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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nus 창 Mar 26. 2017

IMF의 원인, 파헤쳐보자.

IMF는 여러모로 모범사례였다. 활용을 못해서 그렇지.

1997년 11월.

한창 잘 나가던 대한민국을 구렁텅이로 몰아간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IMF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경제가 발전하던 1970년대부터 수많은 경제적 위기를 맞았으나, 이번에 맞은 IMF사태는 그 수준이 '완전' 달랐습니다.

2017년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과거는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최선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IMF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는 IMF시절 이후에 우리가 제대로 우리나라 경제를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IMF사태가 왜 발생되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알아볼 것입니다.


사실 이번 편은 지난번에 다룬 [한국 경제를 조망한다]편의 후속편입니다.

당시 저는 노태우 정권 이후 우리나라 경제는 지속해서 하강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는 않았는데요.

바로 이 IMF사태를 다루기 위해서입니다.

일부분으로 다루기에는 IMF사태의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정권 말기부터, 즉,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 최대 호황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경기 불황을 겪고 있던 일본을 능가할 것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가 터지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나라는 점차 하락세를 맞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주력이었던 '수출'이 줄어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상품수지는 1980년대에 들어와 더욱 커졌고, 전두환 시절에 잠시 호전되었다가 다시 악화되었습니다.


위 도표를 보시면 상품수지(수출액-수입액)가 1980년에 -4,613.2(단위: 백만달러)로 악화되었다가 전두환 정권 시절 1980년대 중반에 다시 -20(단위: 백만달러)로 호전되었다가 그 이후에 급격하게 악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97년 IMF사태가 발생하기 1년 전인 1996년에는 -15,077.1(단위: 백만달러)로 매우 악화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 경상수지(수출액-수입액) 중에서도 최악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IMF사태로부터 3개월 전, 노동부에 신고된 전국 사업장 체불임금 금액은 6,480억원에 달해 수많은 직장인들과 근로자들이 임금도 못받는 상황에 직면해 어느정도 경제위기가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정부 측은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경제위기가 아니다", 혹은 "내년에 더욱 성장할 것"이라는 말만 나왔습니다.

참고로 IMF사태 터지기 몇 달전에 나온 기사입니다.


그런데, 실제 상황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1980년대 이후로 달러당 환율은 800~890원대였는데, 1997년 12월에는 1,900원대로 상승한 것입니다.


환율이 무려 1,000원 넘게 상승하였는데요.

수출이 매우 중요한 우리나라 상황 상으로는 좋은 것으로 보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적당히 상승할 때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달러당 원화가격이 500원에서 1,000원으로 상승할 경우, 달러로 표시된 우리나라 제품의 가격은 낮아질 수 있지만, 그 대신 우리나라로 수입되는 제품의 가격은 비싸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2008년 당시 무리한 환율상승으로 물가는 엄청나게 상승했습니다. 그래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한다는 것이 결코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직관적으로 봐도 심각한 것인데요.

현재(2017년 3월 26일자 기준) 1달러당 1,123원입니다.

이 것도 엄청 낮게 평가되었다고 나오는 상황에, 무려 1,900원대까지 하락되었다는 것은 엄청 심각한 것입니다!
어떤 때에는 무려 2,000원을 넘긴 적도 있다고 합니다. 일시적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서야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이미 늦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순식간에 많은 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간격으로 순식간에 수많은 기업들이 사라졌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뉴스만 보면 자꾸 "도산, 도산"이야기가 나온 것을 보고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업률로 더욱 구체화되었는데요.

1997년부터 1998년 사이에 실업률이 급증했습니다.


1997년 12월, IMF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의 국내 실업률은 3.1%였으나, 1998년 1월이 되자 실업률은 한 달만에 무려 1.4%나 폭등하고 무려 3,300여개의 기업이 도산하였습니다.

1999년 2월, 실업률은 8.7%까지 폭등하였습니다.

이 실업률은 점차 하락하였으나,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첫 번째, 김영삼 정부의 무지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환율제도는 "고정환율제"였습니다. "고정환율제"란 정부가 달러당 원화가격을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IMF사태 이후 변동환율제로 정책을 바꾸었습니다.


이 제도를 운용했던 이유는 우리나라의 수출을 증대하기 위해서 역시 수출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었고, 그 때문에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게 책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는 정반대로 환율을 하락시켰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1달러당 1,000원 했던 것을 500원으로 낮춘거죠.


