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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Sep 30. 2015

 나의 네 다리는 세상의 그 어떤 동물과 마찬가지로 대지를 딛고 내 몸뚱이를 지탱하는데 쓰인다. 나는 쥐다. 나는 오늘도 발목까지 뒤덮은 검정색 코트를 입고, 그 보다 밝은 색의 조끼를 입고, 하얀색 넥타이를 목에 두르고 골목길을 나선다. 내 곁을 지나치는 다른 녀석들은 이런 나의 모습을 한 번 쯤 흘깃하며 쳐다보곤 한다. 또 어떤 녀석들은 나와 비슷한 차림으로 길을 오가지만 결코 나와 같다고 할 수 없다. 샤를 보들레르에게 있어 댄디함의 세련된 겉모습은 정신적 우월함의 상징에 불과 했듯, 나의 댄디함 역시 조끼나 넥타이 따위의 천 쪼가리가 아닌 나의 정신 속에 있다. 마찬가지다. 보들레르의 주변을 지나친 그 수많은 댄디 청년들이 겉으로 드러나는 우아함에 빠져 결국 그 속을 보지 못 했듯 저들은 내 내면의 고결함과 순수함을 결코 보지 못한다. 나는 나의 이런 정신을 이해하고 이를 뽐내며 오늘도 다리를 느릿하게 앞으로 빼며 한 걸음씩 나아간다.

 “까아아악!” 비명소리가 내 머리를 꿰뚫고 지나간다. 욕지거리가 섞인 짧은 말을 내뱉었다. 신은 어찌하여 저렇게도 징그러운 동물을 우리 쥐들과 같은 곳에 만들어 놨는지. 인간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네 다리가 아닌 두 다리로 생을 살아간다. 네 다리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머니 지구의 살결을 보다 가까운 곳에 두고 사고한다는 것과 다름 아니다. 우리가 생존 가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이 땅에 대한 외경심의 표현이다. 고로 세상의 모든 동물들은 겸손할 수 있다. 저 인간이란 놈들만 제외하고. 게다 걸을 때마다 다른 이에게 배를  보이다니 흉측하기 짝이 없다. 신의 의도를 알 수가 없다. 그도 그렇다. 어찌 나 같은 미생이 창조주의 그러하심을 이해 할 수 있으랴. 아무튼 저 인간이라는 되먹지 못한 동물들은 나를 보면 항상 저렇게 소리를 질러댄다. 저 크기가 부끄럽다. 두려움에 줄행랑을 쳐야하는 것은 이 쪽이거늘. 

 나는 달린다. 도망중이다. 달려야 살아남는다. 저 날 선 소리를 듣고도 피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 할 수가 없다. 이것은 수 년 간의 경험이 준, 나의 빌어먹을 동물적 생존 본능이 가져다 준, 무조건적인 반사 행동이다. 인간의 비명소리를 듣고도 평소와 다름없이 느릿하게 걷다 맞아 죽을 뻔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의 네 다리는 대지위에서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신체의 일부가 아닌, 단지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게 돼버렸다. 저 인간들 역시 내 안의 소수적 내면성 보다는 이 몸이 걸친 표피에 반응하고 움직이는, 다른 쥐새끼들처럼 행동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얼마나 내달렸을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발바닥은 뜨겁게 달궈져 있고, 심장은 폭발하듯 쿵쾅거린다. 심호흡을 하고 숨을 고른다. 안정을 찾지 못한다면 나는 나의 내면을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다. 바로 볼 수 없으며, 이성적 사고가 아닌 동물적 본능으로만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신경이 곤두선 지금, 이 시간이 조만간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언제나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의문을 품는다. 조금 전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른 그 놈의 면상을 확인하고 싶다. 그래서 그 역겨움을 확인하고 속을 깨워내고 싶어진다. 가끔 나는 나의 이런 호기심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상대의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하는 소시민적 존재들에 대한 나의 이성적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선 뒤를 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아까 그 자리로 돌아간다. 그 곳엔, 무엇에 밟혀 죽었는지 사방으로 내장과 피가 튀어버린 비둘기 한 마리기 누워있다. 나를 보고 놀랐던 게 아니었구나. 이 녀석을 보고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도도하게 돌아서려하지만 언제 어디서 저 이와 같은 처지가 될지 몰라 갑작스러운 측은함을 느낀다. 이 측은함은 열기가 식어버린 땅바닥에 누워있는 저 비둘기 녀석을 향했다기보다 언제 어디서 인간에게 당할지 모를 가능성을 가진 나에게로 향한 것이다. 나는 주류에 편입되지 않은 혹은 못한 소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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