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핵심은 설계다. 모든 게 설계에서 결정나기에.
어제 저는 도요타 자동차의 '신체제 개편'은 도요타 자동차의 수많은 부서를 간소화함은 물론 제품 개발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차기 리더를 육성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자동차 제작 부서를 [소형차], [중대형차], [상용차], [렉서스]로 나눔으로써 각 제품의 품질은 물론 디자인까지 제품 자체를 개선하고자하는 목적입니다.
여기에 대해 토요다 아키오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합니다.
더 좋은 차 만들기
저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무슨 말인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 간단한 말이 수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좋은 자동차'란 "디자인이 멋있고, 운전하는 맛도 있으면서, 연비도 우수한 자동차"를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 데에는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러다보니 가격도 비싸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메이커들은 '좋은 자동차'를 만드는데 발생하는 높은 가격을 해결해야 합니다.
즉, 토요다 아키오 사장이 역설한 "더 좋은 차 만들기"의 뜻은
디자인도 멋있고, 운전하는 맛도 있으면서, 연비가 우수함은 물론 이러한 우수한 성능에서도 가격이 싼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용어 속에 이렇게 심오한 뜻이 있었던 거죠.
사실 토요다 아키오 사장이 "더 좋은 차 만들기"를 역설한 데에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도요타 자동차는 100여 종의 차량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100여 종의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만 약30,000개에다가 엔진 종류만 무려 800가지에 달하던 상황이었습니다.
겉보기에는 규모가 크니 "역시 도요타!!"라고 할 수 있으나, 여기에는 엄청난 위험이 숨겨져 있습니다.
토요다 아키오 사장 역시 2016년 5월 실적발표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간 500만 대를 만들 때 일하는 방법과 1,000만 대를 만들 때 일하는 방법은 다르다. 1,000만 대 체제에서는 500만 대 체제와는 전혀 다른 복잡성이 발생한다. 또한 예로들어, 삼각형에서 꼭지점 하나에 변화가 생기면 다른 선에도 전부 변화가 생겨버리듯이 자동차 역시 규모를 달리하면 모든 부문에서 변화가 생긴다."
즉, 생산 자동차 종류 및 규모를 확대해버리면 생산방식 및 부품 등 온갖 복잡함이 극대화되어 불량률이 발생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요타 자동차 입장에서는 생산과정 및 부품구조 등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고, 오랫동안 여기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해왔습니다.
오랜 장고 끝에 나온 해결책이 바로 TNGA(Toyota New Global Architecture)입니다.
단일 차량의 설계 효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도요타가 만드는 전체 차량의 설계를 하나의 거대한 '계획'이나 '건축구조'로 보고, 이 전체 설계의 효율을 높일 방안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엔진, 차체, 조향, 배기, 시트 등의 각 부분을 하나의 레고블록처럼 일체화하여 개발하고, 이 레고블록을 조합해 여러 종류의 자동차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전과는 완전 새로운 방식입니다.
새로운 방식인만큼, 그만큼 조직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도요타 자동차는 이미 2013년의 조직 개편을 통해서 TNGA 부문을 크게 강화했고, 2016년 신체제 개편을 단행한 것도 바로 이 생산방식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함이었던 것이었습니다.
눈에 안보이는 설계의 프로세스를 바꾸고 거기에 투입되는 인재들의 사고방식을 바꿈으로써, 결과적으로 더 저렴한 가격에 더 좋은 차를 만들 수 있도록 한거죠.
이 TNGA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Volkswagen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1990년대의 Volkswagen은 수많은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노사갈등과 고비용 구조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원가 경쟁력이 일본 자동차나 한국 자동차에 비해 열악했다는 것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에는 '플랫폼 공용화 전략'을 운용했으나, 이도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Volkswagen의 경우, Volkswagen 외에도 Audi, Porsche, Bugatti 등 승용차 브랜드만 8개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각 브랜드의 자동차 플랫폼을 공용화하면 비용은 절감되겠지만, 자동차들의 성격까지 비슷해진다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게다가 플랫폼을 공용화한다고 해서 플랫폼에 들어가는 부품들이 점점 복잡해져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원가절감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Volkswagen의 이런 고민의 해답이 바로 '레고블록형 설계 방식'이었습니다.
Volkswagen은 Scania를 통해 '레고블록형 설계 방식'을 창안할 수 있었습니다.
Scania는 스웨덴의 대형 상용차회사로 경쟁 업체보다 월등한 10% 중반대의 영업이익률을 내는 업체로 유명했습니다.