이렇게 낮추려 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OECD는 다들 아시다시피 선진국들이 주로 참여하는 기구입니다.

따라서 국민소득을 10,000달러로 유지할 필요를 느꼈고, 김영삼 정부는 원화가치의 고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하여 수시로 다량의 외화를 시중에 방출하였습니다.

1997년에 들어와 외환보유고가 왕창 줄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1997년 10월 말에 외환보유고는 305억 달러였으나, 12월 말에 들어와서는 204억 달러로 무려 약 1백억 달러가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외국인투자는 일본이 가장 많이하고 있었는데, 외환위기의 징조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일본 은행들은 채권을 회수하여 달러로 바꿔가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이에 덩달아 다른 나라들도 채권회수에 열을 올려 달러부족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OECD에 가입하고자 하는 현 정부의 무리수로 외환보유고가 바닥을 친 것입니다.


사실 10월달에도 김영삼 정부의 선언에서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는데요.

김영삼 대통령은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매년 300억 달러를 유지한다고 자랑했으나, 실상은 정부 발표 외환보유액의 5배를 뛰어넘는 1,700억 달러라는 막대한 외채가 있었습니다.

이는 이미 IMF사태가 터지고 나서 밝혀진 것입니다.


김영삼 정권이 진작에 경제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면 이런 무리수를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몰랐고, OECD에 가입하여 국가 위신만 올리겠다시고 오판을 한 것입니다.


두 번째, 외환을 비상식적으로 운영한 것입니다.

보통 중앙은행은 갑작스러운 대외결제의 증가에 대비하여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은행은 보유외환을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지 않고 시중은행에 예치하였고, 시중은행 역시 이를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운용하지 않아 한국은행이 보유외환을 제대로 사용될 수 없었고, 신용공급이 중단되자 갑작스러운 외환부족에 대처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도 이렇게 말 했습니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는 한국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돈놀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부는 한국은행 및 시중은행들을 관리, 감독했어야 했는데,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기업들의 무식입니다.

이전 포스팅에서도 다루었다시피, 우리나라 대부분의 그룹들은 정부에 의해 성장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위기에 닥쳐도 정부가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대우그룹의 김우중 회장입니다. 무리하게 투자하다가 그룹 자체를 날려버렸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기업들은 엄청난 오판을 하고 있었는데요.

재무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입니다.


재무구조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자사의 부채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텐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정부만 믿고 엄청난 투자를 감행했습니다.

"어차피 정부가 구해줄 것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이것도 적당히 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조달받았는데, 이제 갈때까지 가버려서 단기외채에까지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단기외채란 차입기간이 1년 미만인 채무를 말하는데요.

금리가 싸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1년만에 돈을 갚을 때, 갚을 금액이 없으면 기업을 순식간에 위기에 빠뜨린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1997년까지 단기채무는 계속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위 도표를 보시면 1997년까지 단기 채무가 계속 증가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계속 투자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기업은 부채비율이 700%를 넘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기업인 삼성그룹, 현대그룹 등등도 모두 부채율 200%를 넘었다고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회사가 '대우그룹'입니다.

외환위기가 터지기 전에 대우그룹은 국내 서열 3위였으나, 재무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속해서 투자하다가 쫄딱 망했습니다.

당시 대우그룹은 분식회계도 엄청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사기를 친거죠.


이런 상황에서도 김우중 회장은 현대전자, 기아자동차 등을 인수했죠.

기업들이 망하자 주가는 대폭 하락했습니다. 대우그룹, 한보그룹 등은 망했고, 현대그룹도 오늘날의 현대자동차와 현대보험 등으로 분할되었구요.

물론 망했지만.

결론은 기업들이 무조건적으로 돈을 빌리다가, 정작 수익률은 줄어들어 돈을 갚지도 못한 것입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에 우리나라는 IMF의 구조조정을 받아들여 시행했는데요.

이게 정말 미친 짓이었습니다.


첫 번째, 고금리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시중 은행의 금리를 연 29.5%까지 올렸습니다.

1999년에 들어와 낮추었으나, 이미 많은 기업들이 도산한 상태였습니다.


보통 금리가 높으면 해외로부터 자본이 유입됩니다.

하지만 이 역효과가 엄청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사업하는데, 그 금리가 높아져버리면 기업들이 지는 부담이 엄청 커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앞에서 말한바와 같이 금리를 올린 후에 우리나라 기업들 3,000여군데가 도산했습니다.


