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보다 먼저 챙길 게 너무 많아

자기 가방은 자기가 챙겨야지! 손에 장난감은 들고나왔네, 이놈아!

by 잔디아이

아침에 눈을 떴다.

알람을 끄고 1분만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 10분이 지나있다.으악.


3...2....1.....

"얘들아, 일어나자~~~."


등교 전쟁이 시작됐다. 이제는 받아들여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밤에 샘솟는 생각들을 누리고 싶으면서 동시에 아침 미라클까지 바라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히죽대며 놀리는 남편의 메아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침형 인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네. 아직도 자신의 리듬을 받아들이지 못하나?'


오늘도 살아있음을 인지하자마자 엄마의 감정이나 컨디션 보다 아이들을 챙기는 것으로 바쁜 하루가 시작된다. 아이들을 깨우고, 옷을 입고 간단히 아침을 준비하고, 두 아이들 등 뒤에서 화장실로 보낸다.


10세, 7세.

각 연령에 따른 다른 차원의 준비를 돕고 실랑이도 한다. 언니 학교 시간 때문에 일찍 일어나야 하는 아침잠 많은 둘째 놈을 5분 더 재울지, 아니면 나가기 전에 보쌈을 할지 오늘도 고민한다.


"여보, 별님이 거 스테인리스 물통 말이야. 고무패킹 건조하려고 빼둔 건데 어디에 치웠어? 뚜껑 안쪽 거 말고 덮개 쪽."


요즘 아이들 용품은 재질, 성분, 구성까지 고려해야 할 게 참 많다. 작은 물건 하나에도 브랜드에 따라 가격, 기능, 디자인, 친환경 레벨까지 천차만별이다. 아무리 토핑 경제가 트렌드라지만, 한국 자본시장에서 엄마 하기는 참 쉽지 않다. 정부와 기업에게 바라는 한가지가 있다. 아이들 제품 만큼은 수많은 선택지와 모든 기능을 최소화 해주길 바란다. 물건 말고도 관여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K 엄마의 신경을 보호해 준다면 남편을 긁는 바가지도 줄고 가정이 평화로워질 텐데 말이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여하튼 많은 짐과 둘째 낮잠 이불을 양손 한가득 들고 드디어 현관문을 나섰다. 첫 번째 관문 무사통과!


갑자기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엇을 깜빡했는지 아이가 말한다.


"맞다. 엄마!"


어디선가 남편의 메아리가 또 들리는 것만 같다.


'맞다 금지~'


첫째가 운동화를 벗더니 말했다.


"엄마, 내 엄지발가락 좀 봐. 양말 구멍 날 것 같아.

"이미 나왔는데, 아까 말하지~. 봐봐. 그 정도는 그냥 가.


이번에는 둘째도 자기 발가락에 관심을 달란다. 새끼 발가락이 불편하다며 운동화를 갈아 신고 오겠다고 우긴다. 더 지체할 수 없어 안된다고 말했지만, 깽깽이 발로 콩콩 뛰며 울먹이는 모습에 하는 수없이 쭈구리고 앉아 발을 들여다보았다. 짐들을 팔뚝에 잔뜩 옮겨 걸고 손목 힘으로 아이 신발을 벗긴다. 이 무거움은 아령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아이는 내 어깨를 잡고 양말을 벗었고, 새끼발가락 쪽을 살펴보니 발가락과 맞닿은 양말 안쪽 매듭이 거슬렸던 것이다. 아침부터 땀이 삐질삐질 나지만, 아이 눈동자에 비친 나의 표정을 보고 곧바로 감정을 조절해 본다. 숨이 가빠서 그런 건데 한숨처럼 보이지 않도록 숨을 나눠 뱉는다. 후후흐흐흐흐....숨쉬는 소리인지 우는 소리인지 나도 잘 모르겠다.


'맞아, 그럴 수 있어. 어제는 분명 같은 신발을 신고 잘만 날뛰었대도 오늘은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어.......그렇고말고….하하하하.‘


집에 다시 들어가 양말을 바꿔 신고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다시 기다리는 동안 두 놈이 나를 기둥 삼아 빙빙 돌며 잡기 놀이를 하다가 한 놈이 넘어지고는 씩씩거린다.


"얘들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소란 피우지 않기로 했지. 소리가 다 울리네. 옆집 아주머니 시끄럽다 하신다?!"


발성 연습을 따로 하지 않아도, 묵직한 저음으로 뼈 때리는 기술이 늘어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자동차 입성! 카시트에 안전벨트를 채워 주고 시동을 걸었는데, 그제야 첫째 등에 가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맙소사. 애써 붙들고 있던 침착함이 마지막 관문 앞에서 아스러지고 가슴 속에 있던 뜨거운 것이 분출돼버렸다.


"자기 가방은 자기가 챙겨야지! 손에 장난감은 들고나왔네, 이놈아!!!!"


한바탕 혼난 이후, 운전 중에 백미러로 아이들 얼굴을 힐끔 보니 먹구름이다. 그와 대비되는 창밖 하늘은 왜 이렇게까지 높고 맑은 걸까. 새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날수록 미안함이 커져간다. 내가 모두 체크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래도 혼나는 게 맞지. 초등학생이 자기 가방은 안 챙기고 장난감만 들고나오다니. 예전에는 버럭 화를 내고는 어린 시절의 '나'로 투영시켜 자책과 자괴감의 굴레를 맴돌았다. 이후 감정의 뿌리와 원인을 찾기 위해 지난한 여정을 시작하고 난 요즘은 제법 내 감정을 느끼는 그대로 인정해 주려고 한다. 미안함을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누군가에게 김정을 충분히 인정받고 수용 받아야 내 감정을 이해하고 타인을 수용하게 된다는 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보통 같으면 시간이 조금 지나 아이들이 다시 조잘조잘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오늘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사춘기가 오면 이런 모습이 자주 보인다던데 정말 그렇게 될까. 나는 언제부터 아이의 마음 독립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어색한 공기를 흩어 보려고 라디오를 켰다. 그런데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라디오 사연에 지금 우리 상황과 거의 똑같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아이 등교를 마치고 난 지금 시간대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엄마가 꽤 많은가 보다. DJ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사연을 이렇게 읽었다.


"아이 표정을 보니 화를 낸 게 후회가 된다. 미안하다고 말할까? 결국 아이에게 사과를 건넸다...."


겉으로 보이는 단호한 훈육과 달리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했다. 그렇다고 황급히 라디오를 끄기도 애매했다. 핸들을 꺾으며 속으로 푸념했다.

'학교에 도착하면 인사 나누기 전에 조용한 사과를 건네려고 했는데... 라디오 사연 따라 하는 것 같잖아.'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를 내려주며 입을 꾹 다문 채 미소를 건넸다. 그리고선 첫째 머리를 이마부터 뒤로 쓸어주며 말했다.

"해님아, 학교 가서는 가라앉았던 기분이 풀어지길 바랄게. 좋은 하루 보내고 이따 만나자."

“(환한 미소) 응, 엄마.”


매일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엄마 앞에, 아이의 사랑이 훨씬 바다같다.

감정보다 챙길 건 너무 많지만, 그날은 아이와 나 사이의 감정 온도를 조절하는 아침이었다.


#엄마#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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