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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Mar 25. 2016

무대에 올리는 나의결혼,나의 연극

배우와 작가. 두 사람이 마음으로 만들어 나누는 극.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미 갈등을 안고 태어난다. 가족이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 

가족이란 갈등이며 동시에 위안이다. 

어릴 때 한 번쯤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며 "왜 저렇게 살지?" 혹은 "난 저렇게 살지 않을 거야!" 

생각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 했던 부모님의 결정들이 있다.  

자라면서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오고 그렇게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고 

세상을 알게 되고 인생을 배우게 된다.


연극배우 P 씨는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면서 연극배우로 삶을 결정했고 군대를 다녀와서 바로 결혼을 했다. 

배우를 선택함에 있어 거침이 없던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자 뜨겁게 연애했고 결혼했다. 

거칠게 없었다. 지하방에서 시작했던 신혼시절 가난했지만 5년 동안 행복했다고 한다. 

그런데 시간이흘러 30대가 되었을 즈음 순수하지 않은 세상에서 순수하게 살아가면서 지독하게 외로워졌다고 한다. 그건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마찬가지였다. 위안을 받지 못 하고 쓸쓸함을 주고 받는 시간이었다.


 대학 입학시험을 보고 나서야 드디어, 자신의 자랑거리였던 수학을 더 이상 쓸 곳이 없음을 깨닫고 배우가 된 P씨였다. 언제나 계산없이 좋은 것을 뽑아 고르는 선택을 하던 그가 인생에서 처음으로 버리는 선택을 하는 것 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그는 이혼을 선택하게 되었다.


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 중인 K 씨는 막연하지만 당연하게 자신의 어른 시절이 화려할 것이고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우리도 누구나 어느 정도 그렇지 않나? 10대 시절에 우리가 30살쯤 되면 화려한 자동차를 타고명성과 지위를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경제적으로나 명예적으로나 

별 볼일 없고 또 외롭기까지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똑같이 K 씨도 그랬다. 그리고 부모님 그늘을 떠나게되면 남편의 그늘에서 있고 싶다는

지고지순한 마음으로 자신을 너무 아끼는 남자와 일찌감치 결혼을 했다.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동그란 눈망울, 시원한 미소의 K 씨도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결혼생활이 힘들어졌을 때 매일 매일을 

눈물로 세우면서도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그저 가슴 아파하는 나날을 보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으로 결혼했어도 그 사랑도 생활에 찌들어 차갑게 식을 수 있고 

조건만 보고 계산해서 한 결혼도 완벽한 조건을 뛰어넘는 문제들 때문에 싸늘해질 수 있다. 

결혼은 생활이다. 매일 마주 앉아 밥을 먹어야 하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마주쳐야 하고 

함께 살면서 숨소리도 듣고 웃음소리도 듣고 어쩔 수 없이 의논도 해야 하고 얼굴을 봐야 한다. 매일매일.


그런 결혼 생활이 힘들어지고 관계가 깨어졌을 때의 고독과 고통은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가 없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았고 아무도 실수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다. 참고 살라고 배우지 않은 우리들이 순수하게 좋은 마음으로 선택했던 것 들이 틀린적이 얼마나 많은가? 결혼도 살아보고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단순히 동거와 결혼 생활은 다르다.) 결혼에 대한 실패는 사고다. 그들은 교통사고, 산사태나 가뭄, 홍수처럼 사고를 당하는 것이다. 물론 외도를 하거나 도박으로 재산을 날리거나 하는 일들을 예외로 두고.


다시 배우 P 씨와 작가 K 씨 얘기로 돌아가 보자. 

둘은 어느 공연에서 만난다. K 씨는 예쁘장한 외모 때문에 극작과에 다니던 학교 시절부터 배우로 종종 활약해왔다. 그렇게 함께 공연을 하면서 상처를 품은 순수함이 닮은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고 사랑하게 된다. 

P 씨는 항상 틈만 나면 구석에서 울고 있는 예쁘고 슬픈 K 씨가 남 같지 않았고 지켜주고 싶었다고 한다. 

힘들지 않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졌다.


이혼을 할 때 K 씨는 본인이 이혼을 한다는 사실 자체를 감당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지. 나는 대기업에는 못 다니겠지, 아니 난 재벌은 못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긴 쉬워도 

난 아마 이혼을 하게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렇게 좌절해서 이혼을 했기 때문에 P 씨와 재혼을 할 때 오히려 커다란 희망을 갖게 되었고 

굳은 의지가 절실해졌다고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이라는 의지 말이다. 

