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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nus 창 Jun 18. 2017

NIKE, 브랜드 마케팅의 대가

스포츠용품계의 불멸의 원탑, 그 과정을 알아보자.

다들 집에 스포츠웨어(Sports Wear) 하나 쯤은 갖고 있을 것입니다.

다양한 브랜드 제품을 갖고 있으시겠지만, 그 중에는 아무래도 'NIKE'가 가장 많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스포츠웨어 시장에서의 NIKE 위치는 이 정도입니다.

글로벌 1위.


브랜드가치나 시장점유율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신발 시장에서는 무려 점유율이 62%로 사실상 독점이고, 브랜드 가치도 2위인 H&M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1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그야말로 의류업계에서는 탑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NIKE가 처음부터 이런 위치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초기에는 수많은 도산위기를 겪었고, 거래처가 일방적으로 거래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회사를 제대로 운영도 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위치로 올라왔습니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입니다. NIKE가 ADIDAS의 절반도 되지 않았었는데.


전 그것이 NIKE의 제품전략과 마케팅전략이 다른 스포츠웨어 업체보다도 훌륭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창립된지 4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유효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는 꼭 다루어보아야 하며, 오늘 주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NIKE의 성장과정, 제품전략, 그리고 마케팅전략입니다.



먼저 "NIKE의 성장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겠습니다.

이 내용은 기본적으로 NIKE의 창업자인 필 나이트(Phil Knight)의 자서전 [슈독(SHOE DOG)]에 기반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은 화려한 내용만 담기 마련이지만, 이 자서전은 진솔하게 쓰여서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전 2월 달에 이 책을 구입해서 읽었는데요. 솔직하게 적혀있어서 좋았습니다.


사실 창업당시 NIKE의 브랜드명은 "BLUE RIBBON"으로, 자체적으로 제품을 제작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일본 런닝화 브랜드인 "오니츠카 타이거(ASICS의 예전 브랜드명)" 제품을 수입해 미국 본토에 판매하는 일종의 '중매상사'였습니다.

NIKE의 전신인 BLUE RIBBON은 그냥 ASICS의 전신인 오니츠카 타이거 런닝화 판매대행사였습니다.


BLUE RIBBON이 창업된 과정을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 있는데요.

필 나이트 본인을 포함해 초창기 멤버들이 셀러리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SHOE DOG)"과 같이 단순히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이 아닌 '미치도록' 달리기를 좋아하는 이들이었다는 거죠.


왼쪽이 창업차인 Phil Knight, 오른쪽이 공동창업자인 Bill Bowerman입니다.


실제로 BLUE RIBON의 1호 사원인 제프 존슨(Jeff Johnson)은 육상선수로, 동시에 사회복지사였습니다.

그 이후에 들어온 이들도 필 나이트와 공동창업자인 빌 바우어만(Bill Bowerman) 육상부 코치가 추천한 육상부 선수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고상한 이상이나 비전은 없었습니다.
단순히 달리기를 '미치도록' 좋아할 뿐.
오니츠카 타이거 런닝화가 미치도록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어제 제가 런닝화를 추천했을 때에도 1위로 아식스(ASICS)를 추천했었는데요.

ASICS는 예전 오니츠카 타이거 시절에도 런닝화 부문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수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기 때문에 미국으로 진출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오니츠카 타이거 입장에서는 필 나이트가 고마웠을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뒤통수를 쳤지만.


이런 상황에서 필 나이트가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거래 계약을 요청해왔고, 본격적으로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점차 미국 런닝화 시장이 커지자, 드디어 필 나이트의 블루리본(BLUE RIBON)이 아닌 자신들이 직접 진출하려고 합니다.

초창기 오니츠카 타이거 런닝화입니다. 오늘날 마라톤화의 원형입니다.


처음에는 필 나이트에게 "오니츠카 타이거가 BLUE RIBON의 지분을 51%을 매입하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하자 직접 나선 것입니다.


당연히 필 나이트 입장에서는 제대로 뒷통수를 맞은 셈이었으나, 다행히도 필 나이트는 오니츠카 타이거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NIKE라는 신생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유명한 상호도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오니츠카 타이거와의 법정싸움이 벌어졌고, 정말 운이 좋게도 1972~1973년까지 근 2년간의 법정싸움에서 이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서(1973년)부터가 진짜 NIKE 역사의 시작입니다.


시작은 창대했으나 앞으로의 길은 누가봐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 나이트는 마케팅을 강조하고, 제품군을 확대하는 등 지속해서 사업을 확대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동시에 자금조달 문제를 겪었으나, 운이 좋아서 그런지 모두 극복해냈습니다.