Volkswagen은 Scania가 개발비를 줄이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차를 만들어내는 비밀이 '레고블록형 설계'에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2005년에 사내 브랜드인 Audi부터 그 방식을 적용시키기 시작하면서 2008년에는 아예 Scania를 인수하고, Volkswagen 그룹 전체에 '레고블록형 설계 방식'을 적용시켰습니다.
2012년에는 자사의 레고블록형 설계 전략인 MQB(Modularer Querbaukasten)을 발표했습니다.
MQB란 '큰 덩어리의 부품들이 서로 다른 차종을 넘나들며 결합하는 구조'라는 의미입니다.
MQB는 다양한 자동차의 외형적인 부분을 공용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기능을 가진 부문의 '설계 개념' 자체를 규격화하고 공용화하는 것입니다.
Volkswagen은 자동차를 차체, 파워트레인, 내외장, 전자장치의 네 가지 분야로 나누고 그 하위 개념으로 30개 부품군을 만들었습니다.
즉, 30개 부품군을 레고블록 쌓듯 조립하여 새로운 차를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일단 레고블록만 있으면, 그다음부터는 온갖 형태를 쉽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MQB를 보다 더 원활하게 이용하고자 Volkswagen은 1993년에 16개나 되었던 플랫폼을 1997년에 6개로 줄였고, 이제 4개의 '레고블록형 통합 설계 방식'으로 바꾸었습니다.
이러한 개선방식의 효과는 엄청났습니다.
일정한 형태를 공유화하는 플랫폼이 아닌 자동차에 필요한 여러 기능의 개념을 공유화해, 이를 레고블록처럼 각기 독립된 패키지로 만들어서, 소형차든 중형차등 대형차든 모두 적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자동차 무게가 크게 줄어들어 연비가 개선됨은 물론 개발비 및 부품비도 급감하였습니다.
더 문제는 경쟁사의 입장에서 이러한 Volkswagen의 MQB를 모방하기도 엄청 까다로워졌다는 것입니다!
2010년에 들어와 이러한 Volkswagen의 혁신은 세계 자동차시장에 대변혁을 몰고 왔습니다.
당시 자동차회사 1위였던 도요타 자동차는 순식간에 밀렸습니다.
또한 도요타 자동차의 강점이었던 품질마저 Volkswagen에 비해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자동차 평론가 도쿠다이지 아리츠네는 Volkswagen 자동차를 타본 소회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치 별세계에서 온 차를 몰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시 일본은 전륜구동 소형차라면 누구와 붙어도 자신이 있다는 자만심이 가득할 때였다. 하지만 Volkswagen 자동차는 일본 차와 차원이 달랐다. 충격이었다."
당시 Volkswagen의 질주에 깜짝놀란 도요타 자동차는 Volkswagen을 면밀히 분석하였고, 그 결과로 TNGA를 제안했습니다.
토요다 아키오 사장이 말하는 TNGA는 Volkswagen의 MQB를 모방한 것입니다.
이 사실은 도요타 자동차도 부정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그만큼 자동차 전문가 집단인 도요타 자동차가 보기에도 Volkswagen의 MQB는 당장 따라 해야할 만큼 혁신적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레고블록방식'을 운용하는 TNGA에는 다음과 같은 장점 역시 발견되었습니다.
TNGA를 활용하면,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나의 프로세스로 만들어 전체를 최적화하기가 쉬워집니다.
과거에는 설계와 생산이 서로 분리돼 있었는데, 이로 인해 프로세스가 원활하지 않았고, 설계했던 부분에서 생산 차질이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하지만 TNGA는 설계를 단순화함으로써 생산공정도 단순화하고 유연하게 해주었습니다.
동시에 연간 1,000만 대에서 2,000~3,000만 대로 생산량까지 수월하게 늘릴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Prius입니다.
도요타 자동차는 2015년 말에 도요타 자동차를 대표하는 하이브리드카 Prius 4세대를 내놓았습니다.
이 자동차는 TNGA를 활용해 만든 첫 모델로, TNGA 1호차입니다.
Prius 4세대의 가격은 3세대와 비슷하며, 차량이 더 커져 실내공간이 더 넓어졌습니다.
연비도 좋아졌고,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의 기본기가 크게 개선되었습니다.
이전의 Prius는 기름은 크게 아낄 수 있었어도 달리는 맛을 느끼긴 어려웠지만, Prius 4세대는 달리는 맛까지 엄청 좋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준중형 해치백의 교과서라 불리는 Volkswagen 7세대 Golf(2012년 출시)에 비해서도 차체 강성이 더 강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회사는 이미 단종된 차량이라고 해도 보통 10년간 부품을 보유하며, 차량의 금속 패널 등을 찍어낼 수 있는 금형은 수십 년간 보관해야 합니다.
