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5월 초 팽목항에 갔다. 바다가 세월호를 삼켜버리고 처음으로 비가 오던 날이었다. 진즉에 가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하지만 쓸 때 없는 짓이었다. 그 곳은 조용했다. 누군가의 울음소리마저 멎었다. 바람은 갈수록 힘을 얻었다. 그리고 이따금 세차게 몰아쳤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섰다. 헬기는 하늘로 뜨고 지상으로 가라앉았다. 잠수부들은 희생자들의 육신을 물 밖으로 건져 올렸고 헬기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실내체육관까지 그들의 몸을 운반했다. 헬기가 체육관 주차장에 도착할 때마나 사람들은 긴장했다. 또 누가 절규해야만 하는가. 하지만 그 날 만큼은 어떤 소식도 들려오질 않았다. 슬픔은 깊어갔다. 그곳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 정신이 아득해졌다.
다시 오늘. 지난 주말 지하철 2호선에서 사고가 났다. 강남역에서 교대역으로 가는 방향. 열 번째 칸의 두 번째 문. 10-2. 그 곳으로 오른다. 사고가 나던 시간 홍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만나기로 한 일행 중 하나가 약속시간에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짜증이 밀려왔다. ‘일찍 좀 출발하지’ 상대에게 핀잔을 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내가 탄 방향에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목적지에 도착해 사람들과 정보를 나눴다. ‘누가 늦는다더라!’ 뉴스를 찾았다.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안타깝다는 말이 사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지하철은 강남역을 향해 진행 중이다. 긴장이 된다. 누군가의 아까운 생명이 사라져간 자리를 지나가야만 한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의 틈이 잠시 벌어졌던 곳이다. 지하철이 선릉역에 멈춰 섰다. 하지만 나는 원래 서있던 곳에서 도망친다. 선릉역 바닥에 쓰여 있던 ‘10-2’라는 표시가 바로 눈앞에 있다. 감당하기 힘들 것 같다. 강남역의 스크린 도어에 얼굴도 모르는 이의 피가 묻어 있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싶다. 몸을 반대편으로 이동시킨다.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차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는 알 수 없다. 내 귀에는 이어폰이 꽂혀있고 음악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막감을 느꼈다. 사람들은 모두 혼자였고 각자의 세상에 집중할 뿐이었다. 누군가와 대화하는 사람마저도 없다. 나는 지하철 안에서 투명인간이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다.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을 테니까.
강남역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많지 않은 사람들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사고현장이다. 하지만 깨끗하다. 사고 날 저녁에 인터넷을 통해 본 사진에는 스크린도어가 깨져있었다. 여기저기 붙은 노란색 경고 테이프들이 사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멀쩡했다. 기억은 깨끗하게 지워졌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는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이곳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이 오고가는 곳이니까. 지하철 안전장치가 고장 나 사람을 투입했고, 그 마저도 문제가 생겼다. 결국 또 다른 사람들이 투입됐다.
홍영철의 시가 눈에 들어온다. “버려진 겨울 꽃밭 한 쪽 귀퉁이./ 마을 풀잎하나가 말한다./ 방금 지나간 것이 무엇이지?/ 다른 풀잎 하나가 말한다./ 글쎄./ 무엇을 위한 지나감일까?/ 글쎄./ 또 지나가는데!/ 그렇군. 끝이 없잖아./ 대체 저것들이 무엇일까?/ 아마 바람이라는 걸 거야./ 왜 자꾸만 지나가는 거지?/ 글쎄” (겨울 꽃밭의 대화) 바람은 매번 우리를 휘감고 지나간다. 태안의 해병대 캠프, 경주의 리조트 체육관 붕괴, 장성의 요양원 화재, 고양의 종합터미널 화재 그리고 제주 추자도의 돌고래호. 우리는 흔들리지만 그 것이 바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다. 바람은 언젠가 우리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아 버릴 수 있다.
그리고 지하철 문이 닫혀버렸다. 지하철은 강남역을 빠져나간다. 그는 앞으로 셀 수도 없이 많이 이 자리를 지나갈 것이다.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