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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우림 Oct 06. 2015


경복궁 담 길을 따라 올라간다. 친구는 삼청동에서 보자고 했다. 효자로라는 이름의 길을 통과해 삼청동으로 갈 생각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휴대폰이 이 길을 알려줬다. 달이 뜬 구월의 밤이다. 아직 여름이다. 식지 않은 아스팔트의 열은 인도로 올라온다. 간간히 켜진 전깃불들이 앞을 밝힌다. 빛은 옅다. 조용하다. 자동차 바퀴가 아스팔트에 긁히는 소리가 고요함을 쪼갠다. 하지만 그 것은 다시 눌어붙어 침묵을 유지한다. 묵직함 마저 느껴지는 이 고요함을 산산조각 내기에 자동차들의 소음의 양은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무슨 행사라도 있었는지 골목에서 사람들이 흘러나온다. 반갑다. 혼자만 걷기엔 두려운 구석이 있었다. 이 길을 알려준 휴대폰을 탓하던 차다.

 어느 샌가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사복경찰이 막아선다. 경찰은 대략 열 보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인사를 하고 소속과 계급, 이름을 밝힌다. “......경비대 경사......” 경비대 이름과 경찰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청와대 전경 대에서 군 생활을 했다는 한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청와대 앞길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휴대폰도 그 사실은 알려주지 않았다. 전경이었다는 그 친구는 아는 체를 했다. 효자동과 삼청동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경찰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경찰이 막아선 순간 등에 열이 올랐다. 확하고 타오르더니 열이 냉기로 바뀌었다. 표정이 굳었다. 그는 작게 말했다. 고요함은 그 어떤 소리도 크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가방에 대해 물었다. 가방에 밑 부분이 둥근 모양으로 쳐져있었다. 술 병 탓이다. 가방을 순순히 경찰에게 건넸다. 가방에 대해 무한한 허락을 받은 경찰은 그 속을 들추어 보았다. 들추다의 ‘추’는 사동표현을 만들 때 사용한다. 무언가에 당함을 의미한다. 경찰은 속을 더듬거리며 가방을 검사한다. 병을 꺼내든다. 병은 속이 시꺼멓다. 그 속을 알 수 없다. 경찰에게 설명을 해본다. 해명이다. 왜 이 시간에 인적이 드문 이곳을, 왜 가방에 술병을 담은 채 어슬렁대는지를 적극적으로 설명한다. 술은 친구에게 줄 선물이다. 설명을 듣고도 경찰은 다시 한 번 더 묻는다. 

 경찰은 제 할 일을 했다. 그는 무전기에 대고 알아들을 수 없는 무언가를 말했다. 소리가 작아서인지, 발음이 똑바르지 않아서인지, 그 것도 아니면 내가 모르는 언어인지. 나를 놓아준다. 나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경찰이 더 많아졌다. 오른쪽으로 꺾어 청와대 앞길을 지나야 한다. 울타리가 그어져있다. 물어야 한다. 무턱대고 길을 건넌다면 또 붙잡아 세우고 가방에 대해 묻고, 나는 좀 전과 같은 해명을 해야 한다. 다시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경찰 하나를 그렇게 지나보낸다. 두 번째 보이는 이에게 다가간다. 심장소리가 가파르게 오르더니 그 끝이 날카로워 진다. “낮에는 지날 수 있습니다.” 한 마디가 돌아온다.

 발길을 다른 쪽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경찰은 이제 등 뒤에 있다. 저들에 맞서 앞으로 걸어가는 길과 그들을 등지고 앞으로 걸어 나가는 길은 그 무게가 다름을 깨닫는다. 경찰이 나에게 맞서는 경우는 내가 법을 지키지 않았을 때다. 나는 법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다. 택시를 잡아타고 길을 돌아간다. 다시는 저 길을 가려하지 않을 것이다. 서울의 모든 길을 통과하고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갈 수 없는 길도 있었다. 오늘에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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