여기에 10년간 부품을 관리하게 되면 그 관리 비용만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비용을 A/S부품의 공급 가격을 올려 충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레고블록형 설계 방식이 일반화되면 레고블록에 들어가는 부품은 공통이기 때문에 수리에 필요한 부품 종류도 크게 줄어듭니다.
따라서 자동차회사들은 A/S 부품의 제조,관리 비용이 줄어들어 A/S 부품값을 낮출 여력이 생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자신이 보유한 차의 부품을 좀더 저렴하게, 수급 걱정 없이 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재고처리가 매우 중요한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매우 호재인 것입니다.
도요타 자동차는 자사의 설계방식의 근간이 TNGA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 2015년 말에 3편의 웹 드라마까지 만들어 일반인들에게 배포했습니다.
도요타 자동차가 TNGA를 통해 끊임없이 설계의 혁신을 하고 있고,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멋지고 잘 달리고 안전한 차를 제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이렇게 스토리텔링한 웹 드라마를 통해 혁신적인 개발 전략을 쉽게 풀어 설명함으로써 '혁신'이라는 기업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도요타 자동차는 한 발 더 나아가 '비상식만이 그 다음의 상식이 된다', '정답을 찾지 마라. 만들어라', '개발은 싸움이다' 등의 자막을 웹드라마 화면에 꽉채워 도요타 자동차가 얼마나 도전하고 있는지도 어필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우려먹기'지만, 정말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포스팅에서 저는 도요타 자동차가 변화하고자 하는 부분 중 '설계'에 대해서 다루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자신이 문돌이이기 때문에 설계의 중요성에 대해서 인지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Galaxy Note7 폭발사태' 등을 거치면서 '설계'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전 이 자동차 설계의 미래는 '레고블록형 설계'라고 확신합니다.
단순히 도요타가 하니까 미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량률도 낮을 뿐더러 무엇보다 수리비용도 낮춰지는 등 효과가 과거 플랫폼 개발 방식을 압도하게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Volkswagen을 시작으로 도요타 자동차를 포함한 수많은 자동차 업체들이 '레고블록형 설계'를 기반으로한 R&D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Volkswagen의 경우 2015년 기준 R&D 투자비는 15조 원 규모로, 전 세계 모든 자동차회사 가운데 단연 최고였습니다.
이 수치는 2011년보다 60%나 증가한 수치입니다.
도요타 자동차는 2015년에 11조 원 정도를 R&D에 투자하였습니다.
앞으로도 설계 방식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추세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부 언론이나 자칭 전문가 중에는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이 미래 자동차 개발의 전부라면서,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설계입니다.
설계 혁신은 지금 당장 우리가 구입해 타는 자동차의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그 경쟁력이 전기차, 수소차 경쟁력에까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Volkswagen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Volkswagen은 1990년대에 들어 여러가지 위기로 상황이 좋지 않았고, 특히 원가경쟁력 등으로 도요타 자동차에 밀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MQB라는 설계 혁신을 통해 도요타 자동차의 어떠한 강점보다 더 우월한 강점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설계 혁신은 자동차 회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안이고, 도요타 자동차가 가장 집중하고 있는 분야이었습니다.
설계 혁신을 이루기 위해 도요타 자동차는 '컴퍼니제'를 필두로 한 신체제 개편작업에 들어갔고, 우수한 리더 및 기술자를 육성하고자 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2015년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거두었음에도 말이죠.
분명 많은 직원들은 짜증이 났을 것입니다.
회사가 잘 나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구조조정한다고 하니 기분이 나쁠 수 밖에요.
하지만, 이번에 도요타 자동차가 하는 것은 결코 사람을 해고한다는 구조조정이 아니었습니다.
회사구조를 미래에 적절히 대응함은 물론 현재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오랜 고뇌의 산물이었습니다.
제가 이번 [왜 다시 도요타인가.]포스팅에서 다루고자 했던 것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이때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고뇌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저는 그것을 도요타 자동차에서 봤고,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도요타 자동차에 경의를 표합니다.
-[왜 다시 도요타인가], 최원석 著
-[THE TOYOTA WAY], Jeffrey K. Liker 著
-[삼성, 안 망한다. 걱정마라.], https://brunch.co.kr/@zangt1227/50
-Toyota Official website ppt
-[Analysis_of_toyota], Thembani Nkomo 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