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친구들이 만난 지 10년 이상이 된 지금의 나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0대 초반 저지르던 기행들을 곱씹으며 그를 안주 삼게 된다. 미래는커녕 내일도 생각하지 않고 놀았던 스무 살 언저리는 하루하루가 너무 재밌었고 인생에 다시없을 행복했던 시기다. 이야기가 수험 및 취준 생활을 하던 이십 대 중반을 지나, 막 취직해 고군분투하던 이십 대 후반도 지나 현재에 도달하면 누군가가 "지금 20대 초반으로 돌아가라면 돌아갈 거야?"라고 묻는다.
방금까지 20대 초반에 겪었던 행복과 설렘을 곱씹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선뜻 돌아가고 싶단 말을 하는 사람은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나는 특히나 절대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이는 내가 현재의 삶이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하다거나 자존감이 높아서는 아니다. 원래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됐든 감내하는 건 나의 몫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인생의 큰길을 결정하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지는 않다. 조금 더 성실했으면, 용감했으면, 인내했었다면 하는 점은 있을지라도, 그랬더라도 결국 나는 현재의 내가 되지 않았을까?
활어처럼 펄떡이고, 빛나고, 지치고 퇴색되다가도 다시 일어서던 20대를 지나 30대 도입부도 지났다. 지금도 불시에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끼고 미래가 불안하고 어정쩡하다. 그러나 이 불안함은 평생을 함께할 것이라는 것도 살아봐서 알게 된 일종의 여유이다. 그 외에 지금의 내가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좋은 점은 지난 어린 시절 켜켜이 쌓아온 취향과 경험들이 만들어주는 여유와 안정감이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온 에너지를 다 바쳐 좋아하던 여름날이 지나고 그 산물들이 층층이 퇴적되고 나의 밀실 내에 쌓여 비빌언덕이 되었다. 사람에 상처받을 때나 일에 치일 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듣고, 보고, 읽다 보면 잠시 나만의 세계를 유영하고 올 수 있다. 그 취향들은 한 없이 무용하고 사소하지만 그것들이 주는 고요함과 안정감에 기대면 잠시나마 복잡한 현실을 잊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정해진 진로와 안정된 직장이 주는 평온한 생활이다. 누구에게 손 벌리지 않고 내 돈으로 적당히 살아내는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어렵고도 소중한 것임은 불안한 20대를 보냈기 때문에 알 수 있다. 시험의 당락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던 약대 막학년, 전공 13개 1주일에 몰아서 시험 보던 학생 시절, 애초에 약대를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 모두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과정들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끝났음에 안도하는 순간이 지금도 종종 있다. (약시&학교 시험 다시 보는 꿈 2년 전까지 꾼 듯..)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도 지금은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20대에는 나에게 과도한 감정적 공감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거절하지 못해 내 감정까지 소모해 지치고 힘들었던 적이 많았다. 또 나에게 말을 함부로 하거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도 트러블 일으키는 게 두려워 속으로만 삭이곤 했고 지나가면서 툭툭 내뱉는 한 두 마디에 상처받고 스스로를 검열하던 적도 많았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겪고 나서 적당히 무시하고 거절하고, 심지어 맞짱 뜨는(!) 배짱도 어느 정도 생겼다. 이는 십수 년 세월을 이미 함께 한 든든한 사람들이 이미 곁에 있기 때문에 생겨난 힘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성숙한 어른이 된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도 기저에 불안정하고 외로운 감정이 늘 존재하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더 많다. 앞으로 해내야 할 과제도 많고 그걸 선뜻 해낼 수 있으리란 용기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나의 지난 족적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잘 살아내야겠지.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는 주저하지 않고 비교하고 질투하는 것은 지양하며 살면 그래도 후회 없이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렇게 차근차근 살아가면 40대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도 여전히 똑같은 친구들과 추억을 곱씹으며 그때도 좋았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실없는 농담이나 하며 살고 있겠지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사는 게 재밌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