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했는데 나는 어디 있지?

당신은 아이들과 함께 그곳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by 잔디아이

수정 중


다각도로 나를 이해하려는 노력 끝에 첫 단계의 결실들을 마주하는 때도 있었다. 그중 하나는, 시작의 두려움의 원인이 완벽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나의 역사를 찾아헤매는 일은 참 고된 여정이었다. 내 마음 지도가 해석될 때마다 퍼즐이 하나씩 맞춰지고 해답 비슷한 해답을 찾게 되어 기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과정을 천천히 지켜본다는 것인데 완벽주의 모드를 지속시킨다는 건 아이들 입장에서 최악의 조건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나는 시작의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 원인과 마음작동방식의 원리를 찾으면 삶에 평화가 찾아오는 줄 알았다. 그 여정이 지난했을 뿐, 그 안에서도 지속적인 마음가짐과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는 건 몰랐다. 스위치 누르면 모드가 바뀌어 세상이 언제나 핑크빛일 줄 알았다. 명작 동화책의 결말도 해피엔딩에서 끝나는 게 아닌 공주님과 왕자님이 어떻게 지지고 볶고 살았는지 실제 삶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지 않나. 당시의 나는 어디서든 노트북만 열 수 있다면 일할 수 있다는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누렸다. 일도 하고 육아도 병행할 수 있으니 이보다 나을 수 있을까 싶었다.

온라인이나 오프라인을 통해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고는 기뻐하며 작업에 폭 빠졌다. 의뢰인의 니즈를 꼼꼼하게 파악하고 체크리스트를 점검했다. 그런데 디자인이라는 게 정답이 나와있지 않고, 맺고 끊음이 없는 일이다. 손을 대면 댈수록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점점 예뻐지는 건 아주 당연지사라 그래서 마감시간이란 게 있는 것이다. 퀄리티와 들이는 시간을 적절하게 분배해 어느 쪽이든 욕심을 버려야 했다.

아이디어를 2~3개 정도만 도출하여 그중에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하고 얼른 작업에 들어가야 하는데 더 나은 아이디어를 고집하기 위해 스케치를 하느라 작업에 돌입하지 않는 것이다. 작업하는 시간이 3일이라고 친다면, 금요일에 일을 의뢰받아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이어받아야 하는데, 더 나은 아이디어를 위하여 주말을 내 마음대로 갈아 넣어 작업을 한다는 사실이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나가도 내 손에는 언제나 아이디어 스케치북과 연필이 들려있었다. 나뭇잎을 바라보고, 꽃을 바라보며 아이와 공유하는 게 아니라 디자인적이 요소가 될 만한 패턴을 찾느라 혈안인 나를 발견했다. 엄마로서는 최악의 시간들을 보낸 것이다. 차라리 9 to 6 근무를 하고 셔터를 닫고 나오면 모를까.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언제나 일을 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어떤 아이도 영혼 없는 엄마의 눈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사실 나의 상황에 맞춰 일과 삶을 적정하게 균형을 이룬다면 큰 문제는 없었을지 모른다. 의뢰인이 결제한 비용 이상으로 과도한 집착을 보였던 이유를 생각해 본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보다, 나 여기 있어요. 나 아직 살아있어요라는 세상의 쓸모와 존재 확인이 이유였을 지도 모르겠다. 엄마라는 이름이 아닌 내 이름 석 자가 세상에 잊히지 않을지, 어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채 존재가 희미해져 영영 보이지 않을까 봐, 그놈의 감을 잃지 않기 위해 한다는 노력이란 게, 가족과 주변을 돌아보기 보다 질주하며 나의 영혼과 육체를 갉아먹던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미혼 시절의 나는 내 시간을 쪼개어 알차게 사용했다는 통제감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나는 한순간도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진 않았었다. 뭔가를 하거나 고민하면서 나를 괴롭혔다. 그냥 흘려보내는 게으름은 죄악이라 여기며 시간뿐 아니라 삶을 통제했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결코 계획대로 예측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 시간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도 모르게 마음을 옭아맸던 것이다.

엄마로서의 시간들은 세상에 없어진 시간이 아니었다. 세상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오히려 아이들을 통해 나를 바라보며 글을 쓰며 세상에 내 이름 석 자를 알게 해주었다.


세상이 원하는 결과물에 맞추기 위해 달리는 게 아닌, 오히려 삶을 자세히 바라보고 기다리고 이해 하하며 나를 가족이 있는 삶의 현장으로 풍랑 뛰어들게 해준 시간들이었다.

있는 그대로 빛나는 인간이 되어라는 메시지를 적을 때는, 내게 없는 면이기에 글씨를 쓰고 그런 인간으로 가까워지고 싶어서 썼다.

육아는 했는데 나는 어디 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아이들과 함께 그곳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었다고. 그 시간은 결코 하찮은 시간이 아닌 깊어지는 시간을 보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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