이 과정만 보면 오늘날 NIKE가 결코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블로그나 서적에서는 4P분석기법으로 NIKE의 성장전략을 분석하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크게 '제품전략', '마케팅전략'이 유효했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히 알아보아야 합니다.


먼저 제품전략입니다.

NIKE의 성장에 영향을 준 것은 일단 제품 구성을 다변화하였기 때문입니다.


런닝화 개발 및 판매로 NIKE는 1974년도에 매출 800만 달러를 기록했습니다.

미국 본토의 런닝화 시장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었지만, 동시에 경쟁 역시 치열해졌다는 것을 뜻이기도 했습니다.

경쟁사 입장에서는 신생기업이 성장하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찍어누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니츠카 타이거나 아디다스는 유명 육상선수들을 광고모델로 기용하기 시작하는 등 NIKE와 비슷한 전략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NIKE 입장에서는 런닝화 시장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제품 다변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첫 번째, 신발(Shoes)
두 번째, 의류(Apparel)
세 번째, 운동 장비 및 엑세서리(Equipment and accessories)
NIKE는 시간이 얼마지나지 않아 스포츠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한 제품군을 확대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 제품군 중에서도 가장 많은 수익을 얻었던 분야는 단연 신발 분야였습니다.

그래서 NIKE는 이후에 지속해서 신발 포트폴리오를 강화해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예로 들어, NIKE는 런닝화, 테니스화를 포함한 다양한 운동을 위한 신발 제품들을 개발하였습니다.


별도로 NIKE+, Converse, Hurley 등 다양한 브랜드를 론칭하거나, 인수하여 제품군을 더욱 확대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제품군을 확대하되, 그 제품군들의 브랜드를 다변화하여 NIKE만의 가치나 위험을 안전하게 유지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브랜드를 다변화한 결과, 제품군을 확대하면서도 신선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제품전략을 통해 NIKE는 안정적으로 제품군을 다변화할 수 있었고, 더나아가 제품군별 브랜드를 달리하여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양치기를 하되, 그만큼 신선도는 유지한 것입니다.



위의 훌륭한 제품전략도 그만큼 훌륭한 마케팅이 없었으면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NIKE의 성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바로 마케팅이었습니다.


애당초 NIKE 창업자인 Phil Knight는 유별나게 마케팅을 강조했는데요.

NIKE is a marketing-oriented company, and the product is our most important marketing tool. -Phil Knight


이 말은 "NIKE는 마케팅에 기반한 회사이다. 그리고 상품이 바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마케팅 도구이다."라는 뜻으로, 그만큼 마케팅의 중요성을 굉장히 강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NIKE의 마케팅을 가장 잘 보여주는 포인트가 두 개 있습니다.

마이클 조던. M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일컬어지죠.
마이클 조던
요즘엔 힙합이나 패션용도로 많이 쓰입니다.
에어조던 시리즈


마이클 조던, 에어조던 시리즈 이 두가지 요소가 오늘날의 NIKE를 만든 마케팅 핵심요소입니다.


사실 스포츠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하여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것은 왠만한 스포츠용품 브랜드들은 다 하고 있던 것입니다.

당장 스포츠 마케팅의 효시가 바로 ADIDAS입니다.


ADIDAS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미국의 육상선수 Jesi Owens에게 자사의 육상화를 신겨 우승하게 하여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ADIDAS가 스포츠마케팅의 원조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추월당했죠.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후 ADIDAS의 창업자 Adi Dasler의 아들 Horst Dasler가 멜버른 올림픽에서 참가 선수들에게 ADIDAS 신발을 무료로 배포하여 인지도를 확 끌어올림은 물론 스포츠용품 브랜드계 1인자가 되었습니다.


NIKE 역시 ADIDAS와 같은 마케팅 전략을 펼쳤는데요.

당시 유명한 육상선수였던 Pripon Tain, 테니스선수인 Jimi Coners에게 NIKE 신발을 신겨 홍보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ADIDAS가 전세계 No.1의 스포츠용품 브랜드였기 때문에 NIKE는 매출은 늘어났으나, 아직 ADIDAS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때 바로 마이클 조던을 광고모델로 영입합니다.


마이클 조던은 농구를 모르는 사람들도 다 아는 선수로, 자타공인 NBA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다가 미국의 여론 조사 기관인 Harris Poll의 자료에 따르면 "가장 좋아하는 운동선수" 항목에서 마이클 조던은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단 한번도 빼놓지 않고 1위를 차지했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지금도 2~4위를 차지하는 인기많은 운동선수입니다.


