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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Mar 25. 2016

내가 꿈꾸던 웨딩촬영은 이런 게 아니었다.

샘플과 똑같이 찍는 웨딩촬영이 싫다고요.

내가 꿈꾸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나의 남자친구와 내가 예쁘고 멋진 신랑 각시로 꾸미고 웃고 즐거워하며 춤추고 

그러면서 사진도 찍고 예쁜 도시락도 펼쳐놓고 먹으면서 또 그런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는 것. 

수줍은 나의 웨딩드레스에도 내가 하고 싶은 로망은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내가 꿈꾸던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절망적이야···.     

“신부님, 이쪽으로 오셔서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갸우뚱하시고 시선은 조명기 스위치에 두시고 살짝 미소 지어주세요”     

“네”라고 하면서 어설프게 따라 하지만 뭔가, 이게 뭔가···. 

사이보그가 된 것 같기도 하고···.그냥 배시시 웃으면서 신랑이랑 눈 좀 마주치고 얘기하고 그러면 안 되는 거야? 재미없고, 쉬고 싶다···. 아···.


“신부님 자, 다음 세트장으로 이동하실게요. 지금 진행이 좀 늦어지고 있어서 다음 분들도 다 밀리게 생겼네요. 자 어서 이동하시죠!”     

“아, 네, 죄송해요···.”라고 말은 했다. 

그리고 영혼 없이 하라는 대로 다음 신부들이 제대로 찍힌 앨범이 시간 맞춰 나갈 수 있도록 

고개를 각도를 맞춰 돌리고 눈동자를 굴리고 손을 정해진 위치에 두고 골반을 꺾었다. 

에스 라인이 만들어졌단다. 나의 행복한 결혼사진에 에스 라인이 만들어졌으니 좋아해야 하는 건가?

네 시간여의 웨딩촬영이 끝났다. 드디어···.


나는 간신히 낙오되지 않고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찜찜하고 께름칙한 기분으로 

신부 포즈 사이보그 노릇하느라 퍼져버린 몸뚱이로 집에 와서 대충 씻고 잠을 청했다. 

그런데.. 이건 진짜 아니다. 하지만 사진만 예쁘게 나온다면 뭐, 그렇다면···.      


2주 후.

사진을 고르러 오라고 해서 갔다. 역시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이보그처럼 찍었으니 사이보그처럼 나왔겠지. 사진 속에 있는 나를 꼭 닮은 저 사이보그는 

영혼이 아예 없는 것 같다. 요샌 좀비도 연애하고 사이보그도 연민을 갖는 시대인데, 

저 사진 속에 신부 포즈 사이보그는 영혼이 없다. 

사진을 골라야 된다는 데 점심시간에 밥도 안 먹고 봤지만 못 고르겠다. 

행복해하는 사진이 하나도 없다. 정말 나 같은 사진도 없고 내 남자친구 같은 사진도 없다. 

저 들은 누구지?


동료가 나의 컴퓨터 모니터에 띄어진 사진을 보고 한 마디 한다.

“어머, 웨딩사진? 딱 신랑, 신부네 하하”          

말하자면 이건 우리가 아니다. 내가 아니다. 내 남자친구가 아니다. 

우린 어떤 사람이냐면 우린 표정이 있는 사람이다. 

난 포토샵으로 티 나게 만들어준 S라인보다 결혼을 앞두고 설레는 눈빛, 

행복한 웃음이 있는 결혼사진을 갖고 싶다.

우린 충분히 그런 사진을 만들 수 있는 커플이니까!   


  

우린, 전쟁 중에 만났다. 적군이기도 하고 아군이기도 했다.

체육과였고 타고난 운동신경과 승부욕을 가진 나는 서바이벌 게임의 여전사였다. 

그때 그렇게 처음 만났을 때의 그는 직업 군인이었다. 그렇게 그와 전쟁을 하면서 게임을 하고 나서 

뒤풀이를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고 우리가 많은 부분 닮아있고 닮지 않고 다른 부분을 

응원할 수 있는 커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린 그런 커플이다.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갖고 있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뜨거워서 데일 정도의 커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내 결혼, 내 결혼사진이다.     

그렇게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 몇 날을 밤을 새워 고민했다. 


그러다 잡지에서 셀프 웨딩으로 촬영한 커플의 이야기가 나왔다!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거다, 싶었다!! 

나는 자연스러운 사진을 갖고 싶었고 남자친구 앞에서 잘 웃었으며 

게다가 나에겐 무려 “사.진.을.굉.장.히.잘.찍.는” 친동생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 웨딩사진을 찍는다고 시간과 돈을 낭비했을까?

아니다. 내가 언제 사이보그 코스프레를 해보겠는가? 

