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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희 Sep 16. 2018

웨딩플래너 첫 6개월 버티기-1-

입학은 비교적 쉬운데 낙오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웨딩플래너는 처음 6개월이 힘들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그때 이미 대학을 졸업한 지 꽤 되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해 본 경험, 사업을 해 본 경험을 제외하고는 

첫 직장이었다. 조직문화라는 것도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으니 그야말로 자칫 멘붕이 올 상황이었으나 

사실, 나는 그저 새롭게 겪는 모든 것들이 신난 철부지 청년이었을 뿐이다. 


웨딩 동영상 제작을 하는 업체를 겪어봤지만 웨딩플래너는 처음 하는 일이었다. 

번득! 직업으로 웨딩플래너에 대한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그렇게 많은 신부를 촬영하면서도 

이 드레스는 예쁘다, 안 예쁘다, 라는 기본적인 관심조차 없었으니 내가 웨딩플래너를 하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성스러운 적이 없던 내가 여성스럽게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신랑 신부를 이끌어 실패 없는 결혼 준비로 이끄는 모습을 보고 ‘해보고 싶다’ 고 느낀 것은 

전혀 의아하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신나 있던 거 같다. 돌아보면 신입사원인 나는 새롭게 배우는 모든 것들이 전혀 모르던 미지의 세계( 웨딩드레스, 웨딩사진, 헤어 메이크업 등등)에 대해 교육을 받을 때 재밌고, 

이해가 되고 적극적으로 설득이 되고 아, 그렇구나! 아, 그렇겠네!.... 재미있었다. 


당연히 회사에서 항상 웃는 낯이었고 항상 먼저 인사를 밝게 건네는 그런 성격 좋은 동네 개 같은 모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쉽지 않았다. 웨딩영상사업을 하면서 돈을 조금 벌었지만 저축 같은 건 시도도 안 해봤던 시절이라 사업을 관두고 조금 있으니 도이 없었고, 웨딩플래너로 입사한 직장 초년생 시절에 아직 경력이 짧아 적었던 월급은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도 사실 크게 불편하지 않았던 것이 여자들이 많은 회사라 그런지 

점심은 도시락을 싸와서 먹었기 때문에 내 돈은 들지 않았고 (덕분에 엄마는 나이 먹은 딸의 도시락을 다시 싸야 했지만) 그 당시 열 명 남짓 되는 직원들끼리의 돈독한 우애 때문인지 회식과 번개가 자주 있어도 

인원수대로 나눠서 내는 소위 엔빵, 더치페이를 당연스레 여겼다. 


그래서 크게 돈이 필요하지 않은 초창기 직장생활을 했다. 첫 달인가? 둘째 달인가? 

외근 중 한두 시간이 비는데 돈은 없고 배는 고파서 그 당시 열심히 쌓아두었던 ‘OK캐시백’ 포인트로 버거킹에서 햄버거를 사 먹고 시간을 때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신나고 맛있던 회식 때문에 그때까지 한 번도 먹어 본 적 없던 감자탕과 곱창을 배웠던 건 지금도 웃음이 나는 내 청춘의 기억이다. 감자탕을 처음 먹어 보던 날  ‘처음이다’라고 하고선 뼈째 잡고 쪽쪽 빨아먹던 나의 모습은 선배와 동료에게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웨딩업계와 시스템을 어느 정도 알고서 일을 시작해서 인지 처음부터 나는 계약을 곧 잘 했다. 

더군다나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웨딩박람회가 열렸다. 회사의 전 플래너 모두 박람회장에서 빡센 이틀을 보냈었다. 박람회 상담과 사무실 상담은 완전히 달랐다. 어수선한 분위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나쁘지 않은 것 

같으면 그리고 회사가 탄탄한 것 같으면 많은 사람들이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계약을 했다. 

매칭 커플로 이미 유명한 회사인 듀오에서 만든 웨딩컨설팅이라는 이유 때문에 박람회는 성공적이었다. 

나도 그 박람회에서 첫 날 현장 계약을 가장 많이 한 플래너였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봐도 우리 회사에서 제시하는 웨딩상품이 가격과 질, 플래너의 케어까지 모든 면에서 

도저히 안 하는 게 이상할 정도의 상품이었기 때문이라 스스로 강하게 믿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박람회 성과가 좋았다면 힘들지 않은 것 아니었냐고? 아니 그렇지 않았다. 

시장시스템에 대해 이해를  하고 있어서 설명과 설득을 잘 해서 계약을 잘 한 것과 

그 커플들을 하나하나 케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처음 6개월 진행했던 신부들에게는 종종 컴플레인을 들었다.

‘왜 메일을 보내준다고 하고 안 보내주지 않나요?’

‘일정 확인하고 연락 준다더니 왜 연락이 이렇게 늦었죠?’

‘드레스투어 예약은 언제인가요? 너무 바쁘신 거 아니에요?’


갑자기 불어난 계약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터진 문제다. 지금 같으면 주말 동안 좀 바빴고 그래서 바로 연락이 어렵지만 차질 없이 예약하고 연락은 이틀 뒤 드리겠다 처럼 납득이 가는 약속을 하고 안심을 시킬 텐데 

그때는 고객에게 어떤 의미로든 NO! 를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웨딩업계 말고 결혼문화 웨딩상품에 대해 모르는 것들은 아직 많은 상태였기 때문에 신부와 또 혼주 분들과 깊게 대화하다 보면 막히기 일수였다. 그래서 신부에게도 회사 동료에게도 가끔씩 적게 조금은 크게 미안해하기도 하면서 첫 6개월을 정신없이 치러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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