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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뎅뎅 Oct 28. 2022

무례한 세계

 SNS가 발달하면서 현 사회는 적나라하게 돈에 가치 편향되었다. 처음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주변이 실질적으로 돈이 중요한 시기이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나 싶기도 했지만 확실히 사회 분위기는 변했다. 미디어부터 거리를 굴러다니는 일상다반사까지 돈에 적나라한 시대이다. 연봉을 묻는 게 실례라는 인식은 사라지고 타인의 취직이나 이직에 대놓고 연봉부터 묻는다. 얼떨결에 밝히게 되는 연봉에는 수 십 가지 코멘트가 붙는다. '생각보다 얼마 안 되네', '공부 그렇게 하고 그 정도면 ㅇㅇ하는 거랑 똑같은데?' '내 친구 누구는 가게 열어서 얼마를 버는데, 매일 명품 쇼핑하고 어쩌고..' 난 궁금하지도 않고 평가받고 싶지도 않는 코멘트가 붙으면 지금 뱉는 말들이 굉장히 실례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사회 분위기의 문제일까 너의 문제일까? 궁금증이 인다.


 물론 나도 돈에 관심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힘은 적극적으로 길러야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은 불변이며 가난은 생활과 인성을 좀먹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그렇지만 가난에게 위악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며 보이는 부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다. 


 사회가 이렇게 변하는 건 불가항력적일 수 있다. SNS를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접하고, 비교하고, 과시가 목적인 세계의 디폴트에서 스스로를 저평가하게 된다. 사람이 시각적 자극을 우선시하는 존재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보이는 과시용 사진들만으로 스스로의 인생을 폄훼하기에는 아쉬운 점이 많다. 타인을 부러워하기에 앞서 나는 그 사람의 인생을 온전히 알고 있는 걸까? 화려한 순간의 단편만을 전시해놓은 공간만 들여다보며 그 사람과 나의 인생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얕은 사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당량만큼의 기쁨과 슬픔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부러워하는 그 사람은 내가 마주해본 적 없는 심리적 고통을 받았을 수 있고, 봉인된 상처를 가졌을 수 있다. 재계 순위의 사람들이 자살하는 사건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건 현시대 미디어의 책임도 크다고 본다. 교양 예능이 주를 이루고 드라마의 주인공도 다양한 삶의 군상을 보여주던 2000년대 후반~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사회 분위기는 이렇게 각종 혐오와 날 선 언어들로 뒤범벅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이야기들은 응원과 박수를 받았지만 지금은 입에 담지도 못하는 악플 세례만 남을 뿐이다. 공감 능력 없는 날 선 말들이 '팩트', '사이다'가 되어 부끄러움이 사라졌고 직업은 연봉 별로 줄 세워져 명예와 지식 등 돈 외에 중요한 가치는 희석되고 있다. 이렇게 교양 없이 바닥으로만 가는 사회가 얼마나 계속될까? 피곤하다.



 나도 내가 가난하게 살아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 각종 투자를 공부하고, 개국을 생각하며 깨끗하고 치안 좋은 동네에 살기를 원한다. 중요한 건 나 스스로 중심 잡고 고군분투하며 열심히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굳이 비교하고 비난하고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에 빠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가 만족한 삶이란 게 가장 어려운 과제이기는 하지만 그걸 이루는 과정인 인생은 그래서 어렵고 재밌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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