어쨌든 그건 이미 지난일 . 그럼 뭣부터 시작해야 하지? 심장이 뛴다. 쿵쾅쿵쾅 방망이질 친다.

아··· 나는 결혼을 앞둔 마음이 너무 설레는 신부다.    

 

우선, 동생에게 촬영협조를 구(강요)하고 신랑에게도 셀프 웨딩 촬영을 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의 지지자, 응원군 우리 남친께서는 역시 나의 편!

설렘 속에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출퇴근하면서 봐 두었던 올림픽공원의 예쁜 나무가 있는 잔디밭.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그곳이었다. 그다음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하지.. 

컴퓨터 속에 들어갈 듯이 웹서핑을 하면서 눈이 충혈되고 또 피곤했지만 즐겁고 떨리는 순간이었다. 


미니드레스를 구입했다. 셀프 웨딩을 준비하다 보니 찍고 싶은 장소가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끼리 찍는 웨딩촬영이라면 시간은 우리끼리 맞추면 그 뿐! 

그때그때 대여하는 것보다 저렴하게 미니드레스를 구입하면 좋겠다 싶어 구입하기로 결정! 

타프타 실크 소재에 깔끔한 미니드레스로 장만하였다. 

올림픽공원에서 찍을 때는 무엇보다 밝고 발랄하고 행복한 커플에 모습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에 

뿔테 안경, 커다란 헤드폰 등을 준비했다. 촬영하는 동안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정도였다. 

어색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마음이 더 컸고 사이보그에서 파와 마늘만 먹고 백일을 버텨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듯한 내 결혼사진을 보니 뭔가 울컥, 또 뭉클하게 올라왔다.

     

그다음 한강에서의 촬영.

남들과 같은 것은 싫다. 뭔가 더 특별하고 독특한 연출을 하고 싶었다. 

미니드레스는 발랄한 분위기 이외에는 내기가 힘드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렇다고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셀프 웨딩 때문에 구입하는 것도 좀 무리가 있었다. 그렇게 웹서핑을 하던 중

구하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90년대 초반에나 입었을 법한 빈티지 드레스를 누군가 인터넷에서 팔고 있었다! 어떻게 그런 정보가 내 눈 앞에 딱! 나타날 수가 있을까?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저렴한 금액에 그 드레스를 구입하고 

노을 지는 한강에 가서 영화 같은 연출의 사진을 찍었다. 

드레스가 빈티지여서 그런지 미니드레스를 입고 발랄할 때와는 또 느낌이 아주 달랐다.


이 정도 되면 찍어주는 동생이나 응원하고 협조하는 남친님도 지쳐갈 만한데 아직은 끝이 아니다. 

나는 한복이 잘 어울려서 한복 촬영을 꼭 하고 싶었다. 그것도 궁중한복! 고궁에 가서 궁중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 생각만 해도 스케일이 크지만 어렵지 않게 준비를 시작했다. 왜? 하고 싶으니까 하하

대학교 때 상금에 눈이 어두워 나갔던 지역 씨름대회에서의 입상을 계기로 나는 씨름 아나운서 생활을 했었다. 그러면서 많은 한복을 입었고 한복이 잘 어울린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결혼식 때 한복을 맞춰도 우리 집안은 거의 한복을 입을 일이 없었기 때문에 

돈을 들여서 맞추고 싶지는 않았다. 씨름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한복에 관한 정보가 많이 있다. 

그중에 연극 등 공연에 필요한 한복을 빌려주는 기관을 알고 있다. 대여비는 또 말도 못 하게 저렴하다. 

저렴한 만큼 옷 상태가 좋지는 않지만 사진엔 상태가 많이 보이는 게 아니니 저렴하게 궁중한복을 빌려서 사람 많은 경복궁 말고 경희궁에서 한복 사진까지 찍었다.


그 이후에도 구입해두었던 미니드레스를 갖고 허니문 여행지였던 하와이에서 

자연스러운 사진들을 많이 찍고 남겼다. 

하와이에서 촬영할 때 주변 관광객들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고 좋아해주는 모습,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받는 느낌이었다. 



어느덧 첫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나니, 내가 언제 신부였나? 결혼식을 어떻게 했나 가물가물하다. 그러다가도 예쁘고 특별한 신부가 되겠다고, 신랑과의 진솔하고 자연스러운 추억을 남겨보고자 애쓰던 셀프 웨딩촬영 때 사진을 보면 뭉클하고 찡하다. 시간에 쫓겨 공간에 쫓겨 남들과 너무 똑같은 웨딩촬영을 네 시간 찍고 마는 사람들도 내가 느낀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을까? 남이라곤 없는 상태에서 온전히 우리 스스로가 되어서 활짝 웃던 그 시절의 나와 신랑은 사이보그 사진에 찍힌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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