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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Apr 17. 2016

허니문과 결혼식을 하나로

우여곡절끝에, 칸쿤 비치웨딩

어릴 적부터 영화에서나 볼 것 같은 특별한 나만의 결혼식을 꿈꿔왔다. 

한 시간 만에 뚝딱 바쁘게 시간에 쫓겨서 하는 예식장 결혼식, 

또 촌스럽고 요란한 예식장 조명, 딱 싫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참 착한 사람이다. 우린 죽이 참 잘 맞는다.··· 맞는 건지 맞춰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정동진에 함께 놀러갔을 때부터 일까? 우린 서로에게 더 빠져버렸다. 

그날 이후로 헤어지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평일에는 다음날 출근해야하니까 라는 이유라도 있지만 

주말엔 담 날 출근도 안하는데 헤어지는 게 너무 힘이 드는 거다.     

헤어지기 싫어. 항상 같이 있고 싶어···.

  

사귄지 4개월도 되지 않아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약혼자가 되었다! 

오빠에게 나는 예식장 결혼식이 싫다고 우리만의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결혼식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우스웨딩을 하자고. 오빠가 별로라고 하면 접을 생각으로 얘기했는데 왠걸? 

그는 나보다 더 적극적이었다. 아싸아!


우리는 하우스웨딩에 대해서 여러 정보들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행이나 쇼핑을 알아볼 때랑은 비교도 안 되게 신났다. 

구하면 열린다고 했나? 때마침 신문에서는 작은 결혼식 기획기사가 매일 실리다시피 했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기사를 스크랩하면서 아~~ 이렇게도 하는구나. 이런 것도 괜찮겠다··· 

하면서 꿈을 키웠다. 지금 돌이켜보면 소풍보다 소풍 전 날이 즐겁듯 그랬던 것 같다. 

서로 같은 꿈을 꾸고 있던 그때가.   


  


친구들은 결혼할 때 신랑이 너무 비협조적이어서 많이 다투기도 한다던데···. 다툴 틈도 없이 매일 매일 

우리의 결혼식을 꿈꾸며 설레어 했던 그 날들은 소박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또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았다. 

지금까지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나였지만 지금까지 합창단원의 일원으로 합창만 하다가 

단독으로 독주회를 열게 된 것 같다고 할까?


촛불이 가득 켜있고 싱싱한 생화들이 잔뜩 장식되어있는 곳 에서 예쁜 결혼식을 하고 

신랑과 신부가 first dance를 추고 나면 모두가 함께 춤을 추는 그런 결혼식. 

아주 가까운 친구들만 청해서 복잡하지 않게,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런 결혼식. 

화려하지 않아도 그런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하우스웨딩을 엄청 검색했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소박한 결혼식을 생각하며...

그런데 또 현실은 그렇지가 못했다. 우리는 비싸고 화려하게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데 

금액이 너무 비쌌다. 이런 저런 제약도 많았다. 하우스웨딩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예식장들이 

집에서 하는 소박한 결혼식같다고 생각한 것은 나의 큰 오산이었다.


그러다가 우리가 찾게 된게 “해외웨딩”이었다. 

해외에서 양가 부모님과 가장 친한 친구들만 모여서 15명 안쪽으로 하게 되면 

금액도 저렴했고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물론, 허락하지 않으시면 고집피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또 부모님께서도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양가가 모두 자식 결혼식이 처음이기도 했고 

서울사람이 지방에 내려가서 결혼하거나 지방 사람이 서울에 올라와서 결혼할 때 피로연 따로 하듯이 

피로연은 각자 집 근처에서 하고 결혼식 겸 함께 여행가면 좋겠다고 하시며 찬성하신 것. 


양가 부모님 모두 그동안 다녀오신 결혼식이 너무 재미없다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대부분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해외 결혼식은 보통 하기 힘들다고 주위에서 많은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의 생각이 딱 맞는 집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았다. 

가족과 절친이 함께 하는 괌에서의 비치웨딩···. 생각만 해도 설레는 그 결혼식으로 결정을 하고 나자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다.


결혼식에 참여하게 될 친구들은 그야말로 절친들이었다. 

원래 무리 중 한 명이 결혼식을 올리면 얼마간 걷어서 돈을 주곤 했다. 