지금도 1위까지는 아니더라도 2~4위 안에 들 정도로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많은 운동선수입니다.

그런 선수를 광고모델로 영입한 것은 NIKE로서는 완전 잭팟이 터진거죠.


여기서 NIKE는 다시 한번 신의한수를 씁니다.

에어조던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론칭한 것입니다.
저도 몇개 갖고 있습니다ㅎ


이게 왜 중요하냐면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스마트폰이라던가, 인터넷이 발전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존경하는 배우나 운동선수가 착용하는 의류를 믿고 구매하는 경우가 강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에어조던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니, 당연히 당시 청소년층은 에어조던 제품을 착용하면 자신도 마이클 조던과 같을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독자 브랜드 론칭 전략은 NIKE가 드디어 글로벌 기업이 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후에 NIKE는 ADIDAS가 창안한 마케팅에서 한 발 더 앞서나갔습니다.

TV광고였습니다.


사실 ADIDAS가 유명인사들을 기용하는 마케팅을 고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TV광고에는 활용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NIKE는 자사의 광고에 Tiger Woods 등 유명 선수들을 섭외하였는데요.

이는 TV보급률이 상승하면서 NIKE의 인지도가 미친듯이 오르는데 일조하였습니다.

유명인사들에게 자사의 제품 TV 광고에 등장시킨 것은 NIKE가 최초였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드디어 NIKE는 세계 1위의 스포츠용품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NIKE가 제작한 TV광고 방식을 보아야 합니다.

신기한 점은 광고를 보면 정작 NIKE 제품을 광고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그냥 선수들이 운동하는 등의 장면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NIKE의 광고방식이 돋보입니다.
보면서 "와 잘 만들었다", "NIKE 제품 사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NIKE의 광고방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Just Do It: 너를 외쳐봐]인데요.

이 광고를 보면 초반에는 열심히 하지만 잘 안되다가 계속 열심히해서 성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NIKE 제품 얘기는 거의 안나옵니다.


마지막에 "Just Do It"이라는 단어와 NIKE 마크가 나오고 끝납니다.

제가 뭘 강조하고 싶은 걸까요?
바로 '스토리텔링'입니다.


NIKE 광고의 공통주제는 "함께하자", "너를 외쳐봐"입니다.

그리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스토리텔링으로 소비자들이 NIKE 제품을 구매하게끔 끌어들입니다.

최근에 나온 광고입니다. 이 광고 역시 "스토리텔링", 그리고 "함께 하자"는 것을 강조합니다.
참고로 이 방식은 이미 Apple, Tesla에서도 효과를 본 방식입니다.
제가 이미 이 방식을 해당 포스팅에서 다뤘었죠?


웃긴 건 우리나라에서도 NIKE가 유명해지게 된 것도 이 '스토리텔링'입니다.

바로 '슬램덩크'입니다.
남자라면 봤을 그 만화, "슬램덩크"입니다.


'슬램덩크'는 1990년대에 가장 유명한 스포츠 만화죠.

당시 장면을 보면 주인공인 강백호, 서태웅이 모두 에어조던 농구화를 착용하고 나오는데요.

슬램덩크가 인기를 끌면서 자연히 NIKE의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이 신발이 정확하게 묘사되면서 숫한 명언이 나오고, 멋있는 장면이 나오면서 폭발적으로 수요가 높아졌습니다.

전 이 장면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리고 에어조던을 알게 되었습니다.


슬램덩크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슬램덩크의 엄청 우수한 스토리텔링이 의도치않게 '에어조던'을 독자들에게 각인되게 하였고, 자연스럽게 NIKE가 아시아권에서도 유명해진 것입니다.

사실 저도 어린 시절에는 프로스펙스라는 브랜드를 애용했었는데, 슬램덩크를 보고 NIKE를 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다들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늘 포스팅에서는 NIKE의 간단한 역사와 제품전략, 마케팅전략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내용들 중에서도 마케팅전략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앞서 설명했다시피 오늘날의 NIKE를 만든건 광고를 포함한 마케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NIKE 마케팅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포츠 스타들을 앞세운 강력한 홍보효과, 우수한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한 광고를 통한 강력한 소비자 흡입성입니다.

앞으로도 스토리텔링은 마케팅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광고들을 보면 스토리텔링이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좀 재밌게좀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최근 기사를 보니 NIKE가 매장 직원 1,200명 가량을 감원한다고 합니다. 이는 리테일 매장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주에는 여기에 대해 다루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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