 식물들이 잘 자라게 계속 지켜봐 줄 수 있어?

해님: 으응~ 당연하지. 그런데 내 식물은 잘 자라. 내가 엄청 잘 키우고 있거든.

엄마: 그러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도 사랑 뿅~ 뿌려줄 수 있어?

해님: 응. 그런데 나는 친구들한테 아직 잘 말하지 못해.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쑥스럽다는 의미)

엄마: 혼자 노는 시간에는 해님이가 좋아하는 텃밭도 가꿀 수 있고 말이야. 그러다가 한 번은 친구들에게 "재밌는 놀이 같이 할래?"라고 말하는 용기도 사랑을 뿅~ 주는 마음이야. 친구가 대답하지 않더라도 네 마음을 기억할 거야. 친구들도 똑같이 1학년이고 처음이라 해님이와 같은 마음일 거거든.

해님: 그래~! 다음에 그렇게 말해봐야겠다! 히히.


그 후 어느 날이었다. 아이의 새싹이 지나가던 선배들에게 밟혀 있었다. 속상해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지만, 이 역시도 작은 사회에서 겪어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낙담한 아이는 자기 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돌멩이로 울타리를 쳤다. 옆에 언니, 오빠들의 돌멩이 울타리를 보고 배운 것이다.


등하교 차량 안에서의 시간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물어본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위주로 들려준다. 매일 아이의 말을 경청하다 보니 그 속에서 아이의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매우 피곤한 날에는 아무 말 없이 라디오를 들으며 가고, 어느 날은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들려주거나 배운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두 딸의 노래를 감상하기도 했다.



1학년을 보낸 해님이


아이는 초기 긴장도가 높은 편이지만, 적응을 마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 잘 웃고 쾌활하다. 1학년 여름 방학이 지나고부터는 한글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갖더니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한 번은 고조선을 자신 있게 ‘고좋선’이라고 써놓았는데 너무 귀엽기도 했다. 내가 볼멘소리로 “이제 한글을 점점 읽을 줄 알아가니까 냉장고에 비밀 메모를 붙여놓을 수가 없잖아!”라고 말했더니, 해님이는 콧등에 주름을 잡고 허리에 손을 얹고는 “으잉~~~?! 내일 한글 공부 더 할 거야!!”라고 호통을 쳤다.

하교를 위해 학교에 가면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놀아 새까매진 모습으로 나를 맞이한다. 1박 2일 일정이 아니라 2박 3일 걷기 여행도 자신 있다며 호언장담을 한다. 막상 여행지에서는 밤잠 전 울먹이며 베개를 들고 담임 선생님 옆으로 가는 병아리가 되지만 말이다.


1학년 학교 생활을 마치고 나니, 아이들의 성장은 오늘 하루만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봄의 기운, 땡볕 아래 흘린 땀, 서늘한 가을, 얼어붙은 눈의 경험들을 한 땀 한 땀 꾹꾹 눌러 채워 온 요즘 들어 어엿한 초등학생이 다 됐다는 느낌이 든다. 이것이 아이와 자연 간에 약속한 자기만의 속도구나. 엄마로서 신경을 많이 못 써준 미안함도 있다. 매우 바쁜 1년을 보내는 동안, 브런치를 통해 출간 제안을 받았던 가족 심리 기반 <나는 마흔에 K-장녀를 그만두기로 했다>라는 에세이를 집필했다.


한국 문화 속 평범한 K장녀로서, 딸로서 여성의 속성을 나의 사적인 이야기를 통해 풀어낸 글이다. 해학적으로 풀어낸 재밌는 부분도 있고 자녀를 키우며 마주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내가 인식해 온 세계였던 알에서 깨어 나와 진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아이의 고유한 빛이 찬란해지길 바라며 울며 웃고 있던 나는, 아이도 1학년이고 엄마도 (인생 2회 차)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수지꿈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