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 즈음엔 너무 이룬 게 없어 허무하고 조급하고 우울했던 기억이 난다. 놀랍게도 올해도 작년과 같은 일상들을 보냈고 발전한 게 전혀 없다. 그렇지만 조급함에서는 조금 벗어나서 그런지 올해는 매우 무덤덤하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인생 따위는 없다는 걸 깨닫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어릴 때부터 알았지만 나쁜 짓은 안 하고 살았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게 많은 한 해였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5년 차인 나에게 인생의 과제가 남았다면 결혼과 개국일 것이다. 졸업 전까지는 인생이 시험의 연속이었고 국가고시만 끝나면 나는 정말 걱정 없이 자유로울 줄 알았다.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고 실업자가 될 걱정도 별로 없는 라이센스만 가지면 인생이 한결 가벼워질 거라 생각했다. 뭐 학생 시절을 은근히 짓눌렀던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감은 사라졌지만 인생의 과제는 끊임없이 생겨난다. 경제적 자유는 오피스텔 월세 내고 사고 싶은 것 사고 먹고 싶은 것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졸업하며 그 알량한 두께의 경제적 자유는 이루었지만, 어른이 됨과 동시에 가중되는 경제적 자유의 의미는 월세가 아닌 자가 아파트에서 살며 쓸 거 다 써도 생활비만큼의 저축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했다. 실업자가 될 걱정은 사실 없지만 근무 약사로 살며 성실하게 모으는 월급으로 서울에서 그러한 능력을 갖추는 건 어렵고 크고 안정적인 노동 소득을 얻으려면 개국을 해야 한다. 개국이라는 옵션이 있는 직군에서 근무 약사는 베이스캠프같이 여겨지기도 하는데 사실 서울이 아니라 지방에서 큰 야망 없이 산다면 충분히 근무 약사로도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지방이 급여 훨씬 높고 집값은 훨씬 싸니까..)
하지만 나는 경제적 안정은 2, 3년 늦춰져도 어차피 한평생 일할 거 그다지 조급하지 않았다. 결혼에 대해서는, 결혼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온 마음을 내주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확신을 갖는 게 나에겐 인륜지대사였다.
연애는 사랑이 많은 나에게 삶의 이유일 때도 있었지만, 언제든 부서질 수 있는 모래성 같기도 했다. 연애 중 미묘하고 섬세한 감정싸움과 아주 사소한 갈등이라도 그로부터 시작되는 파동의 끝에는 헤어짐이라는 선택지도 늘 존재했으므로 나는 그 얄팍한 불안감이 싫었다.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피플에는 이런 구문이 있다.
결혼은 그 나름대로 노력이 계속 들어가지만, 매일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다 맡긴 사람과 더 이상 얕은 계산 없이 팀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의미는 이렇게 서로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이었다.
인생의 목표 두 가지를 아직도 모두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조급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고 삶의 흐름에 나를 맡기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나를 단련시키면 언젠가 기회는 온다는, 나름 인생을 살아보고 갖게 된 지론에 대한 믿음이다.
그래도 모든 일들엔 절대악보다는 희로애락이 공존했고 교훈과 깨달음을 현명하게 추출해 마음에 심고 자양분으로 삼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래도 내년엔 좀 더 단단해지고 반짝반짝 빛나길! 수고했다 나 자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