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 감자탕을 처음 먹은 건 신입 웨딩플래너로서 다사다난한 날들을 정신없이 보내고 있던 때였다. 퇴근 시간을 앞두고 남은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다들 알겠지만
정확하기 그지없는 직장인들의 배꼽시계는 퇴근시간 즈음 되었을 때라면 이미 줄기차게 ‘배고파’ 경보를 보내고 있을 때. 바로 그때. 본부장님의 네이트온(추억의 네이트온, 아는 사람은 연식 인정) 이 말을 걸어왔다.
;번개
설레는 단어다. 번개.
여기서 잠깐, 본부장님을 소개하자면
여장부, 여전사, 여성 기업가, 워커홀릭 듬직하고 믿음직한 일꾼이다. 크큭 일꾼이라는 말이 딱 맞는 그런 분이지만 그때 그 시절엔 아직 청춘이 많이 남아있었다. 대학시절 캠퍼스 잔디밭에서 병나발로 소주 드링킹을 시전하던 전설을 갖고 계신 분으로서 근무시간 동안 초집중 파워 워크(work)를 하지만 퇴근 전 배고픔 경보가 울릴 때쯤 번개 종도 울릴 줄 아는 낭만이 있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본부장님 : 감자탕 먹을 사람. 조용히 나가서 회사 옆 모모 감자탕으로 7시까지 올 것.
사실, 감자탕을 그때까지는 못 먹었었다. 지금은 어떤 아저씨 입맛보다 더 아저씨스러운 입맛을 갖고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내 안의 아저씨를 발견하기 전이었달까?
그날 밤, 감자탕으로 인해 어느 정도 발견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대학교 때까지는 친구들이 감자탕을 먹으러 가면 반찬이나 먹던 나지만 번개의 유혹이 너무 달콤해서 감자탕이라는 메뉴 상관없이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또래이고 개인 업무를 각자 하기 때문에 서로를 짜증 나게 하지는 않는 정도의 동료로서 감자탕 집에 앉자마자 수다는 봇물 터지듯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주로,
‘내 신부 진짜 신랑한테 짜증 엄청 내는데 신랑이 완전 착해서 다 받아주는 거 있죠’
‘내 신부 중에 진짜 예쁜 여자 있어요. 지금까지 중 최고로 예뻐. 몸매도 예술이에요. 부러워’
하면서 와구와구 먹는 거다. 그렇게 수다 떨고 웃고 떠들다가 조금 먹어본 감자탕이 먹을만했다. 시원한 맥주도 마시고 배가 너무 고파서 감자탕도 열심히 먹고 있는데 동료 플래너가 나를 보고 웃어 넘어가며 말한다.
‘아니, 감자탕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무슨, 감자탕만 먹고 살아온 사람처럼 처음이라며 뼈를 이렇게 잘 바르기에요?’
풉 내가 생각해도 양손 다 쪽쪽 빨아가면서 뜯어먹던 그날 밤의 감자탕의 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런 일꾼 본부장님 덕택에 그런 식으로 곱창도 먹을 수 있게 되고 곰장어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웨딩플래너는 가장 예민하고 또 가장 설레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직업이다. 어쨌든 예민해서, 설레어서도 질문이 많을 수밖에 없다. 씩씩하게 답변하다 보면 우린 그 어떤 음식도 진짜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는 배고픈 상태로 퇴근을 맞이하게 된다.
각자의 신랑신부 에피소드, 그러니까 수다떨기 충분한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짊어지고서.
전체 인원이 모두 모여 회식이라도 할라치면 정말 부끄러울 정도로 시끄러웠다. 세상 여성스러운 원피스 입고 힐 신고 드라이 열심히 해서 단아하게 한껏 꾸민 여자애들 40여 명이 고깃집에서 100인분을 훌쩍 넘게 고기를 먹어치우고 너무 시끄러워서 우리가 있던 방문을 이 중으로 꼭꼭 닫아걸어잠근 경우도 있다. 그렇게 신나는 회식이 너무 좋아서 회식한다는 날에는 점심시간에 아무도 안 시켰는데 회식하기 좋은 장소를 헌팅 하러 가곤 했다. 아무도 안 시켰는데!
신나는 시절이었다. 대학 때처럼 뭔가 학창시절 같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회식과 워크숍이 즐겁던 매일매일 이야기들이 넘쳐나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