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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Apr 11. 2016

우리의 결혼, 우리의 웨딩영상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너와 나의 타임캡슐

내 인생의 어떤 한 시간을 뚝! 떼어서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왕이면 가장 행복한 때로. 그렇다면 살면서 지치고 힘들 때 효능 좋은 치료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직업 때문에 웨딩촬영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어리둥절해하기도 하고 쑥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커플이 설레어한다.

하지만 설렘에 비해 그 시간들은 쫓기듯이 급하게 흘러가 버린다.

세트장을 비워줘야 하고 시간에 맞춰야 하고 예쁘게 싸온 도시락도 먹지 못 하고

후루룩 그 순간이 지나가 버리고. 피곤함만 남아 버린다.


그 날 두 사람의 웃음소리 , 그 날 두 사람의 음성과 대화를 뚝 떼어 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다.  웨딩촬영을 그렇게 하면 안 될까? 원치 않는 사람은 안 하면 그만이지만

분명히 그날의 시간을 타임캡슐처럼 영상으로 남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아무나 쉽게 할 수 있으려면 가격은 합리적이어야 하고 음성과 웃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야 한다.

그리고 이왕이면 두 사람의 추억의 장소에서 두 사람의 얘기를 나누는 영상이라면 좋겠다.

결혼 전 이벤트인데 드레스 입은 클래식한 사진이 없으면 서운하다.

영화나 화보 콘셉트로 오글거리는 포즈는 아니더라도 활짝 웃고 손잡은 사진, 마주 보는 사진,

함께 걷는 사진을 찍는 것도 함께 해서 영상과 사진이 결과물로 함께 남는다면? 흥분되기 시작했다.

일단 이름을 지었다. “웨딩 필름”이라고 내 마음대로 말이다.      



웨딩 필름은 아마도 오래 연애한 커플. 그래서 두 사람의 추억과 이야기가 많은 커플이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복잡한 스튜디오에서 쫓기듯이 아니고 신랑, 신부의 의견이 반영되면서 진행이 된다면 더 좋겠지···.

그렇게 기획을 했다. 그리고 딱 맞는 커플을 만나게 되었다.

다행히 두 사람도 좋아해서 그렇게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흥분된 마음으로!


두 사람이 처음 데이트한 대학로의 까페. 사장님이 흔쾌히 촬영에 요청해주셔서 커플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비 신랑과 예비 신부는 7년간 연애한 사이였다.

대학교 때 만났고 남자가 입대하고 제대하는 동안도 둘은 계속 함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아기자기하게 연애한 보석 같은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갖고 있었다.

7년을 연애하는 동안 1년에 한 번씩 사진 촬영을 했다.

연애에도 정성을 다하는 커플이 있고 아닌 커플이 있는데

이 커플은 정말 서로에게 정성을 다하는 커플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서로 풀어낼 이야기가 많겠지.


예비신부는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세상의 부조리함을 깨닫고 우울했던 시절,

그 우울함을 귀엽게 봐줄 수 있는 넉넉한 배포의 지금의 예비신랑을 만나서 많이 웃고 사귀게 되었다.

외모도 두 사람은 딱 어울리는 한 쌍이다. 예비신랑은 듬직한 덩치에 동글한 선한 인상의 푸근한 스타일이고 예비신부는 마르고 가는 몸에 창백하리만치 하얀 피부를 가진 수선화 같은 스타일.


그렇게 성격도 다른 듯 비슷한 두 사람은 첫 키스의 기억도

첫 다툼도 고백의 순간도 하나하나의 사건을 기억하고 있었다.

많은 일들을 그렇게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계속 기념해왔고 기록해왔기 때문이리라.

촬영 때 보여주면서 설명해주려고 가져온 두 사람 연애의 산물은 몇 박스가 되었다.

일기(상대에게 보여주려 쓰는?), 연애편지, 두 사람 사진으로 만든 달력,

첫 눈 올 때 하려던 첫 키스의 순간을 당기게 만들어 준 인공눈 스프레이,

믿기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이 기록되어있었고 보관되어 있었고···.

지금까지도 반짝반짝 숨을 쉬고 있었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단다. 영하의 날씨, 귀가 떨어져 나갈 듯 추운 날이었는데

예비신부가 의미 있게 생각해서 아끼는 가죽장갑을 잃어버렸다.

낙담한 신부의 얘기를 들은 예비신랑이 그 겨울, 그 심야에 그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다시 그대로 훑어가며 샅샅이 뒤져 장갑을 찾아낸 것이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말도 안 돼”라고 줄곧 생각했다. 그래, 찾으러 나설 수는 있다 치자···.

어떻게 진짜로 그 장갑을 찾을 수가 있을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으면 영화니까 그렇지··· 하고 비웃었을 일이다. 사실, 아직 어느 정도 의심이 가시진 않았다.

몰래 장갑을 숨겼다가 찾아왔다고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질투 때문은 아니다..ㅎ)


한 겨울 길에서 잃어버린, 무척 아끼는 장갑을 추운 겨울밤 찾아 헤매 들고 온 남자친구라니.

아마 장갑이 손에 끼워지는 순간 두 사람은 평생 갈 수밖에 없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의 따뜻하고 아기자기한 사랑 얘기를 들으면서 촬영 콘셉트를 고민했다.

그야말로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두 사람의 추억의 장소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듯이 얘기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촬영할 감독님들과도 의견이 분분했다. 더 웨딩 느낌 이어야 하느냐 더 영화적이어야 하느냐··· 콘셉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하나뿐인 필름이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정한 콘셉트는

1. 진정성

2.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

3. 행복한 신랑, 신부

였다. 그렇게 사랑스러운 두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진정으로 끄집어내고 이끌어 내기.

그리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촬영하며  신경 쓰이는 관객은 아마도 몇 년 뒤 두 사람의 자녀들이랄까?

그리고 너무 진지하지만은 않게 두 사람이 최대한 행복을 느끼며 서로가 신랑이고, 신부인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예쁜 드레스와 멋진 턱시도를 입고 그 날을 만끽할 수 있게 말이다.   


기획을 하면서 외국의 숱한 웨딩영상을 찾아봤고 진정성을 살리기 위해

우디 알렌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고 새벽까지 의논하고 사전 답사를 하고 치열하게 보냈다.

마치 대학 시절 기말 작품을 만드느라 고군분투할 때 같은 기분으로.



촬영하는 동안 그들은 행복했었다고 한다. 콘셉트 3번 성공.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만나고 끌리고 사랑에 빠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 사랑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이고 귀찮은 것을 무릅쓰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 시절에 우리의 모습과 소리를 담아 두는 일은

담아두지 못 하고 흘려버리는 시간까지도 더욱 의미 있게 만들 것이다.

이 영상을 보는 먼 훗날. 그 무렵은 그랬었지 라고 생각하면서 함께 떠올려지는 추억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두 사람의 영상이 보고 싶다면, http://blog.naver.com/sfun7780/60202376949


두 사람이 대학생커플이던 때 자주 걷던 거리.


촬영에 소품으로 준비해 온 7년의 기록을 보며 즐거워하는 두 사람.
항상 결혼 사진은 정석이 바로 이거다.


문의가 많아 영상제작 업체를 남깁니다.


러브씬필름

http://www.lovescenefil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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