이렇게까지 오판한 것은 이론에 기반했기 때문인데요.

이론상으로는 고금리정책은 "경기과열로 인한 물가상승 방어" 혹은 "경상수지가 급격히 악화된 국가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약"입니다.

어디까지나 이론상으로요.


하지만 경기가 악화되면 이런 방법을 쓰면 안됩니다.

오히려 정부가 돈을 풀어 기업들을 살려야 합니다.
기업 경영진을 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구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08 미국발 금융공황'인데요.

당시 미국은 엄청난 돈을 풀어 기업들을 살린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론대로 금리를 대폭 올려버렸고, 그 결과 수많은 자영업자들과 기업들이 모두 망해버렸습니다.

그나마 외환이 많이 유입되면 괜찮았겠지만, 고금리로 채권시장에 유입된 외환이 극히 적었습니다. 실패한거죠.

나라 경제가 붕괴된 판에, 어느 미친 투자자가 우리나라 채권을 구매할까요?
여러분, 일반적으로 투자자들은 경제가 안정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국가의 채권에 투자합니다. 미국을 보세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구조조정입니다.

한국중공업, 한국통신, 한국전력, 담배인삼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굵직한 공기업들을 민영화함과 동시에 당시 공공부문 전체 인력의 20%인 14만 1,000명을 감원하였습니다.

정리해고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소비가 줄어듭니다. 경제가 나빠지는 것은 물론이구요.


대기업들도 명예퇴직,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구요.

정부는 이것을 못하게 막았어야 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직원들을 대폭 해고하게 되면 그만큼 우리나라 소비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리고 소비가 줄어들면 우리나라 기업들의 수익률은 더욱 줄어듭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더욱 악화된다는 것입니다.


지난번에 제가 게재한 포스팅 [일본경제의 몰락과정-Game Over(https://brunch.co.kr/@zangt1227/37)

을 보면 일본도 똑같이 정리해고하다가 나라 경제 자체가 몰락했습니다.

최근 들어와 일본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당시 자신들의 실패를 되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이미 해고나 계약직 채용 확대했다가 경제가 망했기 때문에 지금와서야 이 정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자신들도 해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체험했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결국 우리나라 정부가 했어야 했던 것은 해고를 막고, 오히려 본인들이 빚을 내서라도 임금을 지급해 소비를 더욱 살렸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죠.

당시 유행하던 경제학에서는 "임금을 깎거나 직원을 줄여 기업들을 살려야 한다"고 가르쳤고, 은행임원 등 고위직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만 믿고 탁상공론을 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IMF 덕분에 성공적으로 구조조정 단행한 곳도 있습니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이전 포스팅에서 제가 제시했었던 "중복투자"를 줄였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역효과가 너무 컸습니다.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기업들의 양아치 짓, 임금하락, 출산률 저하 등등.... 오늘날 우리나라 문제들은 모두 IMF사태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때 더 훌륭한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위층들조차도 이 사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해외 대학교에서 공부했다는 대학교 교수들조차도 IMF사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 전혀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아버지가 허탈해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명문대 졸업생들조차도 그걸 몰랐다면, 도대체 대학교육은 왜 시켰던거냐? 왜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갔던거냐?


저 역시 허탈했습니다.


더 허탈했던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를 이 상황에 빠뜨린 경제학 이론들이 아직도 우리나라 대학교 교재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제가 학벌주의를 혐오하고, 그들에게 무조건 고위직을 주면 안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그러니까 1999년에 교과서에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국민들이 소비를 너무 많이해서 IMF사태가 퍼진 것이다."
개소리입니다.


여러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은 애당초 소비를 통해 운영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시민들의 소비가 많았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나라가 경제가 잘 운영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만약 소비가 급감했었다면 IMF사태는 2~3년 일찍 발생했을 것입니다.

정작 엉뚱하게도 정부와 기업들이 무리하게 빚내는 바람에 IMF사태가 터졌던 것이구요.


당시가 김대중 정부 때였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우리가 잘못한 것처럼 가르쳤죠.

정작 자기들이 잘못해놓고는 말이죠.


그리고 당시 책임이 있던 사람들은 모두 면죄부를 받았습니다.

동시에 현재까지 우리나라 경제를 주도하면서,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최근 외국언론에서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미래가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처벌할 사람은 명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다들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한 대선주자가 "대연정"을 들고 나왔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습니다.

여러분, 통합을 강조하다가는 오히려 조직 자체가 붕괴될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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