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엄마' 프레임에 갇힌 기분들

명품 샌들 밖으로 튀어나온 새끼발가락으로 땅을 지탱하고 있는 처절함

by 잔디아이

매번 캐릭터 변신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개그맨 이수지의 콘텐츠 영상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한다. 뉴스에도 떠들석하게 등장했던 지난 컨셉 '대치동 제이미 맘'에 관해서다.

제이미 맘은 등장부터 우스꽝스러운 연기로 시선을 강탈했다. 값비싼 특정 패딩과 명품으로 온몸을 휘감고 과도하게 교양스러운 말투로 아이 교육에 온 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사회적 파장은 생각보다 컸고 지독(?) 하게 잘하는 연기를 보고 누군가는 웃었고, 또 누군가는 불편했다.


흥미로운 점은 영상을 본 뒤에 보인 사람들의 거센 반응이었다. 이수지가 입었던 특정 브랜드 패딩이 중고 플랫폼에 쏟아졌고 이수지의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보고 사람들은 화가 잔뜩 났다. 질 좋은 명품을 구입하겠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냐마는, 어쩌면 내 안의 욕망과 허세를 들켜버린 당혹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당장 내 옷장에 명품 패딩이 없다고 제이미 맘보다 개념적인 인간인가 생각해 보면 결코 아니다. 나 역시 남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오래된 삶의 동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제이미 맘을 보는 시선을 조금 달리할 수도 있다.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가 뛰어난 모습은 부러운 모습이다. 아이가 붙잡고 매달린다고 목 늘어난 티셔츠를 입지도 않는다.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든 없든 여러가지로 신경을 써야 하는 엄마 입장에서 매일 몸과 마음을 정비해야 하는 데 큰 에너지가 소모된다. 코미디를 위해 과장했지만 깐풍기, 새우볶음밥, 짜장면.... 등 자신을 위하여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여 맛있게 잘 먹는다. 중간중간 우스꽝스러운 배려를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완벽하게 배려하려고 너무 애를 쓰고 친절하다.

자신이 탈락시킨 제기차기 개인 과외 선생님에게 보이는 태도는 또 어떠한가. 누가 봐도 허당끼가 다분하고 실속없는 선생님을 면전에서 괄시하지 않고 면접비를 지불하여 보내는 등 합당한 면모도 보인다. 자녀인 제이미에게 버럭 화를 내기보다 감정을 절제하는 모습까지, 과연 제이미 맘을 무턱대고 욕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런데도 이 모습이 풍자화되고 안팎으로 큰 관심을 일으켰던 이유는 무엇일까. 속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나와 다른 세상 속 TV 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서글픈 이유가 있다. 세상 여느 엄마와 비슷한 제이미 엄마 본연의 모습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 앞에 완벽한 엄마는 있는데, 진짜 엄마는 여러 겹의 페르소나 뒤편에 서서 가려져 있다. 완벽해 보이면 보일수록 도움을 요청하기도 힘든 티를 내기도 어렵다.


생각해 보면 이는 아주 낯선 장면은 아니다. 과거 한국 사회가 어머니에게 요구되었던 현모양처의 현대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질고 지혜로운 어머니 '현', 교육자 역할 '모', 선한 '양',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 '처'라는 이 개념은 조선시대 유교 문화 속 가부장제 중심 문화를 굳건히 하기 위한 도구로써 바람직한 여성상으로 강조되었다. 시대는 바뀌었고 모든 것들은 자동화되고 편리해졌기에 왠지 엄마의 삶도 편해진 것 같다. 그런데도 엄마라면 모든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내면의 목소리는 갈수록 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의 옷매무새가 단정하지 못하면 아이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신경 안 쓰는 엄마 프레임이 씌워진다. 외관은 물론 공부도 잘 시켜야 하고, 일도 잘 해내야 한다. 이 정도면 없던 ADHD도 생길 판인데, 아이들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말은 실상 내가 불안하여 아이들에게 투영시키는 말이었다.


현대판 MZ세대 제이미 맘도 그렇다. 1980년대에 이르러 여성 교육이 확대되면서 제이미 맘을 길러낸 어머니들의 교육자 '모'라는 이념은 뿌리 깊게 살아있다. 어머니 세대는 자녀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고 자아를 실현하라고 하셨다. 그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자아실현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 교육도 완벽하게 해내라는 한이 담긴 메시지다.

소시 적 디자인실에서 업무를 하던 중 받았던 기획안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떠오른다. '클래식하지만 모던하게' 또는 '거칠면서 귀엽게'라며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겉 보기에 있어 보이는 기획 의도를 넘기는 클라이언트의 요구 같다고 할까.


차라리 불안과 허술함을 돈으로 없앨 수 있어 보이는 제이미 맘이 나아 보이기까지 한다. 완벽해 보이는 세상 앞에서 지치고 무기력해진 청년 세대는 나 하나 건사하지 못하는데(세상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어떻게 다른 생명을 건사하냐는 마음으로 출산을 망설이기도 한다. 신경 쓸 게 한두 가지도 아닌 세상인데 말이다.

완벽한 엄마의 '완벽한 아이 만들기 프로젝트' 기획안의 부작용은 결국 어디로 흘러갈까. 한 방향으로 몰리는 사교육 열풍으로 아이들 마음은 점점 병들어 간다. 과거에 '조기 교육'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세상을 떠들썩했던 때도 있었는데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한 지금은 아무것도 해결된 건 없어 보인다. 되레 4세 고시, 7세 고시로 문제가 심화됐다.


제이미 맘의 명품 샌들 밖을 튀어나온 연약한 새끼발가락이 지탱하고 있는 땅은 우리가 버티고 있는 마지막 현실 같다. 같은 하늘 아래를 사는 같은 엄마로서, 제이미 맘을 나의 딸, 나의 아내, 나의 자식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수지의 연기는 엄마들의 삶에 관하여 이렇게 질문을 했다. 가슴 속 안에 있는 당신의 마음은 요즘 어떠한지, 당신 본연의 삶은 또 어떠한지. 제이미 맘의 이슈화는 결국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물질주의를 희화화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벽한 K-엄마' 프레임에 우리의 삶을 또 한 번 가두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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