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척하기도 지친 날

비난의 화살을 자신의 갱년기 탓으로 돌리는게 마음 편했을지도 모를 일

by 잔디아이


TV에서 김창옥 쇼를 시청하던 중 한 방청객의 사연을 들었다. 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조리 선생님의 하소연이었는데 요즘 학생들의 말에 상처를 받는다는 것이다. 식판에 급식을 받아 가면서 "밥 나온 꼬라지 봐라." 라는 말들을 내뱉는다고 했다. 내용을 듣고 나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근원적 물음이 생기며 가슴이 답답했다.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고, 스승에게도 대든다'


기원전 425년,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요즘 애들에 대한 푸념의 말이다. 태도에 관한 걱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묘한 안도감까지 든다. 결론을 근거로만 해결점을 찾는다면 '밥 꼬라지'는 조리 선생님이 혼자서 바꿀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 개선을 바라는 사항을 담임 선생님과 논의해 볼 수 있고, 교육청 외 관할 학교급식센터로 거슬러 올라가 식단에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해결보다 먼저 짚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김창옥 선생님이 공감하고 짚었던 부분은 정성으로 밥을 준비해 준 사람에 대한 태도였다. 현재 둘째 어린이집에서는 밥을 먹기 전, 이 노래를 부르며 먼저 상기시켜야 할 가치를 떠올린 후 식사를 한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먹습니다.

잘 먹겟습니다. 티나 (조리선생님 별명), 엄마,아빠, 친구들아

맛잇게 먹자. 잘 먹겠습니다.


조리 선생님은 뒤이어 덧붙였다. 집에서도 자녀와 남편 역시 자신이 밥해주는 것을 당연 시 여겨 섭섭하다고 했다. 우리는 누구든지 타인에게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고 싶은 마음과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그런데 타인에게 도구 삼아진다고 느껴질 때, 역할 외에는 안중에도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 사람은 집단 안에서 자기 존재의 빛을 잃어간다. 우리 사회는 참 오랫동안 엔터를 누르면 결괏값이 나오는 기능적 사고에 익숙해져 왔다. 학생들도 집에서는 자신의 엄마에게서 당연하게 밥을 제공받아 왔고, 학교에서는 급식 비용을 지불한 만큼 그에 걸맞은 서비스를 요구한 것일 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자식 같은 학생들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이 조리 선생님의 낯빛에 그대로 드러났다. 게다가 어른이라는 이유로 엄마와 선생님 역할 중간에 서서, 비난의 화살을 일부 자신의 갱년기 탓으로 돌렸던 게 차라리 마음 편했을지 모를 일이다. ‘본래 그런 의도까지는 아니었는데...' 하며 서로간의 소통의 오류로 미움을 붙들고 세월을 보내는 것 만큼 낭비인 일도 없다.


한국 사람은 대체로 개인적 능력이 뛰어나고 기준이 높은 경우가 많다. 자기는 아니라고 손사레를 치지만 매번 속는다. 비교와 경쟁이 극심한 사회 분위기 속, 탁월한 수준을 '보통'으로 잡는 것이다. 나 역시도 스스로를 몰아붙이느라 정작 결정적인 때에 시작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쓸데없는 고민이 내 발목을 잡는 것이다. 물귀신도 이런 물귀신이 따로 없다. 마음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알게 모르게 축적된 부담이 나 몰래 작동하고 있나 보다. 그래서 스스로도 내 아이들과 타인에게 ‘그만하면 잘했다, 고생했다’는 말을 가슴 속에 축적해 주려고 노력해본다. 내가 한 말은 다시 내 귀에 들어와 또 다른 내가 되어가는 느낌도 든다. 때로는 헬스장에서 벤치프레스 무게를 치는 것보다 무거운 힘이 드는 일이다. 그렇기에 상대를 헤아리고 배려하는 태도를 지닌 어른은 희소하고 귀한 만큼 대접을 받나보다.

지난 날에는 남편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음식이 맹물에 빠트린 닭이었다. 십수년이 지난 지금은 삼계탕 집에서 한 것 만큼 맛있게 한다. 얼마 전에는 어깨춤을 추며 스스로 개척한 불맛 계란 볶음밥을 선보여 아이들에게 엄지척을 받았다.


내가 사연 속 조리 선생님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반응하면 좋았을지 시뮬레이션을 돌려 보았다. 지나가는 일회성 개소리가 아니라면,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담아 감정을 꺼내보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학생, 맛있게 한다고 한건데 앞에서 그리 말하면 기분이 무척 상하고 힘이 빠진다네."


김창옥 선생님은 조리 선생님에게 당장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도움이 되는 말을 해주었다. 삶에 작은 행복이 자주 일어나면 좋겠다고 하셨다. 지금처럼 좋아하는 TV프로에 적극적으로 방청을 하러 오시라는 말에 이어, 자신의 제주도 집에도 초대를 하셨다. 세상에 뻗은 용기의 손을 잡아주고, 내민 그 손이 더 큰 행운의 선물을 받는 기쁨을 경험케 해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엄마인 나도 감정을 다시 배워가고 있다. 괜찮은 척하지 않고 흔들리는 자신을 천천히 바라보기로 한다. 양육자의 유능한 감정 소통이라는 완벽한 목표와 허상에서 벗어나기로 마음 먹는 것이다. 갈대가 비바람에 잘 흔들리지만 끝내 부러지지 않듯이.


아이가 지금 내게 말했다.

"엄마가 잠깐 마트 갔을 때 나 사실 무서워서 눈물 찔끔 했었다?"

"5분이면 돌아오지? 그러면 너는 그동안 실컷 벌벌 떨어~ 아이구 무서워 하면서. 그럼 좀 괜찮아지거든. 그러다가 재밌는 책 한장 넘길 때쯤 엄마가 돌아오겠지?" 나는 양손 날갯짓을 크게 퍼덕이며 벌벌 떠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이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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