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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May 13. 2023

퇴사할 결심

국장님 저 드릴 말씀이..

 보통 일반적인 로컬 약국에서 근무 약사의 근속 일수는 타 직종에 비해 짧은 편이다. 왜냐하면 대부분 연차나 휴가가 매우 박하고 (연차 없는 곳이 대부분, 휴가 1년에 3일 정도) 오래 일한다고 해서 복지가 늘거나 급여가 크게 인상되지는 않기 때문에 보통 1년 정도 일하고 쉬었다가 다시 일하는 패턴이 많다. (물론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지금 약국에서 꽤 오래 일한 편이다. (이 말을 쓰기 위한 빌드업이었음) 거의 3년 가까이 일했으니 사실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타이밍이긴 하다.


 이 정도 일하고 퇴사할 때는 약국을 개국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하는 큰 명분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둘 다 아니고 그냥 심신이 지쳐 못 버티겠어서 그만두는 것이다. 코로나 때 팍스로비드 취급 약국이 되면서 처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재택처방으로 잡일도 많아지면서 정말 몸이 너덜너덜 해졌었지만 책임감에 그만두지 못하고 꾸역꾸역 버티며 지나갔었다. 한 동안 잠잠하다 근처 소아과 오픈과 함께 감기 환자가 늘면서 다시 바빠지고 격무에 지쳐가며 또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국장님은 수입이 엄청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더 욕심을 부려 비대면 어플을 깔아 잡일을 더 늘리셨다. 사실 일이 힘든 거야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지만, 아무리 돈 주고 고용하는 입장이라도 모든 것을 인간적 배려 없이 이해타산적으로 계산만 하는 모습에 인간적으로 정나미가 떨어져 미련 없이 퇴사를 결정하였다.

 이실직고하자면 개인적으로도 마음이 지치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안팎으로 마음 놓을 곳이 없으니 마른걸레 쥐어짜듯 퍽퍽한 일상이 이어지고, 몸과 마음은 지쳐만 가고 살은 빠지고 점점 못생겨져 보였다. 정말 휴식이 필요했다. 또 애초에 작년이 너무 허무하게 지나가며 올해는 인생의 변화를 주어야겠다 생각하기도 해서, 일을 그만두고 개국을 알아볼 생각이기도 했다.


 국장님에겐 너무 루틴 한 일상이 이어져서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퇴사를 오래전부터 결심했다..라고 붙잡지 못하게 확실히 말을 하여서 국장님도 차마 붙잡지는 못하셨다. (다만 퇴사일 1-2주 늦어지긴 했음.)


 퇴사 후 계획은 마닐라에 있는 친구 집에서 쉬다가 혼자 북유럽 여행을 할 계획이다. 번잡한 곳보다는 평온하고 차분한 곳에서 한 동안 쉬고 재충전을 하고 올 생각이다. 다녀오고 나서가 좀 걱정되기도 하지만 뭐 그때 가봐야 알겠지. 아무튼 퇴사를 결정하고 확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하다. 아직 한 달가량 남았으니, 그간 정들었던 손님들에게도 서서히 작별 인사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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