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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성장 Jul 26. 2022

다시, 나는 영케어러(Young Carer)다.

용기 내어 기록하는 할아버지의 사망 후 이야기

올해 상반기, 할아버지에 대해 쓴 글이 브런치 메인과 다음 메인에 오르락내리락했다. 내 평생 받아본 적 없는 관심을 한꺼번에 받기라도 하듯 메인에 걸린 글의 조회수가 치솟았다. 혹자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가, 상처 투성이인 내 가정사가 만천하에 드러나도 괜찮은 걸까? 누가 나를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두려움은 순간 지대한 관심을 받아 기쁘고 설레던 마음을 저 너머까지 밀어내고 자리를 잡았다. 겁쟁이 나는 그렇게 글쓰기를 멈추었다. 






나는 조손가정, 영케어러에게 사회적인 편견을 가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브런치에 글로 써낸 적이 있다. 꼭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웠다고 해서 버릇이 없거나 정신적, 경제적 상황이 궁핍한 것은 아니라고. 특히나 다양한 가정의 형태가 탄생하는 이 시대에, 나도 평범하게 자라 건강한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깊은 내면의 나는 여전히 주변의 시선과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그 반증으로 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자 겁을 먹었고, 도망을 쳤다. 사실은 스스로가 구김살 없이 평범한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고 싶었던 솔직한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기억을 더듬는 과정은 내게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할아버지를 잊지 않으려 매 순간 노력하면서도 가슴속에 응어리 잡은 상처와 그리움이 파헤쳐져 글을 쓰다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번도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했던 감정들을 글로 토해내니 나 조차도 모르고 있던 새로운 내 마음을 발견했다. 상처받고 약해진 모습. 부모의 정을 그리워하는 어리고 가엾은 나.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을 극도로 조심했던 지난 시간들. 스스로 채찍질하며 의젓한 성인으로써 비치기 위해 노력하던 모습.



그리고 나는 여전히 영케어러(Young Carer)다. 할아버지가 폐암으로 세상을 달리 한 후, 혼자 남은 할머니를 데리고 도망치듯 살던 곳을 떠났다. 평생 돈 문제로 서로 죽일 듯이 싸워댔던 할아버지의 형제들이 혹시나 할머니를 괴롭힐까 두려워 장지에서 돌아와 쫓기듯 짐을 쌌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로 노인을 데리고 가는 과정은 맞지 않는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것인 마냥 이상하고, 낯설었고, 틀린 것만 같았다. 누구도 내게 정답을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영케어러로서의 길을 걷는 것을 선택했다. 이번 삶에는 평안과 안정보다는 온몸으로 부딪히는 삶이 내게 더 어울린다 여기면서.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2년간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기쁜 일도 있었지만, 대체로 힘들고 처음 겪는 일 투성이었다. 이제 기억이 더 흐려지기 전에 모두 기록하고자 한다. 그리고 잘 지내다가도 이유 없이 자꾸 우울해지는 나 자신과 마주하고자 한다. 피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담담히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강인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며. 다시 나는 영케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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