분명히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이혼만 한 좌절도 없지만 어리둥절 하는 초혼보다 

더 숭고하리만치 진지하고 진중한 게 바로 재혼 이리라. 


 두 사람은 열두 시와 여섯 시 같은 성격이라고 했다. 

너무 달라서 오히려 서로를 받아들이기 쉬웠던 것 같았다고, 아예 모르니까 말이다. 

도통 이해가 안 가니까 왜 그러는지 풀이하기 보다는 그냥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렇게 둘은 결혼하기로 했다.     

두 번째 결혼이니 축의금을 받지 않기로 했다. 소박한 국수 한 그릇 대접하는 한이 있어도 

그저 대접하고 싶은 마음으로 의견이 모였다. 그런데 그러자니 비용이 어마어마했고 

어떤 예식장에서도 메뉴 조절이 되는 곳은 없었다. 


그럼 결혼식 비용으로 몇 천이 깨져야 할 텐데 그런 돈 있으면 공연을 하나 하겠다...얘기하다가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단다. 마침 극작가인 K 씨는 둘의 이야기를 써놓은 극본이 있었고 

P 씨는 뼛속까지 배우였고 스스로의 이야기 각색과 연출 정도는 우습지도 않았다. 

연기라면 어디 내놓아도 안 빠지는 배우들에게 연락을 했고 모두 흔쾌히 응했으며 일사처리로 진행이 되었다. 그렇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출가와 작가의 결혼 이야기를 공연으로 만든 결혼식이 일주일간 열린 것이다.     




사람들의 동공이 한꺼번에 움직인다.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함께 박장대소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또  눈물을 닦으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그들은 관객이다. 여기는 소극장이다. 

울고 웃으며 흠뻑 공연을 즐긴 관객들 앞에 커튼콜을 하는 배우가 나오는 것 아니라 신랑과 신부가 나왔다. 

그들은 하객 쪽에 서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절절한 사랑이야기의 연극이며 동시에 결혼식이기도 하다. 

신랑과 신부는 또 이 연극의 연출자이고 작가이기도 하다. 연출자와 작가의 이야기를 만든 공연, 그들의 결혼. 당연히 관객들은 관객인 동시에 또 하객이었다. 결혼을 하기까지 가슴 아프고 또 재미있던 에피소드들···, 부모님, 가족에게도 또 각자 당사자들에게도 상처가 되었던 그 얘기들을 적나라하게 무대에 올려 

각자의 입장을 사람들과 함께 펼쳐놓고 보는 것.

그것은 공연이고 결혼이며 또 모두에게 힐링의 시간이었다. 치유였다. 

우리가 이렇게 아팠어요. 이럴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나쁜 뜻은 없고 앞으로 정말 잘 살아보겠어요···.

라고 찾아다니며 호소하는 것···. 그들은 그것을 해낸 것이다.   

   

이 것은 연극은 소통과 나눔, 이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라고 믿고 있는 

배우 P 씨와 배우이자 극작가인 K 씨의 실화이다. 그 둘은 이제 결혼 한지 1년이 넘어가는 부부이다.

신랑이자 배우인 P 씨는 이런 얘기를 했다. 


"나만의 특별한 결혼식을 해야지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고 따라하려는 시도부터가 그 의도에 맞지 않는 거야,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지. 자기가 잘 하는 거. 짧더라도 반짝일 수 있는 거. 각자가 잘 하는 것"


 연극을 하면서 만난 두 사람은 일주일간 두 사람의 이야기를 공연했다. 연극이 결혼식이 되었다. 

신랑은 슈트를 차려입고 신부는 하얀색 드레시한 원피스 차림이었으며 한껏 꾸몄고 한껏 들떴고 

무대로 나와 인사하고 하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근처 식당에서 갈비탕과 칼국수로 식사도 대접했다. 

결혼식에서 해야 할 것들은 빼놓지 않고 했다. 진짜 결혼식이니까. 


결혼은 쉽지 않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 판단을 잘 못할 수도 있고 또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나 현명하게 바로 잡지는 못 한다. 이혼을 고민하며 잠 못 드는 사람들도 

재혼을 꿈꾸는 마음을 숨기는 사람들도 모두 함께 보고 치유받으면 좋을 진정성으로 꽉찬 공연.

언젠가 다시 공연을 올릴 거라고 하니 대학로에 <여왕개미>란 포스터가 붙으면 가족과 함께 관람하도록 하자.

그리고 마음 속에 이런 믿음 하나를 떠올리면 좋겠다.

실수를 하거나 사고로 주춤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 훈장이 될 수 있다. 

용감하고 현명하게 이겨낼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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