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지, 여행 중에도 노트북을 펼쳐 들고 각자 할 일들 하자구
이번 여행을 함께 하는 친구들은, 모두 올해 알게 된 사람들이다.
나는 지난 10년간, 매일 비슷한 루틴을 유지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했으나 금세 사라졌고 일 관련해서 만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카페에 가는 식이었다. 어느 시기가 지나면 다들 그러고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그게 싫지는 않았다. 매일 보는 사람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종일 해도 또 할 이야기가 생겼으며,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로는 좀 더 느슨하고 유연한 상황에 나를 놓아두려 했다. 새로운 경험을 최대한 많이 하며 마음껏 기꺼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처음 보는 사람과 일과 관련 없는 대화를 나누었으며, 어렵지만 내 이야기도 조금씩 할 수 있는 상황에 일부러 나를 데려다 놓은 것이다.
좁고 깊은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방법은 이러했다.
하나는 새로운 모임에 가입하며 랜덤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의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친구를 만나는 것이다. 전자를 위해서는 독서 모임에 가입을 했다. 기존에 읽던 에세이가 아니라 다른 분야(경제경영, 마케팅)의 책을 읽는 독서 모임에 가입해 새로운 일을 하거나 낯선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려 했다.
나는 원래 책 만드는 일을 했고, 회사를 다니는 동안 다른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북토크에는 종종 참여하려 했으나 독서 모임은 별로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독서 모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동안은 주로 책을 만드는 일을 했으나, 파는 사람의 관점이 궁금해 마케팅 관련 책을 읽는 독서 모임에 가입해 마케팅 관련 책을 읽고 토요일 오전에 만나 두 시간 가령 책에 대해 대화하는 모임을 가졌다.
그 모임을 통해 나는 평소라면 만나지 않았을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했다. 재미있었다. 어쨌든 책을 좋아한다는 줄기 아래 모였으니, 사람의 결도 어느 정도 비슷했을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그 정도만 띄엄띄엄 거리를 벌려보아도 보이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불특정 다수이다 보니 특정 선을 넘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좋았고, 우리에게 허용된 정보 안에서 조금씩 알아가려 시도하는 모습을 보며 그런 우리들이 꽤 귀엽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그 사람들과 띄엄띄엄 만나는 사 개월을 보내는 동안,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는 일들도 이어 나갔다.
친구의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더 재미있었다. 나와 친한 친구들은 필연적으로 나와 꽤 많은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친구가 소개해주는 친구들 역시 나와 어느 정도의 교집합을 가진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더라도, 나는 몰랐던 친구의 새로운 표정을 발견하는 일도 즐거웠다. 게다가 연령대도 비슷해서 가지고 있는 고민의 결이 비슷하기도 했고, 나는 아주 크게 고민하는 일을 가볍게 훌쩍 넘어가고 있는 단단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래 해 온 일에 잠시 멈춤 버튼을 눌러둔 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보여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느끼며, 나는 내 세계를 조금씩 넓혀갔다.
아이슬란드 여행은 SNS에 아이슬란드 여행을 가자며 깃발을 세운 친구의 주도하에 멤버가 결성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친한 친구와 함께 그 모임에 합류했으나, 마지막에 그 친구가 급한 사정으로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고 그래서 친구와 친구의 (서로 모르는) 친구 둘, 그리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라는 다섯 명의 오묘한 조합으로 완성되었다(어려운 관계표 같지만 중요한 정보는 아니니 넘어가기로 하자).
출발 일주일 전,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우리를 숙소와 여타 관광지 등으로 인도해 줄 메이트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를 칭할 여행 팀명을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크게 고민할 일은 아니었으나, 우리에겐 특별한 여행이 될 것이니 점심 메뉴를 결정하듯 '아무거나'라고 하고 싶진 않았다.
