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단풍

by 스마킨

2020년 작년 서귀포 최저기온은 스마트워치에 찍힌 숫자를 확인한 바로는 "-1"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우는 상추는 한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르름을 빛낸다. 아이들에게 식물이 자라고 수확하는 기쁨을 선사하리라며 심은 방울토마토는 여태껏 죽지 않고 있다. 토마토가 다년생이라는 사실은 줄곧 육지에서만 지내온 나로서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내리는 눈은 기껏해야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다.


그뿐이랴.

제주는 단풍이 없다. 물론 기후 변화가 무쌍한 한라산에는 있겠지만,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변으로는 단풍 같은 단풍을 본 적이 없다.

단풍을 보려면 한라산 정도 올라가야 한다.

한 번은 제주시를 516도로 넘어가는 중에 성판악을 지나니 꽤 단풍 같은 단풍을 본다.

말라서 죽어가는 잎이 있을 뿐, 온통 초록 밖에 없다. 한겨울 베란다의 상추처럼 쌩쌩한 초록잎이 사방천지에 있다.


처음에는 초록 세상이 좋아 보였다. 동남아 같고, 생동감과 쉼을 주기에 그렇게 느껴졌다.

그러나 단조롭다. 음, 감흥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러다 발견한 색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담벼락이다.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새까만 현무암 돌담은 꽤나 선명하였다. 초록과 검정의 대비는 디자인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꽤나 어울렸다.



그럼에도,

초록 잎들과 검정 돌담만으로는 계절이 변하는 즈음에 누릴 수 있는 정서적 풍요를 누릴 수 없었다.


버릇처럼 육지와 차이를 찾게 된다. '육지 같으면 단풍이 장난 아닐 텐데'라며 아내와 푸념 섞인 말을 늘여 놓는다. 사소했던 가로수의 샛노랑 은행잎이 그리웠다. 생뚱맞게 홀로 서 있던 새빨간 단풍잎이 아련했다.

겨울을 맞이하며 후드득 떨어진 은행잎이며 단풍잎이 예전엔 '저거 치우느라 고생하겠다' 싶었다면, 이젠 그조차도 밟으며 메마른 감성의 샘을 폭발시키고 싶었다.


그러던 중, 유레카!

제주에도 단풍이 있다. 사시사철 알록달록 없이 초록과 검정만 거의 보이는 제주에도 단풍이 활짝 든다.

이 단풍은 색의 어울림조차 기가 막히다. 초록과 검정 돌담 사이에 흐드러지게 만발한다.

비가 온 날이면 그 색의 영롱함은 더하여져서 그 어떤 좋은 TV를 통해 보더라도 어떤 좋은 DSLR로 찍더라도 따라올 수 없는 풍광을 자아낸다.

녹색잎 무성함 속에 드리우는 주황색 귤의 때깔은 단풍의 형형색색 못지않게 또렷하게 예쁘다.


계절이 변하더라도 알록달록 단풍이 없던 아쉬움이 이내 무미건조한 제주 사람으로 생각이 이어졌던 '육지것'에게는 미안함이 한껏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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