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프더레코드 May 07. 2022

[연재소설]Seek & Destroy

지어낸 이야기 2

 큰 범주에서 락 콘서트, 헤비메탈 밴드 공연의 티켓 가격은 클래식 공연이나 연극과 다른 방식으로 책정된다. S, R석 구분없이 무대와 가까우면 비싸고, 멀면 싸다.

 나는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편안한' 좌석이었다. 체조경기장의 원래 관중석. 가장 비싼 자리가 얼마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거긴 무대 바로 앞 플로어였다. 좌석 따위 애초에 필요없었다. 공연 시작부터 끝까지 멈추지 않고 떼창과 헤드뱅잉을 하는데 엉덩이 붙일 자리가 무슨 소용인가.

 공연이 시작되고 두 곡이 끝날 때 쯤 저 멀리 무대로 가까이 가고 싶었다. 혼자 머리를 흔들고 노래를 따라불러도 뭔가 폭발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충분히 즐기기엔 너무 멀었다. 그래서 앞으로 갔는데 말 그대로 '난관'에 부딛혔다. 가난한 팬들이 붙잡고 머리를 흔들고 있는 난관 2미터 아래엔 또 다른 팬들이 앞뒤로 머릴 흔들고 있었다. 뛰어 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른 길을 찾기 위해 회랑으로 나와 계단을 찾았다.  모든 계단이 막혀 있었지만, 유일하게 2-W 지점에서 1-W로 내려가는 문이 열려있었다.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내려갔다. 하지만 1층으로 들어가는 입구 문 앞엔 시커먼 옷을 입은 경비요원이 지키고 있었다. 당시 똑같은 6만원짜리였던 우리 7명은 똑같은 의지로 거기서 처음 만났다.

 제이슨은 경비요원에게 락의 정신과 메탈리카의 노래 가사까지 들먹이며 "이게 과연 메탈리카가 이야기한 'and justice for all'이냐. 메탈리카 형님들도 당신이 가난하지만 위대한 내 롹 스피릿을 막지 않길 원하신다"는 등의 궤변을 늘어놓고 있었다.

 경비요원도 만만치 않았다. "왜 이러시나. 메탈리카 형님들은 불법복제와 복제파일을 싫어한다. 1층 자리도 마찬가지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사람에게 주워진 것. 'sad but true'다"라고 맞섰다. 뭐 사실 맞는 말이었다.

 그 바로 뒤에서 이야길 듣고 있던 위엣은 뜬금없이 크로스백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경비요원은 "뭐 하시는 거에요? 담뱃불 끄세요. 화장실에 가던가!"라고 소리쳤다.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놓치지 않은 제이슨이 통제선 아래로 파고 들었다.

 몇 걸음 달아난 뒤 돌아서서 우리쪽을 보고 방방 뛰면서 손을 흔들며 우쭐대던 제이슨은 그러나 조금 전보다 더 우람하고 무서운 면상의 요원에게 뒷덜미를 붙잡혔고, 피울줄도 모르는 담배를 켁켁대며 피우던 위엣은 덤볐다간 가루가 될 것만같은 살기와 위압감을 풍기는 턱이 각진 검은 옷의 여성경비요원에게 제압당했다. 무전으로 상황을 보고받은 책임자도 곧이어 등장했다.

 우리는 모두 생면부지였지만 같은 목표로 우연히 한 데 모여 '동지'(?)가 탄압받는 걸 확인했고, 확실한 적까지 등장하자 묘한 연대감이 형성되는 것 같았다.

 키가 크고 우람한 커크와 길버트가 힘으로 한 번 붙어보자는 눈빛을 주고 받을 때였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중재안을 낸 건 빌리였다. 빌리는 세상 가장 차분한 사람의 말투로 "여기서 보고, 더 안들어 갈테니까 나머지 문의 반쪽도 열어주시면 안돼요?"라고 말했다.

 '저게 부탁하는 사람의 말투인가'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나 의외로 책임자는 빌리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빌리에겐 마법같은 능력이 있다. 부탁받은 사람이 거절하지 못하는 호소력이랄까.

 문 양쪽을 모두 열어보니 딱 7명이 일렬로 서면 꽉차는 넓이였다. 물론 뒷덜미를 붙잡힌 제이슨이 위엣에게 밀착했기 때문에 객관적으론 6.5명이었으리라. 어쨌든 말도 안되는 신분상승을 한 우리는 한 시간 가까이 메탈리카 멤버들의 옆 얼굴을 보면서 목이 터져라 떼창을 하며 통제선을 붙잡고 머리를 흔들었다. 사실 2층보다 좋은 자리라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은 의지로 모인 초면의 7인이 억지스런 투쟁으로 얻은 위치인지라 모두 만족하는 눈치였다.

 우리 중에도 글렌의 목소리가 제일 크고 좋았다. 물론 잘생겼고. 공연이 끝난 뒤 함께 경기장을 나섰다. 봄이라 제법 일교차가 커서 쌀쌀한 기운이 감돌았으나 두 시간 동안 공연을 감상한 것이 아니라 메탈리카와 함께 공연을 했으니 온 몸의 열기가 쉬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약간은 어색한 침묵을 글렌이 깼다.

"저기.... 조금 멀긴 한데 제가 헤비메탈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곳을 아는데, 같이 가실 분?"

 모두 글렌을 따라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린 뒤 골목 골목을 지나 도착한 곳이 바로 '우드스탁2'였다. 우린 그곳에서 새벽까지 맥주를 마셨다. 모두 대학 새내기라는 사실에 놀랐고, 또 모두가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고 있다는 사실에 동질감을 느꼈다.

 헤비메탈과 락을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는지, 어느 밴드를 좋아하는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뭔지, 대학 입학 뒤 첫 미팅은 어땠는지 등을 화제로 밤새 떠들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그날 그곳에는 공연에 나오지 않았던 'Seek & Destroy'와 'Fade to Black'이 족히 백번은 넘게 LP로 흘러나왔다.

 존 레논을 닮은 사장님은 같은 곡 계속 돌리기 피곤한지 결국 글렌에게 오디오를 맡겨버렸다.

작가의 이전글 [연재소설]98년 4월 25일 잠실체조경기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