나는 그 돈을 안 받기로 하고 그 돈으로 각자 항공권을 준비해서 오고 호텔은 우리가 제공하기로 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바닷가에서 우리들만의 결혼식을 할 생각뿐이었다. 매일 매일이.


사실, 피로연은 좀 힘들긴 했다. 

결혼식을 하는 경우엔 예식 끝나자마자 신랑 신부는 허니문 때문에 미스코리아 미소를 짓고 

피로연장 한 바퀴 돌고는 바로 퇴장인데 우리는 미리 하는 피로연이라 어른들 한 분 한 분, 

한 테이블 한 테이블 덕담을 듣고 왜 결혼식을 서울에서 안하느냐 질문에 한 분 한 분에게 대답하고 

피로연 하는 내내 손님접대를 제대로 했다. 양가 피로연으로 이틀을 완전히 다 쓰고는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우리의 꿈꾸는 결혼식이 있으니까. 그까짓 고단함 쯤은 오히려 짜릿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사랑하는 사람과 신혼을 즐기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여자의 일생, 아니 남녀를 떠나 보통사람의 일생에서 처음 제일 큰 행사가 결혼식이지 않나. 

그런데 그 결혼식을 할 때 원하는 것을 꿈만 꾸는 게 아니라 꿈꿔온 것을 이루게 된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행복할 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일이다. 그렇게 몇 개월을 구름위에서 보냈다.



그래서 괌에서의 결혼식은 어떻게 되었냐고? 그게 현실이 되지는 못 했다.

결혼식전에 부모님께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버렸다. 아예 비행기를 탈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몇 번의 피로연도 했고 결혼식을 따로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서

왠지 벌써 결혼식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버렸다. 부모님들께서 특히.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못 가신다고 하니 시댁에서도 그럼 너희끼리 다녀오라고 하셨고

어른들은 아무도 못 가시는데 친구들만 함께 가기도 뭔가 애매한 상황이 된 것 이다.


고민 끝에 우리는 목적지를 바꿨다. 칸쿤으로 허니문을 가고 거기서 우리 둘만의 비치웨딩을 하기로 했다.

칸쿤은 호텔에서 5박 이상을 하면 비치 웨딩을 이벤트로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사진이나 주례 등을 좀 더 세심하게 준비해서 한 것. 


사실, 처음엔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했던 가족과 지인이 함께 하는 결혼식을 못 하게 되어서 

아쉬움이 너무 크고 어차피 이렇게 될 것이었다면 그냥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릴 걸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하다. 그래서 이제 해외 웨딩을 한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얼마나 꼼꼼하게 준비해야하는지 

날짜 앞두고 건강 관리까지 신경써야한다고 조언을 하고 있다. 


결국 우리 둘이서만 한 결혼식이 아쉽긴 해도 칸쿤에서 결혼식하고 

웨딩촬영하고 레스토랑 디너까지 즐겼던 그날. 

우리는 너무 행복했으므로 좋은 기억만 남기기로 했다. 


특별한 결혼, 나만의 웨딩, 의미 있는 작은 결혼식···. 결론적으로 예기치 못한 문제로 

너무 심하게 작은 결혼식이 되어버리긴 했고 처음 계획과 다르니 실패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대충 넘어가지 않고 한 분 한 분 제대로 인사드린 피로연이나 우리 둘의 칸쿤 비치 웨딩, 

우왕좌왕 실수투성이라도 좋은 추억이 많이 남았다. 

실수가 두려워서 똑같이, 번거로운 게 싫어서 남들과 똑같이 했다면 

새롭고 색다른 우리 만의 추억을 만들 수 없겠지.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결혼준비를 시작하는 많은 예비신랑, 신부들도 

조금 더 번거롭더라도 조금 더 공을 들이고 준비를 해야 하더라도 하고 싶었던 것 

꿈꿔왔던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혼식은 평생 한 번뿐이고. 남자친구가 남편으로 바뀌는 과정의 마지막 관문이지 않나? 

둘 만의 추억이 둘에게 어떤 전우애를 남겨 준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다.

그렇게 같은 생각을 하면서 설레던 기억을 간직하고 앞으로 살면서도 함께 저지르면서 살 것 이다. 

용감한 전우부부로 말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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