짧은 고민 끝에 우리는 '키보드 노동자 연합'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매체는 다르지만, 다섯 명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작가로, 기획자로, 에디터로 일하고 있는 직업적 성격에 맞춘 네이밍이었다. 더불어, 앞으로 여행지에 가서도 어느 정도는 시차를 체크해 가며 일을 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다들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오로라를 기다리며 혹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휴대폰이나 노트북을 펼쳐 들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출발할 때도 함께 돌아올 때도 함께인 여행이 아니라,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레이캬비크에서 만나 출발한 뒤 8박 9일을 함께 보내고 다시 각자의 여행지로 흩어지는 것. 친구의 친구 또는 친구의 친구의 친구로 만난 느슨하고 유연한 관계. 우리는 딱 그 기간 동안 '키보드 노동자 연합'이라는 푯말 아래 아이슬란드에서 겹치기로 했다.
비행 스케줄도 미묘하게 달라서, 선발대인 네 사람이 먼저 레이캬비크로 떠났다. 전쟁으로 인해 우회해서 가는 비행 스케줄로 인해 핀란드까지 11시간, 환승 후 아이슬란드로 3시간가량 장시간의 비행을 거쳐 레이캬비크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환한 낮이었고 눈앞에는 하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추워.”
바깥에 쌓인 눈을 보며 짐짓 중얼거려 봤으나 워낙 꽁꽁 껴입고 온 탓인지 그렇게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를 맞이하러 온 기사님을 찾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모두가 제 일행을 찾아 떠나고 난 뒤, 휑뎅그렁하게 남은 우리는 친구의 이름 팻말을 든 사람은 왜 나타나지 않는지, 만약에 없다면 우리가 면세점에서 덥석덥석 집어 온 이 수많은 술들은 어떻게 옮길 것인지 불안에 떨며 현지의 여행사에 문의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 와 있대, 그런데 어디에? 같은 대화를 나누던 중 비슷한 순간에 무언가가 시야에 들어온 순간 나는 전율했다.
친구의 성인 'IN'을 'INN'으로 표기한 팻말을 든 한 남자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계속 우리 근처를 떠돌고 있었겠으나, 그동안 흔한 숙소명이겠거나 하고 넘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잘못 쓴 게 아닐까, 생각한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며 '저분이야말로 우리의 기사다'라는 사실이 뇌리를 관통했다.
다행히 무사히 기사님과 접선한 우리는 그가 몰고 온 커다란 차에 짐을 실었다. 마음을 놓은 우리는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밖으로 펼쳐진 하얀 길을 마음껏 바라보았다.
차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주변은 온통 설산이었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가 이 하얀 세상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하늘 높이 있어야 할 해가 고개를 돌리면 옆으로 보이고, 달려도 달려도 그저 하얀 것들 뿐이라는 사실이. 또 멀리에 보이는 조그만 집들이 정말 사람이 사는 집인지 아니면 그저 모형 같은 것인지. 그저 아득하고 멍했다. 나는 종종 차창에 손끝을 갖다 대며 만져지지도 않는 것을 만져보려 시도했다.
“아직 그다지 춥지 않아.”
한 친구가 말했다. 춥지 않아서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걸까.
한참 차를 타고 달려가다 보니 멀리서 조금씩 레이캬비크 시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홀로 지나던 우리의 차 옆으로 다른 차량들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레이캬비크의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교화기가 보였고 유럽 특유의 돌바닥을 지나 그곳을 지나다니는 다른 관광객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용품을 파는 상점과 외국어가 적힌 상점 간판들을 보곤 그제야 이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숙소 근처에 도착해 짐을 내리고 캐리어를 들었다. 앞으로 약 열흘간 가지고 다닐 내 모든 것이다. 순간 차가운 바람이 귀를 할퀼 듯이 때리고 지나갔다.
“아 추워!”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이었다. 친구들이 종종 뒤따라 내리며 "정말 춥네" 하고 말했다. 정말 겨울나라에 도착했구나. 코끝과 양뺨이 얼어버릴 것 같아 웃음이 났다. 숙소의 로비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에서 털모자를 꺼내 덮어썼다. 이제야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것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레이캬비크
아이슬란드의 수도이자 항구도시로 아이슬란드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이곳에 살고 있다. 대부분 아이슬란드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 되는 도시이다. 도시 중심가의 레인보우 스트리트와 스바르티포스 주상절리를 본 딴 교회 할그림스키르캬 등이 유명하다.